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수열 기자]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는 오픈식이 있었다. 그림 전시가 열리는 1층과 중층 그리고 2층 전시장 모두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관람객이 북적였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찍을 수도, 또 한 점 한 점 그림을 감상 할 수도 없었다. 장내 방송에는 그림에서 조금만 물러서 달라는 안내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고, 관람객들은 다시 와서 봐야 되겠다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작품들은 모두 구작과 신작의 사이에서 색을 최대한 절제한, 조영남작가님의 고유 컬러인 그레이와
[아트코리아방송 = 김수열 기자] 갤러리가 나이가 먹어 간다는 증거일까?잊을 수 없는 진한 추억만 남긴 채 떠나가시는 분들이 한 분, 두분 늘어 나신다. 1년 전 즈음 정세훈 선생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선생님은 당신의 병세를 남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으신 터라,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 점이라도 더 많은 작업을 남기시길 독려 하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남들이 알면 스스로 시한부 생을 인정하고 포기할까 싶어서인지, 주변을 끊고 조용히 병마와 싸우면서 매일 작업실에 나가서 미완성 작들을 정리 하시는데 모든
내가 한때는 해외 전시를 정말 많이 다녔었다. 불과 5~6년만에 항공 마일리지가 40만점 가까이 쌓였을 만큼 돌아 다녔으니 영락없는 보따리 장사였고, 나름 장사 수단도 있어서 전세계 관리하는 컬렉터 수가 600명에 가까웠었다. 그러나 2016년 탄핵 시국에 접어들면서, 출국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었다. 그동안 짐이 아무리 많아도 별 문제 없이 출.입국을 했었는데, 출국이나 입국시에 검문 검색이 도를 넘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림 보호를 위해 애써 포장을 해 놓으면 그림 하나하나를 뜯어서 샅샅이 뒤지는가 하면, 하다 못해 집사람의 화
갤러리스트로서의 내 삶은 참 고달팠다. 내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면, 컬렉터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에는 너무 동 떨어져 있었다. 지식 없이 무작정 갤러리를 오픈하고, 1년이 지날 즈음 갤러리의 역활을 알게 되면서, 나는 실험적이고 미술사적 가치 있는 작가를 발굴하겠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2006년 그리고 곧바로 시작한 일이 미술사 재평가 작업이었다. 가장 첫 번째 전시로 한국의 초 현실주의에 대해 연구하면서 최효순 작가를 알게 되었다. 홍대 출신으로, 당시 아무도 가지 않던 극사실화에 매달려 대상 수상작이 없던 해의 최고상인 금상 수
켈렉션의 질을 높여야...한때 분재와 난를 키운적이 있었다.생물이란게 주인의 감정과 기복에 따라 생육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여 집안에 조금만 않좋은일이 있어도 금방 시들고 말라죽기 일쑤다.키우는 사람의 손길이 조금만 못미치면 다른사람이 아무리 애지중지 돌봐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일쑤고 장기출장이나 집을 한동안 비우고 돌아오면 그로인해 식구들끼리 싸우기도 일쑤였다.나 좋자고 시작한 취미가 다른가족에겐 스트레스로 작용한 셈이다.다음엔 관리가 필요없는 수석을 수집을 시작했다. 문제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사더라도 나같은 또라이를 만나
허황의 구작 작품을 구매하면서그동안 십 수년간 허황 선생님의 구작 작품이 경매에서 보이면 웬만하면 낙찰을 받아왔고, 내가 형편이 안되면 지인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구매를 해 오고 있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신작에 비해서 이쁠리도 없고, 또 사람들이 선호하는 작품도 아니다. 허황선생님의 작품 자체가 상업성과 거리가 멀어서 컬렉터에게 외면당하는 사정이라 미술투자나 판매 목적이 아니라, 나는 미술사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다. 비단 허황 선생님 뿐만이 아니라, 나의 컬렉션은 작가의 아카이브 완성에 더 집중해 온 편이다 보니, 작가가
