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사진 왼쪽부터 이세창-강은탁-방은희-한다감-서지유-김세람-연출 조금희-박형준).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사진 왼쪽부터 이세창-강은탁-방은희-한다감-서지유-김세람-연출 조금희-박형준).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오는 10월 9일(목)과 10일(금),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테네시 윌리엄스의 명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새롭게 무대에 오른다. 이번 작품은 극단 툇마루와 조금희 연출이 힘을 합쳐 선보이는 정통 심리극으로 스크린·무대·방송을 넘나드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화제를 모은다.

 

194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발표 당시 퓰리처상과 뉴욕극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미국 사실주의 희곡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이다. 이후 영화화되며 비비안 리와 마론 브란도의 열연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기록, 전 세계 대중에게도 강렬히 각인됐다.

 

이 작품은 미국 남부 몰락 귀족 출신의 여성 블랑쉬가 동생 부부와 함께 살게 되면서 맞닥뜨리는 욕망, 현실, 폭력, 좌절의 감정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블랑쉬와 매형 스탠리 사이의 극렬한 갈등은 단순한 가족 내 분쟁을 넘어 사회 계급, 성별, 시대 가치의 충돌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은 개인의 몰락을 통해 욕망의 파괴성과 인간 내면의 불안정성을 심도 깊게 조명하면서도,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미하게 남은 연대와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더샵갤러리에서 진행됐다. 제작발표회에는 연출 조금희 및 배우 방은희, 한다감, 이세창, 강은탁, 박형준, 서지유, 김세람이 참여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조금희 연출).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조금희 연출).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출을 맡은 조금희는 이번 공연의 의미를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의 모습을 심도 있게 다루고자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 소통의 부재, 뒤틀린 욕망이 어떻게 개인을 파멸로 이끄는지 보여주려 합니다"라며 특히 블랑쉬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무용수의 몸짓과 마임을 활용한 표현주의적 기법을 무대에 접목했다고 밝혔다.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의 경계, 무대 위의 심리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겉으로는 사실주의 희곡의 틀을 따르지만, 무대와 조명, 음향, 음악에 표현주의적 장치를 결합한다. 블랑쉬의 불안정한 심리는 잿빛 조명과 불안한 재즈 선율로 구현되고, 스탠리가 등장할 때는 육중한 음향과 강렬한 색감의 조명으로 대비된다. 이러한 장치는 무대의 폐쇄감과 압박감을 점점 강화하며, 관객에게 블랑쉬의 내면 붕괴를 생생히 체험하게 한다.

 

조금희 연출은 "이 작품은 블랑쉬나 스탠리의 욕망을 넘어서 각각 개인의 이기심이나 뒤틀린 욕망에 결국 어떻게 파멸로 이끌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무척 무겁고 정말심리적인 작품이지만 현세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라며 "1947년 당시의 인간 욕망은 지금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인간의 욕망과 소통 부재를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탠리 코왈스키 역 강은탁).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탠리 코왈스키 역 강은탁).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이번 작품의 캐스팅은 실력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배우들이 눈길을 끈다. 몰락한 귀족 여인이자 희망과 욕망의 희생자인 블랑쉬 역은 한다감, 방은희가 각기 다른 해석으로 무대에 오른다.

 

방은희는 "아마 전 세계 블랑쉬 중 제일 나이가 많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나이를 넘어선 블랑쉬를 만들고 싶어요. 뼈를 갈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해 현장을 웃음과 박수로 물들였다. 그는 블랑쉬의 첫 대사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에서 갈아타 천국에서 내려라'를 두고 "첫 대사에서 제일 고민했어요. 블랑쉬의 욕망은 무엇이고 묘지는 무엇이고  천국은 무엇일까? 저는 묘지에서 블랑쉬가 '갈아탄다'라는 것 때문에 또 다른 희망을 꿈꾼다라는 걸로 묘지를 생각했어요"라며 "천국은 사랑의 완성이라는 욕망, 사랑의 여러 형태가 있을 때 블랑쉬가 꿈꾸는 사랑은 정말 순수한 새하얀 육체에 관계가 없는 그런 사랑일 수도 있다 생각했습니다. 천국이 죽음일 수도 있고 진정한 사랑일 수도 있고 육체는 더러워졌지만 정신만큼은 깨끗하고 싶은 블랑쉬의 상황을 이해하려하며 연습에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욕망은 단순한 본능이자 희망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블랑쉬의 '묘지'는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전환점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해석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블랑쉬 드모아 역 한다감).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블랑쉬 드모아 역 한다감).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이번 무대의 가장 큰 화제는 배우 한다감의 첫 연극 도전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미 꾸준히 존재감을 입증해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몰락한 귀족 출신 여성 블랑쉬 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연극은 감히 꿈꾸지 못한 무대였습니다"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한다감은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솔직한 소감을 전했다. 한다감은 "제가 영화와 드라마만 하다가 사실 연극 무대가 처음입니다. 너무 어려운 매체라고 생각했고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무대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저에게 축복처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0월 9일, 10일 공연은 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연습 과정에서 느낀 부담감도 숨기지 않았다. "다른 베테랑 배우님들보다 몇 배로 연습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매일같이 몰두하고 있습니다. 관객분들께 감동과 여운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다감은 블랑쉬 역할을 두고 "많은 배우들이 이미 연기한 블랑쉬지만, 제가 했을 때는 또 다른 색깔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진심과 목소리로 저만의 블랑쉬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탠리 코왈스키 역 이세창).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탠리 코왈스키 역 이세창).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육체적이고 본능적이며 시대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스탠리 역에는 강은탁, 이세창이 나선다. 스탠리 역의 이세창은 이번 작품을 '배우 인생의 마지막 변곡점'이라 표현했다. 그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시작해 드라마, 영화, 카레이싱까지 경험했지만, 연극 전공을 하지 않고 받은 수많은 혹평을 가장 후회합니다"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30년 연기 생활의 모든 것을 갈아 넣고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사람은 결국 다 연기하며 산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하고, 분노 속에서도 웃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며 작품의 메시지와 자신의 삶을 겹쳐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탠리 코왈스키 역 강은탁).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탠리 코왈스키 역 강은탁).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또 다른 스탠리 역의 강은탁은 이번 무대를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기회"라고 표현했다. "연기를 꿈꾸는 모든 남자 배우들에게 스탠리라는 역할, 그리고 국립극장 무대는 꼭 이루고 싶은 꿈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꿈이 제게 우연히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고 설레는 하루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기회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좋은 스탠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강은탁은 스탠리라는 인물에 대해 "솔직하고 감정에 충실한 동시에, 폭력적이고 거친 언행으로 드러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 역할을 단순히 강인한 남성상으로만 해석하지 않았다.

