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4일까지 대학로 NOL 유니플렉스 1관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창작 뮤지컬 아몬드가 3년 만의 재연 무대로 돌아와 대학로의 관객들에게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난 19일 대학로 NOL 유니플렉스 1관에서 막을 올린 이번 공연은 전 캐스트의 성공적인 무대 위 신고식과 함께, 한층 업그레이드된 무대 언어로 원작 팬과 신규 관객 모두의 호응을 끌어냈다.

 

뮤지컬 '아몬드' 공연 사진. 제공 라이브(주)
뮤지컬 '아몬드' 공연 사진. 제공 라이브(주)

이번 시즌은 단순한 재공연이 아닌, 초연 이후 관객과 평단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린 확장판이라 할 만하다. 소설이 지닌 철학적 깊이와 뮤지컬 특유의 감각적 전달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관객에게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선사한다.

 

뮤지컬 아몬드는 손원평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가 주인공으로 타인과의 교감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분노로 가득 찬 소년 곤이 자유로운 감성의 도라를 만나 점차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2022년 초연 당시, 작품은 '원작의 철학과 뮤지컬적 감성이 만난 새로운 성공 사례'라는 평가를 받으며 창작 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2025년 3년의 시간을 거쳐 돌아온 이번 재연은 서사와 무대, 음악이 더욱 정교해진 '두 번째 성장기'라 할 만하다.

 

따뜻한 무대와 감각적 영상이 만든 공간의 힘

이번 시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대 디자인이다. 윤재가 운영하는 헌책방이 메인 공간으로 설정되었는데, 목재의 질감과 차분한 색조가 어우러져 따뜻하고 내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윤재의 내면세계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새롭게 도입된 LED 영상은 시공간의 변화를 넘어서,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무대 위 목재 질감과 전자적 영상이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작품의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확장한다. 관객들은 이 시각적 전환 덕분에 ‘윤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더욱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스테이지를 압도하는 거대 장치가 아니라, 소설의 서정성을 유지한 채 디테일한 공간 연출을 통해 내적 울림을 강화한 점에서 이번 무대는 '작은 규모의 대작'으로 불릴 만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전하는 '공감의 실체'

재연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 역의 문태유, 윤소호, 김리현은 무표정 속에 감춰진 작은 변화들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무대 위에서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는 바로 아몬드의 주제를 체현하는 결정적 장치였다.

 

분노로 세계와 맞서는 곤이 역의 윤승우, 김건우, 조환지는 거칠고 날 선 에너지를 표면에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 숨어 있는 깊은 상처를 놓치지 않았다. 두 소년이 서로의 결핍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배우들은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며 극의 중심축을 단단히 지탱했다.

 

윤재를 둘러싼 또 다른 축은 관객이다. 이번 재연에서는 출연진이 12명에서 8명으로 줄었지만, 배우들은 한 명이 여러 역할을 소화하며 극적 밀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특히 윤재의 회고록을 읽는 독자로서 내레이션을 맡는 장면은 관객에게 윤재의 내면에 직접 연결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윤재 대신, 그의 마음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다리 역할이 된 것이다.

 

이번 시즌에도 초연 제작진이 다시 모였다. 강병원 프로듀서가 기획을 총괄했고, 뮤지컬 마리 퀴리, 팬레터 등을 연출한 김태형 연출이 무대를 지휘했다. 음악은 프랑켄슈타인, 벤허의 작곡가 이성준이 맡아 감정을 직조하는 선율을 새롭게 가다듬었고, 대본은 뱀파이어 아더의 서휘원 작가가 다시 집필하며 섬세한 필력을 입증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고동욱 영상디자이너가 새롭게 합류해, LED 영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무대의 깊이를 확장했다. 원작의 서사와 무대적 실험을 결합하는 창작진의 합은, 한국 창작 뮤지컬이 단순한 ‘국내 시장 소비재’를 넘어 세계화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뮤지컬 아몬드는 재연을 통해 단순히 원작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해진 질문을 관객에게 다시 던진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년 윤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년 곤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도라. 세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을 지녔지만, 그 결핍이야말로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단절과 불통, 그리고 공감의 위기를 날카롭게 반영한다. 아몬드는 그 답을 단정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 스스로가 ‘나는 얼마나 타인을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극장을 나서게 한다. 바로 이 열린 결론이 작품의 진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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