한때 골동품 수집을 하면서 깨진 사발을 어지간히 많이 모았던 기억이 있다.그러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들은 "반듯한 달항아리 한점이면 족하다."라는 말에 크게 감복하여 달항아리 주변을 맴돌았지만 끝내 달항아리 한점의 꿈을 이루지 못한채 골동품 정리를 했다.남은 골동품 일부는 임대하여 해외에서 전시중이지만 자랑할만한 것은 없으니 자연히 골동품에 대한 흥미는 잊혀져 가게 마련이다.수집벽은 도벽이나 마약같은 강력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후 다시 심취한게 동양화 수집이었고 동양화를 이어서 서양화에 뛰어 들었지만 그냥 많이 모으는것이 취미였
이건용 대가가 그려준 나의 초상화퐁피두서울 개관전은 이건용 선생님의 전시로 결정 났다는 기사를 봤다. 이미 꽤 오래전 알고 있던 정보였지만 막상 기사를 접하니 반갑기도 하고 또 고생하던 시간들이 떠 올라 감회가 새롭다. 18년전이다. 이건용 선생의 전시를 열면서 현대미술의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리고 세계적인 작가가 될 것이라면서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이 영 싸늘했다. 아니 싸늘한 정도가 아니라 저보고 정신 차리라는 말을 가감 없이 하시는 분도 꽤나 많았다. 나는 알겠는데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
한때 이건용 선생님을 아트페어에 모시고 다닐때 평소 잘아는 작가나 갤러리들이 다들 걱정을 참 많이 해 주셨다.힘든 작가를 데리고 어떡하려고 그러느냐며 헛 돈 쓰지 말고 팔릴만한 작가를 소개 해줄테니 정신차리라는 노골적인 충고를 하시는 뷴도 더러 있었고, 작가들의 면면이 특별해서 나는 이상한 갤러리 취급을 받곤 했다. 그런 가운데 이건용 작가가 성공울 거두어 떠나고 권기자 작가님을 본격적으로 스폰하면서는 이번엔 또 아줌마 작가를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거냐며 쓸데 없는짓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그럴수록 나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추사의 세한도가 지닌 그 뜻이 참으로 깊고도 명료하다.어떤 길이 옳은 길 인지는 잘 모르겠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걸어가는 길이 부끄럽지 않으면 그 길이 옳은 길이다.나는 꿋꿋이 내 길을 간다.
권기자 작가(1962)자신만의 독창적 작업 방법과 반복 숙련된 기교를 통해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권기자 작가는, 2024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초대작가로서 k-art를 전 세계에 알리는 막중한 소임을 맡았다.단색화가 지닌 개념적 이해을 넘어, 물감이 지닌 물성을 이용해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과물을 얻어내고, 그 결과물을 통해 다시 자연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적 회화세계를 구축한 권기자 작가의 예술세계는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 날 것이다.
200년 후의 사업을 계획하다.내가 사업을 200년 후를 위해 모든것을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말하길 "내 죽고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라고 말한다. 만약 내 조상이 미래를 내다보고 100년 대계를 세웠다면 나는 그 희생을 바탕으로 더 큰일을 하며, 또 다른 100년 대계를 꿈꿀것이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먹고살기 바빴던 탓에, 농사가 천직이었고, 사람 발길 없는 산골짝 자갈땅에 밭갈고 나락심어 겨우 삼시세끼 때워 넘기는 것을 가장 큰 행복이라 가르키며 후대를 길러냈고, 큰세상과는 담을 쌓아 애시당초 농삿일외 배움과는
[아트코리아방송 = 김수열 기자] 작가 스폰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내가 발굴한 작가가 세계적으로 활동폭을 넓혀 나가고 있는 것을 보는 일이다. 2012년 해외 작가에 눈을 돌리면서 중국 작가 한 분을 영입했다. 당시 Huang Simao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소개를 시작으로 홍콩, 일본, 중국, 미국, 싱가폴, 독일, 두바이 등 본격적으로 작가를 알리면서 컬렉터도 함께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법 유명해 졌다는 생각이 들 즈음 작가가 이름을 Huang Xi로 바꾸면서 당장 인터넷 검색조차 혼란스러워 졌다. 한국에서는 광주
[아트코리아방송 = 김수열 기자] 아산갤러리 서울종로점(써머셋 팰리스 호텔)에서는 중국화가 황시(쓰마오)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황시는 휴지를 테마로 작업을 하고 있다.휴지는 물에 약하고 매우 약하여 쉽게 찢어지고 그 형태가 망가져 버린다.황시가 표현하는 휴지는 권력을 탐하는 인간이나 포식자들이 더 큰 권력앞에서 또는 자연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풍자한다.
