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랑데부'라는 의미는 특정한 시각과 장소를 정해 하는 밀회. 특히 남녀 간의 만남을 이른다. 연극 '랑데부'는 로켓 개발에 몰두하는 과학자 태섭과 춤을 통해 자유를 찾고자 하는 짜장면집 딸 지희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각자의 상처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2인극이다.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만의 법칙에 스스로 갇혀버린 태섭 역은 박성웅, 박건형, 최민호가 맡았으며,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났던 여정 끝에 가장 아팠던 장소로 돌아오게 된 지희 역은 이수경, 범도하, 김하리가 연기한다.
태섭의 아픔은 어릴적 온 가족이 동해안으로 별을 보러 가는 중 차 사고가 일어나고 어머니와 형은 어린 태섭을 보호하기 위해 껴안고 태섭만 살아남게 된다. 이 사고로 태섭은 보육원에 맡겨지고 그곳에서 동기생 24명과 함께 성장한다. 태섭은 자기때문에 어머니와 형이 죽었다는 피해의식의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켓이 되기로 결심하고 우주공학자가 된다. 이후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로켓 발사를 미루며 전국민의 원망을 얻게 되지만 태섭은 자신만의 소신을 버리지 않는다. 지희의 아픔은 아픈 어머니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가 결국 죽게되고 상을 치루자마자 아버지는 영춘관으로 일을 나간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 지희는 아버지 곁을 떠나고 아버지가 암으로 죽게되자 돌아와 영춘관을 맡아 운영한다. 하지만 번영이 아닌 원망의 대상이었던 영춘관을 불살러버리겠다는 일념이다.
그런 태섭과 지희는 역시 짜장면때문에 우연히 만나게 되며 극의 시작을 알린다. 무대는 17미터의 패션쇼장을 연상케 하는 트래퍼스 스테이지로 요즘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관객이 마주보는 기다란 직사각형 형태였다. 100분 동안 두 배우는 퇴장없이 연기를 펼쳐나간다. 모델이 마치 런웨이를 걷듯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과 트레드밀을 이용한 두 남녀의 심리적 대립이 마치 올림픽 펜싱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함을 보여주면서도 위트 넘치는 맛깔스러운 대사가 참 매력적이었다. 극 초반 엉뚱스러우면서도 반전미 넘치는 두 배우의 찰떡 케미 호흡으로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이 전개는 두 배우의 방백을 통해 일종의 희열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다. 방백의 특징적 표현을 통해 한 공간에서 다른 두 존재의 연기가 합쳐지며 관객들은 이야기 전개의 빠름과 함께 17미터 무대 위에 서 있는 두 배우에게 몰입하게 된다.
'짜장장면'이 만나게 해준 이 두 남녀의 인연은 처음에는 분노로 시작해 설렘의 단계로 넘어간다. 그리고 서로를 위한다는 핑계로 이별을 준비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 깊은 속에서는 떨어질 수 없는 어떤 운명의 끝으로 단단히 결박돼 있어 다시 만날 수 밖에 없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태섭과 지희의 춤이었다. 지희의 주사로 인해 태섭은 지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취한 지희로 인해 이 둘의 첫 번째 춤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태섭의 트라우마로 인해 접촉이 없는 춤으로 시작된다. 마치 우주 속을 유영하는 듯한 닿을듯 닿지 않는 이 둘의 춤에서 아직은 서먹하지만 애절한 아픔을 품었다. 하지만 이 춤으로 인해 태섭과 지희는 자신의 마음 한 켠을 내주게 되게 되며 한 발짝 가까워진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춤은 결국 서로의 행복을 위해 미팅을 주선하지만 태섭와 지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임을 자각하며 더 확실히 각성하게 되는 계기이자 마음 속 아픔을 치유하게 되는 행복한 단계로 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단 한마디의 대사없이 몸짓과 움직임, 눈빛만으로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관람했던 15일 페어는 태섭 역에 박건형, 지희 역의 범도하였다. 범도하는 서울예술대학,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배우로, 섬세한 감정 표현과 신선한 매력으로 주목받는 신예배우로 '랑데부'가 정식 연극 무대 데뷔이다. 하지만 연극 첫 무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대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이번 작품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한 열정이 무대 위에서 꽃피웠다고 할까. 마치 날 것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아직 무대를 쥐락펴락 할 정도의 아우라는 아니었지만 그 가능성은 무한해 보였다.
박건형은 20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이자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 중인 '만능 엔터테이너'의 면모를 보여온 자타 공인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스타다. 하지만 의외로 연극은 이번 '랑데부'가 처음이다. 하지만 20년의 다양한 무대 경력이 고스란히 녹아드는 연기였다. 능청스러움, 반전 개그, 애특함과 안타까움을 더해 때론 속삭이듯 부드러운 대사처리와 아픔도 기꺼이 감내해 내는 내면의 고달픔.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역시 박건형이라는 무대와 연기의 달인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연극 '랑데부'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대를 어떻게 품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뚜렷하고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 속의 인물을 통해 서로의 아픈 과거와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이 모든 과정들이 100분 동안 두 배우의 개성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작품은 5월 11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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