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정부세종청사체육관 미술전시관에서는 2025년 11월 9일부터 12월 13일까지 권민정 작가의 개인전 Between the Grain and Breath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지속해 온 핵심 주제, 나무와 인간, 자연과 존재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깊이 탐구하는 자리다. 단순한 회화 작업을 넘어, 나무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마주하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뉴욕의 겨울에서 시작된 나무의 얼굴
권민정 작가의 여정은 뉴욕의 혹독한 겨울, 한 조각의 나무판에서 출발했다. 도심의 빌딩 숲 사이, 비에 젖어 벽에 기대어 있던 나무판 한쪽에는 trash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버려질 운명이 분명해 보였지만, 작가에게 그 나무는 이상한 친밀함과 끌림으로 다가왔다.
그 나무를 스튜디오로 데려온 순간, 나뭇결은 난로의 온기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갈라진 옹이와 흐르는 결 사이에서 작가는 마치 사람의 얼굴, 오래된 표정,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보았다. 그때부터 나무는 더 이상 재료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를 품은 존재가 되었고, 작가의 회화 세계는 나무를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나무인간 몽타주 연작
나무의 결과 인간의 형상이 겹쳐지는 순간을 포착한 대표 연작 WOODMEN MONTAGE SERIES는 이번 전시에서도 핵심을 이룬다. 화면 속 인물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러 존재의 흔적, 서로 다른 인종과 성별, 역할과 경험이 뒤섞인 혼합된 형상이다.
나무는 몸의 근육으로 읽히고, 옹이는 표정으로 이어지며, 갈라진 결은 삶의 균열로 전환된다. 그러나 그 파편들이 모여 만드는 형상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고, 어긋남이 아니라 공존이다.
권민정은 나무의 숨결을 사람의 숨결에 겹치며 말한다. 다르더라도 함께 머물 수 있으며, 이해가 완전하지 않아도 관계는 이어진다고.
숨이 오가는 자리, 관계가 머무는 틈
그림 속 여백은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는 숨이 흐르는 공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틈이다. 작가는 그 틈을 남겨둠으로써 관람자가 작품 속에 머물 여지를 만든다.
나무와 인간 사이, 결과 표정 사이, 숨과 침묵 사이의 미세한 간극이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조형적 언어로 작동한다. 나무는 단단하지만, 그 안에는 살아온 시간의 부드러운 흔적이 있다. 인간 또한 그렇다. 작가는 이 둘의 결을 포개며, 관계의 본질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작가의 조형 언어: 나무라는 생명체와의 대화
권민정의 작업 방식은 관찰과 기다림에 가깝다. 나무판과 대화를 하듯, 결의 흐름과 표면의 흔적을 어루만지고, 그 위에 새로운 형상을 덧입힌다. 이 과정은 기계적 조형이 아니라 느리지만 정직한 시간의 축적이다.
그 결과, 그림은 단순한 인물화도 풍경도 아니다. 나무의 식물적 생명성과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이 하나의 이미지로 만나는 지점. 그 사이에서 작가의 시선은 늘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작가 권민정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박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School of Visual Arts에서 BFA를 취득한 작가는 대학에서 활발히 강의하며 회화와 예술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출강하며 회화적 사유의 확장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이번 전시의 의미
Between the Grain and Breath은 나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말하는 ‘타자와의 관계’ ‘공존’ ‘존재의 층위’라는 작가의 철학을 가장 농도 있게 보여주는 전시다. 화면 속 나무의 결은 인간의 삶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자,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는 자리의 상징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다음의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이에는 공명할 수 있는 숨의 틈이 있다.
그 틈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것,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