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18세기 빈 궁정을 배경으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평범한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의 대립을 다룬 연극 '아마데우스'가 9월 16일 개막과 함께 관객의 뜨거운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다.

 

토니 어워즈 최우수연극상을 비롯해 다섯 개 부문을 수상하며 연극사에 길이 남은 피터 셰퍼의 희곡은 이미 영화와 오페라, 뮤지컬을 통해 여러 차례 변주된 바 있다. 이번 무대는 그 고전을 국내 관객에게 새롭게 선보이며, 연극적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오페라와 뮤지컬적 요소를 적극 차용해 장르적 확장을 꾀한 것이 특징이다.

 

모차르트라는 천재 음악가와 살리에리라는 평범한 궁정 음악가 사이의 심리적 대결은 단순히 음악사의 흥미로운 일화가 아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 재능과 노력, 질투와 존경이라는 인간 보편의 감정 구조를 압축해 놓은 하나의 드라마다. 이번 2025년 무대는 그 질문을 다시금 우리 눈앞에 펼쳐 놓는다. 

 

연극 '아마데우스'의 가장 큰 미덕은 극적 서사와 음악, 그리고 무대미술이 서로의 존재감을 침범하지 않고 조화롭게 결합한다는 점이다. 18세기 빈 궁정을 재현한 화려하면서도 사실적인 무대, 장엄한 조명과 군무, 오케스트라 편성에 맞춘 성악과 아리아는 관객을 당시의 공간으로 이끌어간다. 

 

연극 '아마데우스'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아마데우스'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 24일 관람한 '아마데우스' 캐스트를 보면 안토니오 살리에르 역 권율,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 최정우, 콘스탄체 베버 역 이은정, 요제프 황제 역 김지욱, 카테리나 카발리에리 역 박진주, 작은 바람들 역 김하연, 강현성, 유희지, 이유나, 권강민, 표근률 등이 연기했다.

 

배우 권율이 맡은 살리에리 역은 이번 연극의 중심이다. 그는 평범한 궁정 음악가로서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자의 열등감, 천재를 향한 숭배와 동시에 솟구치는 질투, 결국 신에게조차 반기를 드는 파괴적 욕망을 목소리와 몸짓으로 생생하게 표현해 냈다. 그는 평범함 속에서 안온하게 살던 궁정 음악가였지만, 모차르트라는 절대적 천재의 등장을 목격하면서 내면의 균형을 잃는다. 신에게 바쳤던 경건한 믿음은 "왜 나에게는 그 재능을 주지 않았는가"라는 분노로 바뀌고, 그 질투는 결국 모차르트를 파멸로 몰아가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모차르트를 연기한 최정우는 자유분방한 천재예술가의 양면성을 구현해냈다. 자유분방하고 때로는 방탕한 생활 태도, 유쾌하고 경박한 언행은 '천재의 경박함'이라는 도식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표현된다.

 

관객은 무대를 통해 '완벽한 천재도 결국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임을 체감한다. 그의 음악은 영원성을 획득했지만, 그의 삶은 불안정하고 덧없었다. 연기자들은 이 아이러니를 몸으로 체현하며, 모차르트를 단순한 영웅적 존재가 아닌 인간적 불완전성을 지닌 인물로 되살려냈다.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살리에르 역 권율)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살리에르 역 권율)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신과 인간, 예술과 질투

연극 '아마데우스'의 극적 핵심은 살리에리의 내적 붕괴다. 신을 섬기며 평온하게 살아가던 그는 모차르트의 재능 앞에서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을 맞는다. 모차르트 같은 천재성을 주지않은 신을 원망하며, 종교적 경건함은 곧 타락과 복수심으로 변질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를 유혹하려는 시도, 모차르트의 원곡을 보고 절망에 빠지는 장면 등을 통해 인간의 질투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 천재성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아이러니를 만든다. 시기와 존경이 공존하는 모순적 감정은 결국 그를 파멸로 몰고 간다.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모차르트 역 최정우)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모차르트 역 최정우)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웃음·빛·침묵으로 남은 유산, 모차르트의 세 작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35세의 짧은 생애 동안 600여 곡의 방대한 작품을 남기며 서양음악사의 중심에 섰다. 그중에서도 작품에 등장하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그리고 미완성으로 남은 '레퀴엠'은 각각 다른 성격과 의의를 지니며, 오늘날까지도 공연사와 음악사 속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1786년 빈에서 초연된 '피가로의 결혼'은 희극 오페라의 대표작이자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로 평가된다. 귀족이 하인을 농락하려는 음모가 하인의 재치로 좌절되는 줄거리는 단순한 희극적 웃음을 넘어선다. 하인이 주인보다 도덕적 우위에 선다는 설정은 봉건적 위계질서를 비튼 것이며, 이는 3년 뒤 혁명을 맞게 될 유럽 사회의 공기를 예감케 한다. 1791년 초연된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 달 전 완성한 오페라다. 외형적으로는 공주를 구출하는 동화적 모험담을 따르지만, 이면에는 계몽주의 철학과 프리메이슨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빛과 어둠, 이성과 무지, 사랑과 시련이라는 대립 구도는 단순한 선악의 대립을 넘어 인간이 성숙해가는 과정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특히 '밤의 여왕 아리아'와 '파파게노의 노래' 등은 오페라 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아로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무대와 영상 콘텐츠에서 활용되며 대중적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작품 '레퀴엠'은 그가 세상을 떠나며 끝내 완성하지 못한 진혼곡이다. 제자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의 스케치를 토대로 보완해 오늘날 전해지고 있으며, 그 미완성의 운명 자체가 작품의 신화를 강화시켰다. 장엄한 합창과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단순한 추모의 음악을 넘어 '죽음의 의미'를 묻는 인간 보편의 질문을 환기시킨다.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모차르트 역 최정우, 살리에르 역 권율)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모차르트 역 최정우, 살리에르 역 권율) 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작품은 영화 아마데우스와 마찬가지로 모차르트의 요절과 살리에리의 회한으로 귀결된다. 원인 모를 질병으로 쓰러진 모차르트는 세상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반면 살리에리는 오랫동안 살아남았고 당대에는 찬양받았지만, 오늘날 기억되는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뿐이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인간 욕망의 허무를 드러내는 상징적 결말이다. 살리에리는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천재를 파괴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음악은 신의 선물처럼 영원히 남았다. 반대로 평범한 자신은 철저히 잊혔다.

 

'예술은 신이 내린 축복인가'... 아마데우스는 단순히 음악사의 일화를 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을 건넨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연극적 정교함을 유지하면서도 오페라 아리아와 뮤지컬적 스케일을 적극 수용해 새로운 무대적 가능성을 열었다.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 웅장한 음악, 대극장 무대의 스펙터클이 결합된 이번 무대는 단순한 장르 혼합을 넘어 '장르적 화합'이라는 이상을 구현했다. 무엇보다 작품이 전하는 주제적 보편성 '인간 내면의 질투와 결핍, 예술의 영원성과 삶의 덧없음'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울림을 준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다.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감탄하면서도 살리에리의 절망에 공감한다. 우리가 타인의 성공 앞에서 느끼는 질투와 비교, 그로 인한 자괴감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 조건이다.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요제프 황제 역 김지욱)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아마데우스' 커튼콜(요제프 황제 역 김지욱)2025.09.2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살리에르는 200년 전 죽었지만 그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직면하고, 동시에 예술이 지닌 압도적 힘을 새삼 깨닫는다. 아마데우스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오는 11월 23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