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체홉 코메디'(사진 왼쪽부터 민사빈-박인옥-정연주-박소영-박하린) 2025.04.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체홉 코메디'(사진 왼쪽부터 민사빈-박인옥-정연주-박소영-박하린) 2025.04.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활동했던 러시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의사였던 안톤 체홉(Anton Chekhov)은 알렉드르 푸시킨에서 시작되어 표도르 도스토예스키와 레프 톨스토이로 절정을 이루었던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문호로 꼽힌다.

 

'황혼의 작가'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안톤 체홉은 700여 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집필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며 겪는 해프닝을 즐겨 썼다. 웃음의 가치를 알았던 코메디의 대가였던 그의 희곡은 상세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가슴을 조이는 사건도, 위대한 영웅도, 그렇다고 포악한 악당도 등장하지 않는 선과 악의 대결 등 갈등이 외형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조리함,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가능성과 현실화의 불가능 등 심리적인 미묘한 갈등체계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극단 어느날에서 제작한 '체홉 코메디'는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 중 '드라마', '아버지', 굴' 세 편을 각색, 연출되어 무대에 올랐다. 굴(20분), 아버지(25분), 드라마(20분)이 이어서 공연되며 약 1시간 동안 여섯 명의 여자배우들이 각 에피소드마다 배역을 바꿔가며 연기한다.

 

맨 먼저 공연된 '굴'은 '체홉 코메디'의 작곡을 맡기도 한 배우 정연주의 낭독극 형식으로 진행됐다. 추운 겨울 모스크바 거리에서 여덟살의 꼬마는 굴요리집 간판을 처음 보게 된다. 굴이 뭔지 몰라 아버지에 묻고 바다에서 나는 음식이라는 것을 안 꼬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맛있게 끊인 스프를 상상했던 꼬마는 굴이 딱딱한 껍질을 가진 음식인 것을 알고 개구리 얼굴에 집게가 달린 팔과 거북이 등딱지를 상상한다. 애니메이션 화면이 상영되며 정연주 배우는 낭낭한 꼬마 목소리와 중후한 저음의 아버지 보이스를 연기하며 애니메이션 화면과 매칭되어 낭독극의 묘미를 잘 살려냈다. 결국 꼬마는 난생처음 굴이라는 음식을 먹게 되지만 그 딱딱한 껍질까지 먹게 되며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처음 아이의 상상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가 지어지지만 결국 배고픔이 가지고 오는 슬픈 결말에 씁쓸함으로 마무리 되는 웃픈 드라마였다. 정연주 배우의 다양한 보이스 톤이 가져오는 낭독 연기가 관전 포인트이다. 

 

연극 '체홉 코메디'(박소영, 박인옥, 정연주, 민사빈, 박하린) 2025.04.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체홉 코메디'(박소영, 박인옥, 정연주, 민사빈, 박하린) 2025.04.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장면이 바뀌면서 배우 민사빈과 박하린이 막간의 시간을 활용한 오리탈(?)을 쓴 광대로 나와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우스꽝스러운 표정 연기과 몸짓이었지만 박자와 춤이 엇박자나면서 의도된 연출이지가 궁금했다. 

 

두 번째는 '아버지'로 박소영 배우가 아버지, 정연주 배우가 어머니와 아들, 박하린 배우가 수학교사 역할을 연기했다. 수학시험을 망친 아들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진다. 늘상 시험을 망친 아들이기에 아버지는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수학교사를 찾아가 낙제점수를 면하게 하라고 성화였다. 결국 아버지는 수학교사의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어찌 우리나라 입시와 비슷한 상황이 150년 전 러시아에서도 일어났다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할뿐.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수학교사와 아들의 낙제 점수를 어떻게든 올려야 하는 아버지의 어설픈 신경전이 박소영, 박하린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조명과 오브제가 조연으로 상황극에 맞게 조화롭게 맞물려 잔잔한 웃음을 선사했다. 배우들의 대사를 통한 언어적 유희와 움직임이 돋보인 코메디극이었다.

 

마지막에 공연된 '드라마'에서도 박소영 배우가 무라슈키나 부인 역을 박인옥 배우가 극작가 역으로 나왔다. 유명한 극작가의 집에 무라슈키나 부인이 방문한다. 부인은 자신이 쓴 희곡을 들어주길 간청하고 하지만 그 희곡은 엉터리에다 너무나도 길다. 끝날 뜻 끝나지 않는 상황을 박소영 배우는 원맨쇼에 가까운 표정 연기로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이며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 못하는 코메디 난장극으로 잘 마무리했다. 

 

연극 '체홉 코메디'(박소영, 박인옥, 정연주, 민사빈, 박하린) 2025.04.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체홉 코메디'(박소영, 박인옥, 정연주, 민사빈, 박하린) 2025.04.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2일 관람했던 연령층은 대부분 중장년 층 관객들이었지만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표정과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때론 진중하고 때론 큰 웃음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화답했다. 

 

1시간 남짓한 길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안톤 체홉의 세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그가 대중들에게 전하고 픈 메시지. 등장 인물들의 심리적, 외형적으로 또한 구체적으로 인물들의 동등함과 독특한 대화 구조를 통해 평범한 인물들이 살아가는 그 세대만의 희로애락을 잘 표현해 냈다. '코메디 대가'로 불리운 체홉의 소설 속 사상이 2025년 한국 무대에서 잔잔한 코메디극으로 대중들과 만남은 반길만한 즐거움이었다. 작품은 6일(일)까지 대학로 스카이씨어터에서 공연하며, 인터파크 티켓에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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