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릴리 역 황미영, 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릴리 역 황미영, 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즈 역 이세영, 상담사 역 김승환).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즈 역 이세영, 상담사 역 김승환).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두산아트센터 DAC Artist로 선정된 극작가 겸 연출가 박주영의 신작 '마른 여자들'(원작: 다이애나 클라크 소설, Thin Girls)는 9월 28일까지 Space111 무대에 오른다.

 

박주영은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사회 구조 속에서 쉽게 지워지는 여성의 삶을 무대 위로 불러온 창작자다. 여성 택시기사를 다룬 '영자씨의 시발택시', 그림자노동자를 그린 '지하 6층 앨리스', 여성 배 수리공의 세계를 조명한 '고쳐서 나가는 곳' 등에서 그는 늘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본연의 욕망과 한계를 탐구해왔다.

 

그런 박주영이 이번에 주목한 것은 섭식장애를 겪는 여성들이다. 다이애나 클라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번 작품은 거식증 환자 로즈와 릴리, 그리고 그들과 닮은 ‘마른 여자들’을 무대에 불러내며, 여성의 몸을 둘러싼 욕망과 혐오, 그 이중적 시선을 치열하게 묻는다.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세라 역 정제이, 로즈 역 이세영, 캣 역 임윤진).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세라 역 정제이, 로즈 역 이세영, 캣 역 임윤진).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이세영, 정제이, 조어진, 임윤진, 최정화).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이세영, 정제이, 조어진, 임윤진, 최정화).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프레스콜은 간담회 없는 전막 시연이었다. 

 

'마른 여자들'은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연극적 언어다. 섭식장애는 단순히 개인의 질환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박주영은 이를 '자기파괴가 아닌 자기증명'의 언어로 읽는다. "나는 여기 있다"라는 선언을 사회가 이해하지 못하고 배제하는 순간, 섭식장애는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진다. 연극 '마른 여자들'은 바로 이 지점을 드러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여전히 규율과 평가의 대상이다. '마른 몸'은 미적 이상으로 소비되며, 동시에 그 집착은 '자기파괴적'이라 낙인찍힌다. 사회가 강요한 욕망이 곧 혐오로 돌아오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여성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분열한다. '마른 여자들'은 이 구조를 직시하며, 무대 위에서 여성의 몸을 욕망과 혐오의 교차점, 통제와 해방의 경계로 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 작품은 단순히 한 개인의 병리적 서사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몸의 정치학'을 다루는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런 역 김별, 제나 역 김유민).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런 역 김별, 제나 역 김유민).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박주영은 이번 작품에서 '아무도 우리의 몸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라는 문제의식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섭식장애를 단순히 병증이 아니라 사회적 언어로 해석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줄여가며 세상에서 '사라지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이다.

 

무대 장치 또한 이러한 연출 의도를 반영한다. 섭식장애를 가진 쌍둥이 자매와 주변 인물들의 내적 갈등, 상처, 욕망은 이미 서사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무대의 구조적 출발점은 '원'이다. 하나의 원, 그보다 큰 원, 또 그보다 더 큰 원으로 겹겹이 확장된 구조는 인간 내면의 층위와 사회적 공간을 동시에 상징한다. 배우들의 움직임 또한 원의 궤적을 따라 흐르며, 모든 동선과 관계의 방향성이 원형의 질서 속에서 규정된다. 그러나 인물들은 끊임없이 원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탈주와 회귀의 반복이 곧 극의 긴장과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무대 위의 공간은 최대한 비워두어 담백함을 유지한다. 그 위에 올려지는 배우들의 서사, 몸짓, 목소리가 채워질 때 비로소 완전한 무대가 완성된다. 이는 곧 연출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과도 닮아 있다. "인물들은 원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향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 물음을, 무대 자체가 관객 앞에 제시하는 것이다.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김승환, 릴리 역 황미영)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김승환, 릴리 역 황미영)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캣 역 임윤진, 세라 역 정제이).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캣 역 임윤진, 세라 역 정제이).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에서 영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기록 장치로 기능한다. 쌍둥이의 관계, 집단의 움직임, 그리고 식사의 의례는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미세한 차이들이 쌓여 소용돌이를 만든다. 프로젝션으로 구현되는 영상은 마치 확대경처럼 배우들의 작은 행위를 패턴화하고 확장하며, 완결된 구조물이 아니라 미완의 패턴, 불가능한 균열로 남는다. 무대 위 미디어는 미완의 구조로 남아, 관객에게 사라짐과 존재의 모순을 체험하게 한다.

 

즉, '마른 여자들'은 텍스트의 서사를 넘어 공간과 몸의 연극을 통해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감각적으로 던진다.

 

먼저 이 작품을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의 고통을 비추고 연대할 수 있는지를 주목한다. 로즈가 시설에서 만난 '마른 여자들'은 외모도 나이도 다르지만, 사회가 지운 자리에서 같은 상처를 공유한다. 이들이 서로의 결핍을 마주하며 연결되는 순간, 연극은 단순한 병리적 묘사를 넘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박주영의 전작들과도 궤를 같이한다.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반면, 섭식장애를 '자기 증명'으로 해석하는 시도는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병리적 상태를 미화하거나 낭만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 자체가 박주영이 의도한 바일 수 있다. 사회가 외면해온 목소리를 강제로 듣게 만드는 것, 그 불편함을 통해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것, 그것이 연극의 역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선은 본 작품의 연출적 실험성에 주목한다. 원형 무대, 영상, 움직임이 결합된 무대 언어는 단순히 대사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관객이 인물의 내면을 체험하도록 만든다. 이는 박주영이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수상 당시 '여성들의 서사를 역동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와도 이어지는 지점이다.

 

'마른 여자들'은 단순히 섭식장애라는 특수한 병리적 사례를 다루는 연극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몸을 규정해온 사회적 시선과, 그 시선에 저항하거나 무너지는 여성들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나아가 고립된 개개인이 어떻게 서로의 상처를 통해 연대할 수 있는가, 혹은 연대조차 좌절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확장한다.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캣 역 임윤진, 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캣 역 임윤진, 로즈 역 이세영)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마른 여자들' 프레스콜. 2025.09.0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박주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나는 여기 있다'라는 사회가 들으려 하지 않는 목소리를 무대 위에서 증폭한다. 그것은 불편할 수 있고, 때로는 낯설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관객에게 사유를 강제하며, 연극이 사회와 만나는 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마른 여자들'은 단순한 신작 발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여성의 몸과 욕망, 혐오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를 드러내며, '마름'을 통해 사라져가는 이들의 존재를 무대에 기록한다. 이는 역사에 남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무대에 올려온 박주영의 작업 궤적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우리는 과연 여성의 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결국 '마른 여자들'은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남긴다. 이 질문 앞에서 불편해지더라도, 그것은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거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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