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5일~14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 인간의 의식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SF 연극 '레몬'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연극 '레몬' 포스터. 제공 지상두시간
연극 '레몬' 포스터. 제공 지상두시간

'노스탤지어'라 불리는 가상 시뮬레이션 세계가 인간의 새로운 낙원이 된 미래. 사람들은 육체 대신 의식을 데이터화해 그 안에 '자신'을 옮겨 넣는다. 그러나 작품은 묻는다. "업로드된 의식 속의 나는 여전히 나인가."

 

'레몬'은 이 기술문명적 상상력 위에 시적 리듬과 미스터리 구조를 결합한 작품으로, '벽'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경계, 진실의 결핍, 기억의 조작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현대 SF의 철학적 사유를 연극적 미장센으로 구현하며, 불가해한 세계 속에서 '자아'를 추적하는 한 인간의 여정을 그린다.

 

"그 세계는 원형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건너편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단단한 벽으로 말이야."

해수면 상승과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거대한 제방으로 둘러싸인 도시. 그곳의 사람들은 불완전한 현실을 대신해 '노스탤지어'라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자신의 의식을 하나둘 업로드하며 살아간다. 형사 도민은 매일 밤 '노스탤지어'에 접속해 11년 전 업로드된 누나 하루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반려 기계동물 레몬이 갑자기 사라진다. 도민은 실종 사건과 함께 이어지는 연쇄 테러의 진실을 쫓는 과정에서 의문의 인물 오린을 만나고, 그녀를 통해 자신이 믿어온 세계의 틈새와 균열을 목도한다.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가운데, 도민이 알고 있던 진짜 세계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내가 보는 이 세계는, 정말 나의 것일까?'

 

연극 '레몬' 캐스트. 제공 지상두시간
연극 '레몬' 캐스트. 제공 지상두시간

연극적 SF, 혹은 시적 철학극

'레몬'은 단순한 미래 SF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의 본질을 탐색하는 시적 철학극에 가깝다.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설정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자아의 경계'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품은 음성, 빛, 움직임을 통해 실제와 가상의 전환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순환되는 시간'과 '벽'이라는 구조를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관객이 서서히 불안정한 인식의 미로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공연 관계자는 "'레몬'은 SF의 외피를 입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기억, 사랑, 존재의 흔적을 탐구하는 연극"이라며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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