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예상보다 훨씬 유쾌하고, 생각보다 훨씬 먹먹한 작품'이라는 평가 속에 중국 라이선스 뮤지컬 '#0528'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0528'은 가벼운 판타지를 넘어, 꿈을 향한 열정과 삶의 회한이 교차하는 독특한 정서적 결을 가진 작품이다.

 

지난 11월 21일 관람한 공연은 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조합으로 이뤄졌고, 세 배우의 호흡은 완성도 높은 무대로 관객들의 높은 호응도를 이끌어 냈다. 

 

뮤지컬 '#0528'(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0528'(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브로드웨이를 향한 열망이 머무는 방, #0528

'#0528'의 배경은 브로드웨이 인근의 허름한 아파트 528호. 믿을 수 없을 만큼 싼 월세에는 이유가 있다. 그곳은 과거 화재로 목숨을 잃은 두 배우, 도리스와 브랜든이 여전히 떠나지 못한 '유령의 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 배우 지망생 에기는 꿈을 위해 이곳을 선택한다. 그리고 인간과 두 유령의 동거는 난데없는 대립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라는 한 방향'으로 향하는 기묘한 연대를 이루게 된다. 이 설정 자체가 이미 작품의 정서를 결정한다. 가벼운 코미디로 출발하지만, 점차 무대 뒤의 그늘, 배우의 상처, 포기하지 못한 꿈이 차곡차곡 쌓이며 관객을 서서히 흔든다.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환,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조훈의 에기 ... 서툼을 연기하는 능숙함

조훈 배우의 에기는 초반부터 이 역할에 최적화된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는 노래 실력이 부족한 인물로 설정된 에기의 초반 모습을 불안정한 발성, 긴장으로 어색한 호흡, 자신감 부족한 톤을 연기적으로 설계해 재현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서툼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도리스와 브랜든의 유령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하면서, 조환의 목소리는 점차 안정되고 노래의 호흡 배치가 달라진다. 초반부의 어눌한 가창을 거쳐 점증적으로 에기의 노래 실력이 완성되어 가는 변화를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는 점에서, 조훈의 디테일은 작품의 큰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에기가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는 장면은 도리스·브랜든의 과거를 드러내는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조훈은 인물 특유의 순수함과 벅찬 희망을 진심으로 끌어올리며, 초반의 작고 서툰 에기를 극적으로 성장시킨다. 이는 단순 연기와 노래의 변화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장 서사' 자체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결과다.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현석준의 도리스 ... 불같은 성정과 깊은 상흔

현석준 배우의 도리스는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순간을 정확히 알고 있는 배우다. 도리스는 까칠하고 까다롭고 급한 성격의 캐릭터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려 13년 동안 묻어두었던 복잡한 감정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현석준은 도리스의 겉과 속을 극적으로 분리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결로 표현한다. 에기에게 불같이 쏘아붙일 때, 브랜든과 투닥거릴 때, 스스로의 실패와 회한을 떠올릴 때. 그의 음색은 순간순간 날카로움에서 따뜻함으로, 냉소에서 애절한 공명으로 이동한다. 특히 에기를 통해 13년 만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장면은 공연 전체에서도 가장 숙연한 순간이다. 이 장면에서 현석준의 목소리는 울컥하게 매듭져 있다가도, 곧 부드럽게 풀리며 도리스의 마음이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그 순간 조명과 음악 역시 절제된 톤으로 받쳐주어, 관객은 무대 한가운데에서 인물이 감정을 내려놓는 순간을 거의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된다.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심수호의 브랜든 ... 다정함과 죄책감을 모두 품은 연기

심수호 배우의 브랜든은 공연의 온도를 결정짓는 존재다. 도리스가 감정의 고저가 큰 인물이라면, 브랜든은 따뜻한 결을 유지하며 두 사람 사이의 완급을 책임지는 캐릭터다. 

 

심수호는 재치 있는 대사는 물론이고, 작은 제스처와 반응 하나하나에서 이 인물은 본래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도리스에게는 툭툭 던지는 농담을 하면서도, 에기에게는 어깨를 토닥이는 듯한 눈빛으로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브랜든은 사실 도리스보다 더 깊은 죄책감을 안고 있다. 자신들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자신이었다는 사실. 브로드웨이 오디션 합격에 들떠 파스타를 만들다가 불을 켜놓고 잠들었다는 사실.

