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1887년 미국, 신문에 연재된 성차별적 칼럼을 보고 분노해 반박 칼럼을 투고한 엘리자베스는 기고자 기자 윌슨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윌슨은 사과는 커녕 오히려 엘리자베스를 향해 자질 논란을 부추긴다. 지속되는 그들의 칼럼전쟁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편집장 매든은 두 사람의 공정한 승부를 위해 내기를 제안하고, 엘리자베스는 여성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첫 취재에 뛰어든다.
본명이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1864~1922)인 그는 1864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글솜씨가 좋았다. 1885년 피츠버그 디스패치에 실린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What Girls Are Good For)'라는 제목의 성차별적인 칼럼을 읽고 반박문을 신문사에 보냈다가 기자로 채용된다.
승부를 위해 철강공장에 위장 취업한 그는 여성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도 잠시, 공장의 추악한 이면을 마주하게 되고 파헤칠수록 새롭게 드러나는 진실을 따라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까지 잠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엘리자베스는 신문이 기업의 광고 즉 돈의 흐름에 따라 기자 정신에 위배되고 진실을 감추며 돈 앞에 무릎꿇는 현실에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이어지는 윌슨과 말타툼 끝에 해당 공장 노동자들이 전부 해고되고 편집장 매든도 1달간 직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엘리자베스는 철강공장 위장 취업 취재를 하며 들은 윌슨의 여동생 밀라의 행방불명 사실을 윌슨과 매든에게 말하고 윌슨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동생의 행방을 알 수도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지만 문제는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에는 여자 간호환자들만 들어갈 수 있기에 상황이 암담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진해서 또 다시 잠입 취재를 위해 윌슨과 매든과 정신이상자로 공모해 결국 뉴욕에 있는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에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1일 관람했던 공연의 캐스트를 보면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 역에 정다예, 에라스무스 윌슨 기자 역에 최민우, 편집장 조지 매든 역에 정호윤, 콜드웰&공장부장 역에 이준혁, 윌슨의 여동생 밀라 역에 나현진, 루나&소피아 역에 임바로미, 도로시&에이프릴 역에 시민지 배우가 열연했다.
"우리는 훌륭한 기자가 필요해 . 자네가 되는 건 어떤가 기자 말이야" 조지 매든 편집장이 엘리자베스에게 한 이 말은 필연적이든 타의적이든 엘리자베스가 진짜 기자로 태어나고 성장해 가는 단초가 된다.
작품 타이틀이기도 한 '넬리블라이'는 엘리자베스가 기자로 활동할 당시 썼던 필명이다. 작품 '넬리블라이'에는 크게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연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언론의 정당성이다. 신문을 통해 사회의 불편한 진실과 어두운 이면을 폭로해 시정하고 더 나은 사회로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작품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철강공장 위장 취업에서 드러났듯이 공장 내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리는 철저히 무시됐고 당연히 받아야 할 부상 치료 또한 합의서를 통해 무시되는 참담한 이 현실을 엘리자베스는 현장에서 똑똑히 목도했고 윌슨의 여동생 밀라는 이를 알리려 하다 블랙웰스 섬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엘리자베스는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지만 기사는 지면에 실리지 못한다. 지역 내 유지였던 공장장의 입김은 컸고 지역 내 모든 신문은 하나같이 침묵했다.기업의 돈 앞에 신문이 무릎꿇고 만 이 상황이 당시나 작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항상 존재한다. 엘리자베스 같은 올바른 기자 정신을 가진 열혈 취재 덕분에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고, 또한 밀라같이 앞장 서 동료의 권리를 챙겨나가려는 인권 운동이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한줄기 빛이 되어 준 사실은 고무적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과거보다는 월등히 나아진 조건 속에서 근무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못하는 어두운 이면도 존재하는 만큼 언론이 가진 올바른 시대 정신, 보도를 통한 사회부조리를 시정할 수 있는 힘을 올바르고 적당한 시점에서 펼쳐야 할 당위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 같다.
'넬리블라이는' 소외된 이들의 권리와 가치를 조명하는 이야기다. 철강공장에서의 소피아가 그랬고 알 수 없는 터무니 없는 모함으로 악명 높은 블랙웰스 정신병원에 갇혀 고초를 겪은 당시 간호환자들도 그랬다. 엘리자베스의 잠입취재로 드러난 블랙웰스 정신병원 상황은 끔찍했다. 정신이상자로 꾸며 잠입 취재했던 엘리자베스는 그곳에서 열흘간 머무르며 열악한 환경과 환자 학대를 몸소 체험했다. 그런 생생한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한 취재기는 '뉴욕월드' 1면을 장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정부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복지 예산을 증폭 증액했다. 엘리자베스는 성별을 떠나 탐사 보도의 새로운 장을 연 진정한 기자 정신을 가진 기자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는 여성도 얼마든지 남성만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입증함으로써 젊은 남성만 모집하지 말고 똑똑한 젊은 여성들도 일자리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회적 동조를 이끌어 내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엘리자베스는 사랑과 연민으로 이뤄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아쉬운 점은 무엇보다 무대적 연출. 소극장이라 어쩔 수 없이 구현해 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나름 무대 연출에 공을 들인 흔적은 분명해 보였지만 몇 차례 장면 전환에서의 약 10초 정도의 암흑은 극 흐름의 몰입도를 방해했다. 한 두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렇게 극단적인 암흑으로 하는 장면 전환은 다음 시즌에는 고려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엘리자베스가 왜 노동자와 여성인권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위장이나 잠입 취재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의 연출적 연결고리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서사적 구조의 세밀함도 보완해야 할 필요성도 엿보였다. 엘리자베스 내적인 성장 변화의 과정보다는 연속적인 외부 갈등으로만 연출이 이어지며 캐릭터가 자칫 평범해 보여질 수도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 부족해 보일 지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무대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들의 열연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리블라이'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실존 인물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이 당시 만연했던 성차별 및 노동자 인권 처우, 언론 탄압에 대한 사회의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 고정관념을 깬 탐사 보도의 시발점이 이뤘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판적인 사회의식과 때로는 무모할 정도의 과감한 행동력을 보인 엘리자베스의 용기있는 목소리야 말로 작금의 상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희망의 노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AK포토] 정다예, 최초 잠입 취재를 성공시킨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 (넬리블라이)
- [AK포토] 최민우-정호윤, 찰떡 케미 윌슨&매든 (넬리블라이)
- [AK포토] 정호윤, 편집장 조지 매든 (넬리블라이)
- [AK포토] 최민우, 스타 기자 에라스무스 윌슨 (넬리블라이)
- [AK포토] 나현진, 스타 기자 윌슨의 여동생 밀라 (넬리블라이)
- [AK포토] 임바로미, 루나&소피아(넬리블라이)
- [AK포토] 시민지, 도로시&에이프릴 (넬리블라이)
- [AK포토] 인사하는 이준혁, 콜드웰&공장부장 (넬리 블라이)
- [AK현장] 김민성 작·작사가 "'넬리블라이'는 엘리자베스가 사랑과 연민으로써 써 내려간 잠입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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