- 3월 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시대는 17세기 영국.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이하게 찢겨진 입을 갖게 된 어린 그윈플렌은 매서운 눈보라 속에 홀로 버려진다.
추위 속을 헤매던 그윈플렌은 얼어 죽은 여자의 품에 안겨 젖을 물고 있는 아기 데아를 발견한다. 우연히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를 만나 도움을 청한다. 우르수스는 평소 인간을 혐오하지만 두 아이를 거두기로 결심하고 그윈플렌의 기형적 미소와 눈 먼 데아의 이야기를 이용해 유란극단을 꾸린다.
EMK의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는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이 이상의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꼽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며, 위대한 거장의 탄탄한 서사 구조를 뮤지컬 양식에 걸맞게 새롭게 창조하며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수작이다.
2018년 초연 이후 2020년 재연, 2022년 삼연에 이어 2025년 네 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지울 수 없는 웃는 얼굴을 가진 채 유랑극단에서 광대 노릇을 하는 관능적인 젊은 청년 그윈플렌 역은 박은태·이석훈·규현·도영이, 인간을 혐오하는 염세주의자이지만 그윈플렌과 데아를 진심 어린 애정으로 거둬 키우는 우르수스 역에는 서범석·민영기가 캐스팅됐다. 순백의 마음을 가진 인물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영혼으로 그윈플렌을 바라보며 그를 보듬어주는 데아 역에 이수빈, 장혜린이 출연한다. 여왕의 이복동생이자 부유한 귀족으로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그 이면에는 공허함을 가진 매혹적인 여인 조시아나 역에는 김소향, 리사가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도 조시아나 공작부인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야망가인 데이빗 경 역에는 박시원, 강태을이 캐스팅됐다. 증오와 질투로 가득 찬 교활한 하인 페드로 역은 문성혁이 열연한다. 대영 제국의 통치자로 이기심 많은 앤 여왕 역에는 김영주와 김지선이 참여한다.
어느덧 성장한 그윈플렌은 기이한 미소 덕분에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가 되고 그의 공연을 본 앤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다. 생애 처음으로 귀족인 조시아나에게 구애를 받은 그윈플렌은 고혹적인 그녀의 유혹에 순수했던 마음이 흔들리고, 우르수스와 데아는 그런 그윈플렌의 모습에 남몰래 가슴앓이를 한다.
그러던 중 그윈플렌은 '눈물의 성'이라는 악명 높은 고문소로 끌려가고 생각지도 못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바로 클랜찰리 공작의 후계자였던 것. 이로 인해 그윈플렌, 우르수스, 데아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윈플렌은 우연한 기회에 귀족이 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게된다. 작품은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며,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함을 간직한 그윈플렌의 삶을 통해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노리개일 뿐' 이라는 작품 속 대사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이 당시 사회는 철저히 귀족들의 시대였고 귀족 이하 평민 그 이하 사람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 버림받고 가난한 삶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윈플렌은 귀족과 빈민층의 극렬한 삶의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타파해 보고자 앤 여왕과 17명의 상원의원들 앞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하늘의 별이 두렵지 않나. 슬픔으로 가득한 거리 풍경. 굶주린 또 다른 세상을. 그 눈을 떠 지옥같은 저 밑바닥 인생들. 그들이 견뎌야 할 또 치뤄야 할 대가들. 그 눈을 떠 마음을 열고 증오와 절망 속에 희망까지 죽어간 눈을 떠봐."
이 장면에서 나오는 넘버는 '웃는 남자'의 주제 의식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그 눈을 떠 (Open Your Eyes)'이다.'진정한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어딘가 빛을 잃어버린 내 운명에 행복하기 위한 내 삶에도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 찢겨진 미소 뒤 한 남자가 갖지 못 할 미래 꿈을 품은 내 영혼. 세상에 안겨 쉴 수 있나."
이 넘버는 'Can It Be?'로 1막 후반부에 나온다. 그윈플렌이 조시아나 여공작을 만나고 나서 부르는 넘버이다. 바이올린 구슬픈 전주가 흐르면서 그윈플렌이 자신의 내재된 마음을 처음으로 내비치는데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윈플렌에게도 꿈꾸는 내일의 미래가 있음을 직접적으로 호소하며 관객들에게 아련함을 전한다.
'웃는 남자' 속 그윈플렌의 인생은 기구하다. 공작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릴적 납치당해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가다 다시 신분 회복을 하지만 그의 모습은 결코 우울하거나 비관적인 캐릭터가 아닌 남들에게 위로와 긍정의 에너지를 준다는 점이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지고지순한 데아의 사랑 또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실만 하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치명적 핸디캡을 가졌고 우연히 그윈플렌 손에 발견되어 우르수스의 품에서 자란 데아는 항상 밝고 치명적일만큼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지만 심장이 무척이나 약해 그윈플렌이 '눈물의 성'에 잡혀간 후 그가 죽은 줄 알고 절규하다 심장병이 도져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 다시 나타난 그윈플렌 품에서 결국 생을 달리하는 어찌보면 비극적 캐릭터이다. 빛을 가진 눈이었으나 앞을 보지 못해 눈이 아닌 영혼으로 그윈플렌을 바라보며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준 천사 같은 존재였기에 그의 죽음은 참 아련하고 서글펐다.
대극장용 뮤지컬의 또 다른 볼거리는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 장치이다. 오프닝 신에서의 풍랑이 이는 바다 위,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 거칠지만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우르수스의 유랑극단, 클랜찰리 궁전의 화려한 푸른 실크 침대, 붉은 색으로 가득찬 계단식 의회장 등 관객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주면서 한순간도 한 눈 팔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마력이 있다.
결국 그윈플렌은 안정되고 화려한 귀족의 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을 따뜻하게 가족으로 대해준 우르수스와 유랑극단 품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목표로 한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항변은 조롱거리가 되며 비록 실패했지만 그 역시 주관적인 선택일뿐 그 선택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자유로울 뿐이다. 그는 그저 자신의 원래 자리, 가난한 자들의 품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압도적인 무대 연출 및 아름다우면서 호소력 짙은 넘버들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들과 이를 열정적인 연기로 소화해낸 무대 위 배우들로 감탄과 감동의 180분을 올곳이 즐길 수 있는 '웃는 남자'이지만 그 내면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의와 인간성이 결핍된 계급 사회를 비판하고 하늘 아래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부르짖음이다. 바로 이 주제의식이 뮤지컬 '웃는 남자'가 네 번째 시즌까지 오고 관객들에게 지지받는 강력한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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