 

이 사실이 후반부에 아파트 주인의 입을 통해 밝혀질 때, 심수호의 표정과 긴 호흡은 매우 조심스럽고 절제되어 있다. 과장된 감정 연출을 피하고, 깊고 낮은 톤으로 죄책감의 무게를 정직하게 전달한다. 그 순간, 이전까지 보였던 그의 유머는 모두 맥락을 얻고 캐릭터의 입체성을 완성한다.

 

'#0528'은 3인극의 구조다. 때문에 캐릭터 간 리듬과 대사 템포, 노래의 호흡이 서로 맞물려야 작품이 비로소 완성된다. 이날 조훈·현석준·심수호 조합은 완벽에 가까운 합을 이루었다. 사실 약간의 실수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극의 흐름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흡수되었다. 

 

코믹 타이밍이 터질 때는 세 사람이 같은 박자로 반응했고, 진지한 순간에는 서로의 톤을 조절해 감정선을 이어갔으며, 군데군데 삽입된 재치 있는 애드리브들도 과하지 않게 조화를 이뤘다. 특히 마지막 넘버에서 세 사람이 부르는 합창의 울림은, 단순한 화음 이상의 '극 전체의 결말을 압축하는 감정적 에코'를 만들어낸다. 에기의 희망, 도리스의 화해, 브랜든의 용서가 하나의 큰 흐름처럼 흘러들어 간다.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0528'이라는 숫자가 품은 의미

극의 제목이 '#0528'인 이유는 단순한 아파트 호실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공간은 두 유령의 13년이 머문 자리이며, 에기의 꿈이 시작되는 자리이며, 세 사람이 서로의 상처와 희망을 교환한 중간 지점이다. 물론 극 마지막 부분에서 에기에 의해 타이틀이 왜 '#0528'인지는 직접적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것보다 #0528은 인물들이 머물렀던 과거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나면 이 숫자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시간의 틈새'를 상징하는 기호처럼 느껴진다.

 

'#0528'의 무대는 큰 전환 없이 LED 패널과 조명 변화만으로 대부분의 환경을 구성한다. 제한된 공간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전환한 셈이다. 아파트 화재 장면이나 지옥문 입구에서의 위태로웠던 순간들 뿐만 아니라 유령들의 존재감, 훈련 캠프의 역동성, 회상 장면의 몽환성, 아파트의 현실적인 질감 이 모든 것이 LED의 컬러·농도·빛의 방향만으로 효과적으로 분리된다. 이는 소극장 뮤지컬에서 보기 쉽지 않은 수준의 최적화된 무대 디자인이며, 작품이 가진 코믹·판타지·드라마 요소를 자연스럽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0528' 스페셜 커튼콜(에기 역 조훈, 도리스 역 현석준, 브랜든 역 심수호) 2025.11.21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불안한 시대의 청춘에게 건네는 가장 유쾌하고 가장 따뜻한 응답

빛나는 꿈을 쫓는 대신 현대인들은 지속 가능한 현실을 먼저 계산해야하는 시대의 무게 속에 살아간다. 뮤지컬 '#0528'은 놀랍도록 소박한 방식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진심 어린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0528'은 프리미엄한 거대 서사를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더 정직하고,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꿈을 포기하지 못한 청춘의 이야기, 가족과 화해하지 못한 채 남겨진 회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결국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 이 모든 주제가 코믹한 장면들과 유쾌한 넘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작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한 인간(에기)과 두 유령(도리스·브랜든)의 성장과 화해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의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준다. 이 작품은 무대 디자인이나 기술적 볼거리만으로 승부하는 공연이 아니다. '#0528'의 진짜 힘은 서툴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과거에 묶여 버린 영혼들이 서로를 변화시키며 성장해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은 아주 거창한 희망이 아닌 '작을지언정 내일을 살아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불안한 시대, 웃으면서도 진심을 느끼고 싶은 관객에서 '#0528'은 지금 가장 필요한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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