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7일(수)~10월 25일(토)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풍경을 본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다시 보는 일입니다. 이번 전시는 그 거대한 거울이자 심해의 바다처럼 끝없이 깊은 층위를 열어줄 것입니다"

 

작가 테레시타 페르난데스 (Teresita Fernandez)의 개인전 '지층의 바다' 간담회.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작가 테레시타 페르난데스 (Teresita Fernandez)의 개인전 '지층의 바다' 간담회.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층의 바다'는 테레시타 페르난데스(Teresita Fernández)가 서울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자 약 10년 만의 귀환이다. 이번 전시는 리만머핀 뉴욕에서 열린 'Soil Horizon', 런던 전시 'Astral Sea'에 이어 개최되며, 최근 미국 휴스턴 메닐 드로잉 인스티튜트와 뉴멕시코 사이트 산타페에서 열린 미술관 전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또한 현재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그룹전 'Shifting Landscapes'에도 그녀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유약을 입힌 세라믹 설치작업과 빛을 머금은 회화 패널 등 신작을 통해, 오랫동안 지속해온 '지층'과 '지하 풍경'에 대한 탐구를 심해(深海)의 층위로 확장한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테레시타 페르난데스의 서울 첫 개인전 '지층의 바다'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이어온 '지층'에 대한 연구를 이번에는 심해(深海)의 층위로 확장했다"라며 "물질의 퇴적과 해류의 흐름, 천체의 움직임이 모두 하나의 연속적 풍경"이라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작가 테레시타 페르난데스 (Teresita Fernandez)의 개인전 '지층의 바다'(Liquid Horizon 1, 2025)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작가 테레시타 페르난데스 (Teresita Fernandez)의 개인전 '지층의 바다'(Liquid Horizon 1, 2025)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페르난데스는 30여 년간 풍경의 복합성과 역설을 시각 언어로 풀어내 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성과 비물질성, 고대성과 현대성이 그녀의 작품 속에서 공존한다. 풍경은 자연의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성과 역사, 정체성이 교차하는 장(場)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풍경은 당신이 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것이다. 당신은 풍경을 바라보지만, 그 풍경은 또한 당신을 돌아본다"고 말한다.

 

전시의 핵심인 'Stacked Landscapes' 연작은 목탄, 청색 안료, 모래 등 원초적 재료를 층층이 쌓아 만든 알루미늄 패널이다. 멀리서 보면 색면 추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지질학적 단면도, 혹은 심해의 퇴적층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를 두고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은 수천만 년의 축적물"이라며 "그 축적이 결국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역사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테레시타 페르난데스(Teresita Fernández) 첫 개인전 '지층의 바다' (White Phosphorous/Cobalt, 2025)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테레시타 페르난데스(Teresita Fernández) 첫 개인전 '지층의 바다' (White Phosphorous/Cobalt, 2025)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또한 세라믹 큐브 수천 개로 구성된 설치작업 '화이트 포스포러스/코발트'는 팽창과 수축을 동시에 암시하는 시각적 장을 만들어내며, 지질학적 층위에서 천체 현상에 이르는 다양한 이미지를 환기한다. 작품 제목에 담긴 백린과 코발트는 채굴과 파괴의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며 미학적 아름다움 속에 정치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코발트는 스마트폰 배터리의 원료이지만, 동시에 아프리카 콩고의 착취와 채굴 폭력을 상기시킵니다. 풍경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권력과 자원의 흐름, 보이지 않는 전쟁까지 품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흑연 부조 패널 연작 '야상(Milk Sky)'은 밀물과 썰물의 리듬을 시각화하며, 은하수의 확장성과 여성·우주를 잇는 모성적 상징을 함께 담아낸다. 페르난데스는 이를 "밤하늘과 바다가 결국 같은 리듬을 공유한다는 은유"라며 "여성성과 우주, 모성의 상징성을 연결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테레시타 페르난데스(Teresita Fernández) 첫 개인전 '지층의 바다' (Nocturnal(Milk Sky)3, 2025)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테레시타 페르난데스(Teresita Fernández) 첫 개인전 '지층의 바다' (Nocturnal(Milk Sky)3, 2025) 2025.08.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페르난데스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을 넘어 권력·가시성·삭제의 문제를 직시한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정치적 맥락을 교차시켜, 풍경 속에 내재된 식민지화와 폭력의 역사를 드러낸다. 풍경은 관조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긴장과 개인적 기억이 교차하는 복합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는 "예술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풍경 자체가 이미 권력과 지배의 흔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지질학적 풍경은 언제나 매혹적이었다. 화산, 해안선, 한강과 같은 요소가 제 작업의 지층적 이미지와도 이어집니다. 관객분들이 작품을 보면서 단순히 바다나 하늘을 떠올리기보다,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역사와 기억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지층의 바다'는 지하에서 우주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풍경을 재조명하며 물질의 세밀함과 개념적 사유를 동시에 제시한다. 관람객은 작품 속에서 육지와 바다, 현실과 상상, 개인과 집단이 교차하는 다층적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