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근혜갤러리, 조르주 루스 개인전 개최

조르주 루스, 서울 ,1998, c print, 125cm x 160cm.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조르주 루스, 서울 ,1998, c print, 125cm x 160cm.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서울의 시간과 기억을 공간 속에 새겨온 프랑스 작가 조르주 루스(Georges Rousse, 1947~)가 27년 만에 다시 서울을 찾았다.

 

공근혜갤러리는 2025년 11월 8일부터 프랑스의 세계적 설치·사진 작가 조르주 루스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98년 한국에 처음 그의 작품을 소개한 공근혜 대표와의 오랜 인연을 기념하며, '시간이 남긴 풍경'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특별한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서울, 1998' 시리즈 2점을 비롯해, 최근 신작 수채화 드로잉과 사진 작품 등 20여 점이 함께 소개된다. 특히 1998년 청계천 황학동 재개발 지역의 폐가를 무대로 제작된 '서울, 1998'은 급변하는 서울의 도시사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시각 기록이자, 사라지는 공간의 예술적 기념비로 평가받는다.

 

조르주 루스, 서울 ,1998_2, c print, 125cm x 160cm.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조르주 루스, 서울 ,1998_2, c print, 125cm x 160cm.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붉은 원은 태양의 빛, 그리고 존재의 인사였다"

조르주 루스는 1980년대 초부터 철거 예정지나 버려진 건물을 캔버스로 삼아 회화, 건축, 사진을 결합한 독창적인 설치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는 벽과 바닥, 천장에 도형과 색을 직접 그린 뒤, 하나의 특정한 시점에서 사진으로 촬영해 완성된 이미지를 남긴다. 현실 공간과 회화적 환영이 교차하는 이 방식은 '빛과 기억의 기하학'이라 불리며 전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0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동방의 빛 전을 준비하며 98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철거를 앞둔 낡은 양옥집 외벽에, 사라질 공간을 기념하기 위해 붉은 원을 그렸습니다. 나에게 붉은색은 사진에 필요한 태양빛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폐허의 어둠 속에서 빛을 상징하는 제 방식의 인사였습니다."

 

작가는 1998년 처음 서울을 방문했다. 이때 제작된 '서울, 1998'은 도시 재개발의 한복판에서 '사라짐'과 '기억'을 주제로 한 예술 행위로 기록되었다. 27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다시 서울을 찾았다. 청계천의 풍경은 더 이상 철거지의 잔해가 아닌 유리와 콘크리트로 빛나는 고층 도시로 변모했다. 루스는 "이제 나는 다른 의미의 폐허, 과거의 흔적이 지워진 도시의 표면을 본다. 그러나 기억은 여전히 그 속에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서울, 1998'에서 '서울, 2025'까지 ... 장소의 기억을 잇는 작업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작 '서울, 1998'과 더불어, 지난 9월 성곡미술관 30주년 기념전에서 선보인 '서울, 2025' 설치 프로젝트의 결과 사진과 드로잉도 공개된다.

 

'서울, 2025'는 현재의 서울 도심 속 비어 있는 공간에서 진행된 현장 설치로, 루스가 27년 전 청계천에서 했던 붉은 원의 작업을 오늘의 서울로 확장한 '시간의 순환' 프로젝트다.

 

공간의 구조를 재구성하고, 색채와 형태를 통해 도시의 '보이지 않는 잔상'을 드러내는 루스의 작업은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기억의 건축'을 실현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과거와 현재의 작업을 나란히 제시함으로써, 한 예술가가 도시의 변화를 어떻게 예술로 기록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회고적 의미를 지닌다.

 

조르주 루스, 프랑스, 오베르뉴. 수채화 드로잉, 자료제공 공근혜갤러리
조르주 루스, 프랑스, 오베르뉴. 수채화 드로잉, 자료제공 공근혜갤러리

세계 각지의 사진과 드로잉 20여 점 공개

이번 전시에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업 외에도, 작가의 대표 시리즈가 함께 선보인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의 폐건물과 공장, 성당, 극장을 무대로 진행된 사진 작품 6점과, 그가 설치 작업의 구도를 사전에 구상하며 제작한 수채화 드로잉 17점이 함께 전시된다.

 

루스의 드로잉은 완성된 사진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다. 수채화 특유의 투명한 색감과 간결한 선은 공간의 설계도를 넘어 작가의 '시적 사유'를 엿보게 한다.

 

공근혜갤러리 관계자는 "'서울, 1998'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서울의 도시 변화를 예견한 작품이자 예술로 기록된 한 시대의 초상이다. 이번 전시는 루스가 78세의 노장이 되어 다시 서울과 마주하는 감동적인 귀환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소와 기억을 예술로 새기는 작가, 조르주 루스

조르주 루스는 회화와 건축, 사진을 넘나드는 설치 작업으로 '장소의 시학'을 구축해온 작가다. 1981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그의 작품은 파리 그랑 팔레,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중국 국립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88년에는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준회원으로 선출되어 '솔 르윗의 뒤를 잇는 공간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루스의 작품은 단순한 설치나 사진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시간을 시각화하는 예술'이다. 그는 버려진 건물 속에서 한때 사람들의 삶이 깃들었던 흔적을 찾아내고, 색과 빛으로 그것을 되살린다. 관람자가 사진 속 공간을 마주할 때, 그 속에는 사라진 건물의 잔향과 함께 '기억의 시점'이 살아 숨 쉰다.

 

조르주 루스, '서울, 2025'성곡,수채화 드로잉. 자료제공 공근혜갤러리
조르주 루스, '서울, 2025'성곡,수채화 드로잉. 자료제공 공근혜갤러리

장소는 사라지지만, 기억은 예술로 남는다

루스에게 서울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그는 "서울은 내 작업의 전환점이자, 예술과 사회가 만나는 장소였다. 한 공간이 사라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태어나지만, 예술은 그 중간의 시간을 붙잡는다"고 말한다.

 

그의 '서울 프로젝트'는 바로 이 시간의 층위를 다룬다. 1998년의 붉은 원이 '사라짐의 기록'이었다면, 2025년의 새로운 작업은 '기억의 재건축'이다. 루스는 철거와 재개발, 고층화로 대표되는 도시의 성장 속에서도 '예술이 할 일은 사라진 공간의 의미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근혜갤러리가 1998년 이후 27년 만에 마련한 이번 조르주 루스 개인전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예술적 회고이자, 장소와 기억을 매개로 한 시간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리다. 도시의 잔해 속에서 빛과 형태를 찾아내는 루스의 예술은 빠르게 변하는 서울의 현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번 전시는 한 예술가가 27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마주한 서울을 통해, '사라진 장소와 남겨진 기억의 예술'을 조명하는 특별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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