 

"스탠리는 겉으로는 강하지만 사실 비겁하고 부끄러운 면을 동시에 가진 인물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를 파렴치하게 몰아붙이지만, 그 뒤에는 변명과 합리화를 덧붙이곤 하지요. 이런 모습이야말로 스탠리의 양면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연습 과정에서 의외의 영감을 얻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수사자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사자는 웅장하고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자기 멋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암사자가 앞발로 툭 치면 금세 머쓱해하며 물러나기도 하지요. 스탠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본능적으로 강하지만 동시에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라며 "본능과 이성, 강인함과 부끄러움이 공존하는 인간 스탠리"를 관객 앞에 선보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텔라 역 서지유, 김세람).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텔라 역 서지유, 김세람).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현실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스텔라 역은 서지유, 김세람이 맡았다.

서지유는 “스텔라 역할은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극을 이끌어 가는 블랑쉬의 동생이에요. 몰락해가는 남부 귀족사회에서 벗어나 뉴올리온스에 정착한 단단하고 현실적인 인물로 관객이 가장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인물"이라며 "현실에 적응하고 고민을 잘 견디며 익숙해지려고 부단히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텔라 역 서지유, 김세람).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스텔라 역 서지유, 김세람).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김세람은 "스텔라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갈등과 선택을 해야 하는 역할이에요. 그래서 그 역할에 대해서 아직도 고민하고 있고 정말 치열하게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남편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늘 갈등합니다. 매순간 이 갈등과 양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많은 분들이 어떤 선택을 할 때 100% 이거다 라는건 없는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도 작품을 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욕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미치 역 박형준).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미치 역 박형준).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블랑쉬의 마지막 희망이자 좌절의 원인이 되는 미치 역은 박형준이 연기한다. 박형준은 "미치는 스탠리와 또 다르게 순박하고 연민 있는 인간적인 모습의 블랑쉬를 사랑하는인물입니다. 원작 속 미치는 곰 같은 인물로 묘사되지만, 제 해석은 '팬더 같은 인간미 있는 캐릭터'"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블랑쉬에게 연민과 사랑을 주지만 동시에 파멸의 문을 열게 하는 복합적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시대를 넘어선 울림

이번 작품은 단순한 사실주의 연극을 넘어, 무용과 음악,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심리극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한다. 특히 블랑쉬의 내면 붕괴를 무용수의 안무와 판토마임으로 형상화하는 시도는 이번 무대만의 차별점이다.

 

여러 차례 무대에 올라온 고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그렇다면 이번 극단 툇마루의 무대는 무엇이 다를까? 조금희 연출은 기존 작품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고 전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조금희 연출).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작발표회(조금희 연출). 2025.09.1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이미 워낙 많이 공연된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번 무대에서는 어떻게 색깔을 달리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희는 표현주의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작품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장면마다 암전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연출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1940년대) 유행했던 음악과 블루재즈, 무용수의 춤을 도입해 장면 전환을 시도했다. 덕분에 극은 리듬감과 흐름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했다. 또 하나의 차별성은 블랑슈의 심리 묘사다. "이 작품은 리얼리즘 극이지만 동시에 심리극이기도 합니다. 블랑슈의 고통과 과거의 회상을 단순히 대사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의 안무와 판토마임, 몸짓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조금희 연출은 이번 시도가 과거 다른 공연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하며 "관객 여러분께서 직접 보시고 다양한 평가를 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단순히 한 여성의 몰락을 그린 비극이 아니다. 몰락해 가는 귀족문화와 부상하는 도시 노동계급의 충돌, 인간 본성의 이기심과 폭력성, 그리고 희망을 향한 집착까지시대와 사회를 압축한 심리극이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다시 태어나는 이번 무대는 고전의 무게와 동시대적 울림을 동시에 품고 관객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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