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0일~2026년 1월 18일까지 아르코미술관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와 아르코미술관은 오는 11월 20일부터 2026년 1월 18일까지 아르코 예술창작실 작가전 '인 시투 In Situ'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올해 6월 평창동에 문을 연 아르코 예술창작실에 입주한 1·2기 작가들의 창작 과정과 실험을 전면적으로 조명하는 첫 번째 성과전이다.
이번 전시는 국내외 예술 생태계의 확장을 목표로 운영되는 아르코 예술창작실의 운영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아르코 예술창작실은 한국,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의 작가들을 선발해 창작 및 거주를 지원하고, 큐레이터·전문가와의 심화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단기 레지던시 특성상 완성된 결과물 제시보다 머무름 속에서 생성되는 변화와 관계 맺음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번 전시는 이러한 ‘현장성’을 미술관 공간 안으로 옮겨오는 실험적 형식으로 기획됐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인 시투(In Situ)'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전시 제목 '인 시투(In Situ)'는 '본연의 장소, 현장에서'를 뜻하는 라틴어로, 작가들의 스튜디오 창작실에서 일어난 사유와 탐구, 전시장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층위를 그대로 펼쳐 놓는 데 의미를 둔다. 이를 위해 미술관 내부에는 작업실의 구조와 흔적을 재현한 공간이 조성돼 관람객이 창작의 과정에 직접 들어가는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지리적·문화적 배경이 만드는 10개의 시선
총 10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입주 시기에 따라 1층(1기), 2층(2기)으로 나뉘어 소개된다. 1기 입주 작가는 2025년 6월부터 9월까지 입주한 작가들로 유스케 타니나카(일본), 부이 바오 트람(베트남), 윤향로(한국), 발터 토른베르크(핀란드), 손수민(한국)이 있다.
윤향로 작가는 올해 아르코 레지던시 1기에 입주해 '얕은 물'을 중심 주제로 한 신작 회화를 선보였다. 그는 작업실과 집을 오가며 마주한 작은 웅덩이, 고인 물, 빛의 반사 등 일상의 미세한 풍경에서 출발해 이를 회화적 심상으로 확장했다. 기존에 문화·미술사적 이미지를 차용하던 방식에서 나아가 최근 몇 년간은 개인적 경험과 장면을 회화적 서사로 전환하는 데 집중해왔으며,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그 탐색을 한층 깊게 다졌다.
유스케 타니나카는 아르코 레지던시에서 iPSC(유도만능줄기세포)를 중심으로 시간·신체·생명 공학에 관한 탐구를 확장했다. 체세포를 배아 상태로 되돌리는 이 기술이 갖는 '시간의 되감기' 가능성에 주목하며, 유전학·대체의학·철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회화·드로잉 작업을 전개했다. 한국 체류 동안 강동 시장에서 접한 녹용과 약재 등 물성이 살아 있는 한방 재료는 그의 드로잉 작업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작가는 이를 실제 작품에 부착하며 재료 실험을 시도했다. 난자·정자의 결합, 세포 분열, 기체조 등 신체적·생명과학적 이미지가 혼합된 드로잉은 탐구적이면서도 유희적 태도를 반영한다. 한편 타니나카는 본래 안무·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전시장에 함께 배치된 영상 아카이브를 통해 그의 다층적 예술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 출신 작가 부이 바오 트람은 아르코 예술창작실 입주 기간 동안 한국 전통 민화 '호작도'에서 출발해 호랑이와 까치의 관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여러 민속박물관을 조사하며 까치는 일상적 상징으로 남아 있는 반면 호랑이는 부재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은 그는, 이 '부재의 감각'을 중심으로 두 존재가 한 화면에서 공존하지만 서로 닿지 않는 관계를 회화로 풀어냈다. 한지와 실크를 겹쳐 놓되 완전히 맞닿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호랑이의 줄무늬에서 파생된 패턴과 까치의 흔적을 상징하는 붉은 요소들을 배치해 상징·기억·문화적 차이가 남기는 간극을 시각화했다. 트람의 작업은 외부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국적 상징을 다시 읽어내며 동아시아 이미지가 국경을 넘어 이동·변형되는 과정을 탐색하는 시도로 주목된다.
손수민 작가는 사회가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것이 개인의 인식에 작동하는 방식을 주제로 두 개의 영상 설치를 선보인다.
