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 약탈 추정… 문화재 원상 복귀 흐름 속 의미 있는 회복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18세기 후반 한국 불교 회화 ‘지옥의 십왕상(十王像)’이 강원도 속초 신흥사로 돌아왔다. 이번 반환은 박물관의 최근 문화재 원상 복귀 노력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로, 한국전쟁기에 유출되었다고 추정되는 유물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에 돌아온 작품은 1798년 제작된 ‘지옥의 열 번째 왕(十王)’을 묘사한 족자로, 전체 연작 중 일부에 해당한다. 이 연작은 지하세계의 열 명의 왕이 죽은 자들의 선악을 심판하는 과정을 묘사한 불교화기로, 한때 여섯 점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 소장되었으나 이미 신흥사로 반환된 바 있다. 현재 해외에 남아 있는 세 점 역시 향후 함께 전시되기를 속초시는 기대하고 있다.

지옥의 열왕기 (1798), 조선(1392–1910), 한국.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사진제공 신흥사
지옥의 열왕기 (1798), 조선(1392–1910), 한국.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사진제공 신흥사

지옥의 열 번째 왕은 거대한 전사 형태로 등장해 죽은 이들의 윤회와 재생을 주관한다. 화면 위쪽의 무지개 형태는 환생의 길을 상징하며, 아래쪽에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악령이 등장해 죄업을 묘사하는 전통 불교 도상체계를 유지한다. 비단 위에 먹과 채색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이 불화는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회화적 완성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번 반환은 서울에서 열린 공식 기념행사에서 발표되었으며, 한국 정부와 종단,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해외 박물관 간 협력이 결실을 맺은 복원 사례로 기록된다. 행사에는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 한국문화재단 허민 소장, 국외한국문화재재단 곽창용 사무총장, 이병선 속초시장, 속초문화재환수위원회 이상래 위원장, 신흥사 주지 지혜 스님 등이 참석했다.

한국문화재단 허민 소장은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이뤄낸 의미 깊은 반환”이라고 강조했고, 이상래 위원장은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제 가치를 완성한다”고 밝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최근 몇 년간 문화재 반환 흐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 2023년: 그리스·터키에 12점 이상 유물 반환
· 2024년: 이라크에 고대 수메르 조각상 반환
· 같은 해 겨울: 그리스에 청동 그리핀 두상 반환

그리핀의 청동 머리, 기원전 7세기 3분기 사진-브루스 슈워츠-사진제공 신흥사
그리핀의 청동 머리, 기원전 7세기 3분기 사진-브루스 슈워츠-사진제공 신흥사

또한 2023년 ‘문화재 사업(Cultural Property Initiative)’을 출범시키며 출처 조사 인력을 두 배로 확대하고, 관련 정보를 미술품 데이터베이스에 지속 업데이트하는 등 기관 차원의 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지옥의 십왕상이 겪은 여정은, 작품이 그 자체로 담고 있는 ‘심판과 재생’의 주제처럼 역사 속 상처와 귀환이라는 서사를 함께 품는다. 전쟁의 혼란 속 흩어진 문화유산이 제자리로 돌아온 이번 사건은, 한국 문화재 복원 작업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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