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단체 여성국극 제작소가 오는 11월, 신작 여성국극 '네버엔딩 에버그린'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농촌계몽운동가인 최용신 선생의 삶과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로, 가장 어두운 시대를 가장 푸르게 살았던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다.
'네버엔딩 에버그린'의 무대는 1930년대 안산 본오동 일대, 과거의 청석골(샘골)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의 상징적 공간이자, 최용신 선생이 청년학원을 세워 가난과 무지에 맞서 싸웠던 현장이다. 작품은 바로 이 역사적 공간 위에서, 젊은 세대가 시대의 불안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서던 '녹색의 정신'을 다시 소환한다.
'네버엔딩 에버그린'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전기적 서사가 아니라, 이 시대의 청춘이 다시금 그 뜻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를 묻는 현재형 서사로 기획되었다. 여성국극이라는 형식은 그 질문에 어울리는 언어다. 민족의식과 여성의 정체성이 교차하던 장르적 뿌리를 가진 여성국극은, 시대를 넘어 여성의 목소리를 재현하고 계승하는 대표적 예술형태다. '네버엔딩 에버그린'은 이러한 전통에 현대극의 문법을 더해, 과거의 여성과 오늘의 청년이 시간의 경계를 넘어 대화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인물의 부활: 최용신, 그리고 '청춘의 동지애'
주인공 최용신은 봉건적 규범과 식민 억압이라는 이중의 장벽을 넘어선 인물이다. 그는 여성으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계몽운동가로서 배움이 곧 자유임을 증명했다. 작품은 이 용신의 궤적을 단순히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고, 내면의 흔들림을 세밀히 조명한다. 그가 마주했던 고뇌와 회의, 그리고 사랑과 희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진짜 인간 최용신이 드러난다.
용신의 곁에는 그의 동지이자 연인 박동혁이 있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청춘으로서,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며 끝내 용신의 신념을 이해하게 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청춘의 자화상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곧 실천의 다른 이름이다. 이들이 나누는 애정은 개인적 감정의 교류를 넘어, 공동체를 향한 연대의 힘으로 확장된다.
서사와 형식의 진화: 여성국극의 재도약
'네버엔딩 에버그린'은 여성국극 고유의 양식미를 지키면서도,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무대 언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전통적 창과 대사, 현대적 음악과 조명이 조화를 이루며, 고전극이 아닌 현대의 감각으로 부활한 여성국극으로 완성된다.
연출을 맡은 강윤지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인물들 간의 연대의 서사를 깊이 탐구해온 인물로, 이번 작품에서도 감정의 층위를 섬세히 다루며 사실적인 무대 전개를 구현한다. 극작은 고연옥이 맡았다. 그는 사회적 소외와 젠더 문제, 인간의 내면을 섬세히 포착해온 극작가로, 이번 작품에서는 최용신의 삶을 한 개인의 성장기이자 세대적 서사로 풀어낸다. 두 예술가의 협업은 기억의 복원이자 형식의 갱신이라는 여성국극의 과제를 예술적으로 구현한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노래와 몸짓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현실로 확장되는 메시지로 작동한다.
주인공 최용신 역의 김정연은 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교육자이자 여성운동가로서의 용신을, 이념이 아닌 인간의 온도로 표현한다. 여성국극 제작소 대표 박수빈(박동혁 역)은 현실의 벽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청년의 의지를 체화한다. 그는 절제된 감정선 속에서도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으며, 최용신과의 대사 호흡에서 작품의 중심 정서를 완성한다
'네버엔딩 에버그린'은 궁극적으로 '청춘의 의미'를 되묻는다. 용신과 동혁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의 서사지만, 이상을 좇는 과정에서 겪는 좌절과 불안, 관계의 혼란은 오늘날의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작품은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는 용신의 목소리를 통해, 현실에 지친 세대에게 묵직한 위로를 건넨다. 이는 여성국극의 미학이자 사회적 가치와도 맞닿는다. 전통예술이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할 때, 예술은 생명력을 얻는다. '네버엔딩 에버그린'은 바로 그 가능성을 증명한다. 역사 속 여성의 이야기가 어떻게 오늘의 청춘에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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