첫 번째 작업 '캐치볼'은 서로의 말을 듣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접촉하지 못하는 ‘평행한 대화’에 주목한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사운드를 듣는 두 퍼포머의 대화 시도, 그리고 사운드가 사회적·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경험담을 통해 청각 경험의 조건과 그 정치성을 드러낸다. 두 번째 작업 'Interval Studies'는 피아노라는 사물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와 정서적 풍경의 재편을 탐구한다. 어린 시절의 피아노 학원 기억에서 출발해, 개인적 체험과 사회적 구조 변화가 만들어내는 간격과 리듬을 시각적으로 포착했다.
두 영상은 각각 다른 장면을 다루지만, 결국 '우리가 듣고 배우고 기억하는 것은 어떤 사회적 장치 위에서 형성되는가'라는 공통 질문으로 수렴한다. 작가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사유하는 섬세한 시선을 제시한다.
핀란드 출신 작가 발터 토른베르크는 기관의 언어·규범·절차를 예술적 재료로 삼아 일상의 재난이 어떻게 관리되고 생산되는지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 'Disaster Index'에서 그는 공공 안내문, 명함, 안전 장비 등 일상적이지만 비가시적인 '기관의 언어'를 재배치하며 제도의 통치성과 긴장을 시각화한다.
특히 한국에서 도처에 비치된 소화기에 주목해, 재난을 예방하는 장치이자 재난의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이중적 기표로 읽어낸다. 실제로 기록 촬영자가 소화기를 작품으로 인식하지 못해 치워버린 사건은 이러한 사물의 비가시성과 규범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작동한다. 관람객은 전시장 내 임시 구조물에서 기관적 장치가 만드는 시간·감각적 긴장을 직접 체험하며, 재난이 사건을 넘어 제도적 조건 속에서 구성되는 구조적 현상임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2기 입주작가는 크리스티앙 슈바르츠(오스트리아), 박정혜(한국), 서희(한국), 카타즈나 마주르(폴란드), 우고 멘데스(모잠비크)가 2025년 10월부터 2026년 1월까지 활동한다.
폴란드 출신 개념사진 작가 카타즈나 마수르는 이번 전시에 '프로젝트 에덱스 아카이브'를 선보이며 개인의 가족사진과 국가적 서사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기억의 구조를 탐구한다. 작업은 그가 할아버지 집 지하에서 발견한 1970~80년대 가족사진에서 출발했으며, 사회주의 체제 속 사적 이미지가 드러내는 시대의 공기와 일상을 단초로 삼았다.
레지던시 기간에는 한국 가족 앨범을 수집해 폴란드 사진과 나란히 배치하는 실험을 시도했는데, 두 나라가 군사독재·검열·민주화 운동 등 유사한 근현대사를 공유한다는 점에 착목한 결과다. 전시장에는 4~5개 한국 가족의 사진과 폴란드 이미지가 함께 구성되어, 공식 기록이 아닌 사적 사진이 형성하는 감각적·정서적 역사를 조명한다. 마수르는 이를 통해 사진의 분류·의미화 방식, 소속감과 정체성이 이미지에 반영되는 층위를 성찰하게 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모잠비크 출신 작가 우고 멘데스는 전통적 아프리카 모티프와 구전 설화를 동시대적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판화를 기반으로 전통의 정신을 담은 오브제를 현대적 그래픽 구조로 재구성하며, 아시아의 민간 서사와 시각적 구조에서도 영감을 받아 모잠비크 설화를 새롭게 번역한다. 이번 레지던시에서 그는 한국과 모잠비크가 식민 지배, 냉전, 독재·검열 등 유사한 근현대사를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해, 두 사회가 경험한 억압과 회복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그의 작업은 집단 기억과 영성, 탈식민적 회복을 응축한 비주얼 아카이브로, 식민의 잔재를 예술적 언어로 치유하고 다시 말하는 실천에 초점을 둔다.
서희 작가가 독일 유학과 이주 경험에서 비롯된 '임시적 거주'의 감각을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 개인전 '방랑하는 방: 임시성의 기하학'을 선보인다. 오랜 해외 체류 속에서 외국인·이주자로 경험한 불안정성과 끊임없는 이동은 그의 조형 언어의 근간이 되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이를 '도형 언어'와 공간 구조로 재해석한 핵심 작업 4점을 공개한다.
