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창작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제목 그대로 오지게 재미난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재미와 감동 그리고 우리네 어머니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가슴 뭉클함을 주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기 전 시놉을 보면서 여러 이유로 한글을 배우지 못한 7080 할머니들이 한글을 문해학교를 다니면서 한글을 배워 읽고 쓰는 즐거움을 보는 스토리가 겨울시즌 해외 유명 라이센스뮤지컬과 국내 창작 대형뮤지컬 공연계에서 과연 관객 동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도 든 것은 사실이지만 공연을 봤던 16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는 극장 구조상의 사각지대를 제외하곤 만원 관객이었다.연령대도 20대부터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관람을 와 누군가에게는 어머니이자 누군가에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창작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과 에세이 도서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이 로 재탄생했으며, "늙으면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살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로 향하는 팔복리의 영란, 춘심, 인순, 분한. 한 평생 글을 읽지 못하는 설움을 숨기며 살았던 할머니들이 가는 학교는 바로 한글을 가르치는 문해학교다. 그러던 어느 날, 시사고발 다큐멘터리 전문 PD 석구가 라디오를 통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팔복 문해학교를 찾는다.
예산 삭감으로 수업 중단 위기에 놓인 문해학교의 선생님 가을은 석구에게 할머니들의 시 쓰는 모습을 세상에 알리자고 제안한다. "시를 아무나 쓰냐"며 손사래 치던 할머니들. 그러나 영화가 알려지면 수업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말에 보물찾기를 하듯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만의 시를 찾기 시작한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에는 네 분의 할머니가 등장한다. 영란, 춘심, 인순, 분한이 그들인데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는 이 할머니들이 왜 한글을 배우려고 하는 지에 대한 당위성을 뮤지컬 넘버 20개로 시의적절하게 풀어간다. 물론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재미와 함께 감동, 그리고마음 속 울림을 준다.
영란(89)은 팔복리 문해학교 반장으로 기침소리 한 번으로 할머니들 군기를 잡는다. 그런 영란에게도 무서워하는사람이있으니 바로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는 손주였다. 영란이 한글을 배워야 할 당위성은 한글을 배워 당당하게 손주를 만나고 책을 읽어주기 위함이다. 춘심(88)은 목소리가 크고 입이 걸어 화끈해 보이지만 어릴 적 꿈인 가수라는 꿈을 가슴에 품고 사는 팔복리 이미자이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홀로 시어머니와 자식을 거두면서 고달픈 세월을 노래로 버텨왔다. 인순(75)은 배운 건 없지만 아는 게 많은 문해학교 모범생이다. 아직도 꽃을 보면 마음이 셀레는 소녀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첫사랑이었지만 결혼하고 나서 화상이 되어버린 영감에게 애증을 품고 있다. 분한(72)은 팔십 대 형님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정 많고 유쾌한 막내. 아들을 못 낳아 분하다고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분한'으로 평생 살았지만 이름과 달리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려고 애썼다.
이런 각각의 이유가 결국 시로 만들어져 팔복리 네 할머니들은 전국 시 낭송 대회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시를 쓰게 만들어 준 인물은 팔복리 문해학교 선생님 가을 덕분이다. 때로는 호랑이처럼 호되게, 때로는 손녀딸처럼 다정하게 할머니들을 쥐락펴학 하며 한글을 가르치며 삶의 새로운 의욕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게다가 다큐 PD인 석구를 팔복리로 내려오게 해 시를 쓰며 즐거워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동화되어 마음이 움직여 결국 전국 시 낭송 대회에 나가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작품에는 5인조 라이브 밴드의 연주로 할머니들의 실제 시로 만든 넘버가 연주되며 음악도 할머니들이 주인공인 작품치고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연주된다. 실제 할머니들의 80년 인생이 농축된 시를 노래로 만들었기 때문에 뽐내지 않으면서 진심이 느껴지는 음악들이 극 전반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할머니들이라 '뽕짝'만 들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장르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화상'이라는 넘버에서는 영감을 향한 분노를 담은 할머니들의 화끈한 락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에게는 이 작품이 어떻게 기억이 될 수 있을까. 태어나 자라면서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들의 인생을 관객 입장에서 들어보면 시들어가는 나이는 없음을 알게 된다. 허투루 보내는 인생은 없다는 말이다. 관객들의 연령대에 따라 인생의 어떤 시기를 보내고 있을 지는 몰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엄숙한 객석으로 인해 접근라기 힘든 문턱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작품은 엄마, 할머니와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뮤지컬인 것이다. 시시하고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 아주 보통의 하루를 맞이하는 설렘, 내일은 더 재미있을 거란 기대감을 한 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무대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노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가시나'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배울 기회를 빼앗긴 할머니들이 떨리는 손으로 써내려 간 자신의 이야기는 원작에 이어 다시 한 번 관객들의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낼 것으로 본다. 실제로 공연되는 극장에서의 반응은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는 소통의 장이 펼쳐진다.
작품에서 팔순이 넘어서도 하루하루 즐거운 배움을 이어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고 있다. 뮤지컬 '오지게재밌는가시나들'은 2월 27일(목)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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