[김수열 소장품이야기] 54 '전속과 전속계약'나는 갤러리를 시작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터 작가와 함께 일하게 되며 전속이란 용어를 듣고 또 사용하게 되었다.그리고 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듣는 말이 '계약서는 썼어요?' 이다. 내 대답이 '아니요 ~!!' 라고 말하면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진다.우리 갤러리의 작가는 전속계약이 없어도 누구나 전속인줄 알고 있는 관계들이다.그렇게 모든작가 관계가 형성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길게는 20년 짧게는 10년 이상씩을 함께 하고 있다.과연 전속과 전속 계약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차피 관계가
컬렉터로서 다양성이냐 중요성이냐를 생각하게 한다.다양한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것과, 몇 점이라도 마스트피스급의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는것과 어느쪽이 좋을까를 고민하는 문제다.나는 한때 골동품을 수집한 적이 있었는데, 고물상이 되어버린 집을 비우면서 얻은 결론은 "반듯한 달항아리 한점이면 족하다." 였다.그리고 보관이 용이한 동양화 수집을 거쳐 현대미술에 이르면서 또 한번 생각이 바뀌었다. 다양성과 특별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좋다는 기준에 대해, 새롭게 정리하면서 좋은 컬렉터가 되면 작품도 좋은 작품으로 변하게 된다
카지카와 요시카즈 (Yoshikazu KAJIKAWA)카지카와 요시카즈는 3D기법으로 반입체화를 제작하는 작가이다.작품이 워낙 정밀하고 입체적이라 직접 보지 않으면 이미지로서는 그 디테일을 짐작하기 조차 어렵다. 작업의 시간이 많이 걸려서 년간 12점 제작이 목표라고 한다.다작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기가 차고 코가 막힐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을 지켜보며 함께 해 오고 있으며, 그동안 작업한 작품의 70%는 우리 갤러리에서 소장 중이다. 어느 듯 작가의 나이가 50에 다다랐고 이제 작업을 알려야 할 시기도 되었지만, 작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51] 내가 화가의 길을 걸었더라면...내가 화가의 길을 걸었더라면 제일먼저 기획실을 차려 컨셉디자인팀을 운영 했을테고, 공장을 차려 생산라인을 구축했을 것이다.영업팀을 만들어 판매처 발굴을 하고, 해외에는 곳곳에 갤러리를 만들고, 브랜드 구축에 투자했을 것이다.내 목표는 데미언허스트를 뛰어넘고, 무라카미 다카시를 뛰어넘어 엔디워홀의 아성에 도전했을것이며 나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대신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머리만 썼을 것이다.그러고도 나는 내가 화가임을 천명했을 것이다.
메타버스를 정복하기 까지작년 1월부터 제 인생을 걸고 메타버스 개발에 투자를 시작하여 밑빠진독에 물 붙듯 하고 있습니다.주변에서 시기상조라 말하고, 몇십 억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며 뜯어 말리지만 저는 이미 시작을 했으니 멈출수가 없습니다. 이 사업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너무 늦은 출발이기에 지금부터 서둘러도 2035년은 되어야 비로소 제 꿈이 완성될겁니다. 때문에 저는 마음이 급할수 밖에 없고 오히려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그렇게 지난해 개발에 뛰어들어 완료하고 나면 부족한 부분이 나오고, 또 보강하면 헛점이 보이고 ..... 6개월
[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49요즘 처럼 인기작가가 쏟아질 때, 컬렉터가 믿을 구석은 오로지 미술사에 남을 작가를 선별하는 일이다. 억대에 가까운 그림이 몇 년 지나지 않아, 겨우 수백 만원, 그 마저도 거래가 실종되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고, 그것이 인기 작가의 말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작가를 미술사에 남긴다는 것은 너무나 긴 시간의 싸움이다. 그 기나긴 싸움에서 살아 남으려면 작가와 주변이 모두 조급함을 없애고, 누군 가는 지난 한 과정을 끝임 없이 기록해야 한다. 미술작가는 나이가 70에 들어서면 그때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