작가는 낯섦, 불편감, 떠날 준비가 일상이 되는 감각을 원·선·면·각 등 단순한 지시적 형태로 환원해 미완의 방, 흔들리는 바닥, 균열 난 매트리스 같은 장면을 구성한다. 이는 관객을 익명의 '임시적 공간' 속으로 초대하는 일종의 무대처럼 작동한다. 최근 한국에서의 4개월 레지던시 역시 새로운 '임시성'의 체험을 더했다. 태어난 나라임에도 오랜 해외 생활 이후 돌아온 한국에서 작가는 다시 한 번 '정착하지 못하는 감각'을 감지했고, 이를 작업에 구조적 언어로 반영했다.
이번 전시는 '상자 → 장면 → 공간'으로 확장되는 서희의 조형 방식이 두드러진다. 떠날 준비를 상징하는 물건 하나에서 출발해 기울어진 바닥·열려 있는 문 같은 장면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관객이 발을 딛는 '완결되지 못한 방'을 구축한다. 이 방은 특정 인물의 부재를 전제로 하며, 그 부재가 오히려 강한 존재감을 형성한다. 서희의 작업은 미니멀리즘의 외형을 지니지만, 그 내부에는 불안정성과 이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이를 '불안정의 기하학'이라 부를 수 있는 감각적 공간으로 제시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박정혜 작가가 변화하는 도시의 공간을 회화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개인전 '변하지 않는 작업실을 상상하는 회화'를 선보인다. 데뷔 이래 10여 차례 작업실을 옮겨온 그는, 물리적 공간이 계속 바뀌어도 감각·기억·빛·시간이 축적된 정신적 작업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를 회화의 구조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는 서울의 '버니큘러'오래된 간판, 벽지 패턴, 낡은 레이어를 작가가 거쳐온 작업실의 흔적과 겹쳐 평면 위에 다시 구축한 작품들로 구성된다. 박정혜에게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공간의 층위를 새롭게 조립하는 또 하나의 작업실이자 저장장치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참조한 작가는, 변화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도 지속되는 정신적 장소를 회화의 시·공간으로 가시화한다. 화면에는 낮과 밤의 빛, 시간의 밀도, 평면적 요소의 유기적 움직임이 함께 얽히며, 관객은 작가의 내면적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탐구는 이전 개인전 '고대 냉장고'에서 제시한 '회화를 감각과 시간을 저장하는 장치로 본다'는 관점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회화는 도시의 흔적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무엇을 포착하는 사유의 장소가 된다.
오스트리아 작가 크리스티앙 슈바르츠는 이번 전시에서 신작 '멀티 퍼포스 타워(Multi Purpose Tower)'를 발표한다. 그는 도시 곳곳에 존재하지만 거의 인지되지 않는 '셀 타워(Cell Tower)'를 출발점으로, 기술 인프라가 시각적으로 ‘은폐’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모바일 네트워크 확대로 급증한 통신 장비는 도시 경관과 부동산 가치에 대한 우려로 인해 인공 나무나 십자가, 시계탑 등으로 위장된 '스텔스 인프라' 형태로 숨겨지고 있다. 슈바르츠는 이러한 은폐가 기술의 구조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블랙박스 효과'를 강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번 신작은 이 은폐 구조를 전복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타워 아래 실제로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설치해, 인프라의 하부 구조를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작품 내부에는 실제 고주파 통신 대역을 녹음한 기계음과 알고리즘 기반 영상이 삽입돼, 관객이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을 시청각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슈바르츠는 "기술이 인간을 각자의 기기 세계 속에 고립시키는 현상"을 문제 삼으며, 이번 작업을 통해 기술·도시·인지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드러낸다.
작가와 현장을 직접 연결하는 시간
전시 기간에는 다음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11월 21일(금)에는 작가와의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 참여 작가가 창작 과정과 작업 세계를 직접 소개한다. 2026년 1월에는 국내 레지던시 운영자들이 참여해 현황과 미래 방향을 논의하는 레지던시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된다.
창작과 교육의 접점을 확장해온 신보슬 프로그램 디렉터가 전시를 기획했으며, 그는 아트센터 나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등 다양한 프로젝트 경력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에 '학습하는 전시'라는 성격을 부여했다.
'인 시투(In Situ)' 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11월 20일부터 2026년 1월 18일까지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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