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햄릿' 프레스콜 (선왕 역 이호재, 햄릿 역 강필석 )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선왕 역 이호재, 햄릿 역 강필석 )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은 죽음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보라고 강박하는 동시에 죽음을 통해 우리시대의 진정한 삶을 조망해 볼 것을 권유한다.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명확하나 그 경계를 걷어내어 삶과 죽음을 하나의 연속체로 이해한다면 햄릿이 사는 삶의 시간과 선왕이 사는 죽음의 시간이 빗장 풀린 문 사이로 흘러들어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것이다. 

 

2024년 '햄릿'은 살아있는 배우 4명이 죽음의 강을 건너와서 죽은 영, 사령들의 연극'햄릿'과 같이 호흡하고 다시 죽음의 강을 건너 이승으로 돌아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손진책 연출)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손진책 연출)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연극 '햄릿' 프레스콜에 참석한 손진책 연출은 "새로운 버전의 햄릿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낀 것에 기인했다. 2016년 국립극장에서의 '햄릿'은 아홉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리츄얼한 형식으로 아홉 명의 배우에 대한 오마주였다. 2022년 버전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 맞췄다면 이번 2024년 버전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다. 단순함을 원해  무대 디자이너에게 심플한 원 위에 모던한 의자를 오브제로 해서 만들어보자고 요청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세트도 많이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복잡한 것을 걷어내고 본질만 가지고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배우들에게도 잔연기, 리얼한 연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본질만 가지고 승부해 보자'에 초점을 맞춰 삶과 죽음의 본질이 뭐냐를 생각해 볼 수 있게 초점을 맞췄다"고 부연했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이런 이유로 의자만으로 최소화된 경사 무대는 연극적 준비상황을 그대로 노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위 극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낱낱이 살피고 죽음이 증식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개인과 정치적 사고 사이에서 방황하는 햄릿의 분열적인 모습과 서로를 감시하는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중 거울이 사용되었다. 바닥에 드러나는 흰색의 원과 사각형은 공간의 구획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속해있는 세계를 표현한다.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는 "연극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성찰을 준다는 것에서 다시 한 번 가치를 느꼈고, 작품이 선정되고 나서 열 개 정도의 무대 디자인을 해서 연출님과 상의 끝에 최종 선택한 것은 빈 공간이었다"면서 "요즘 화두가 동시대성이다 보니 도시의 유리 건물과 전광판, 안개 등등 해서 그런 소재를 가지고 미니멀하게 구성을 했다. 결국 연극이 끝나듯이 우리 삶도 연극처럼 끝나간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즐겁게 작업했다"라며 작업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햄릿에서의 의상은 정제되어 군더더기 없는 무채색의 현대 복식으로서 오로지 실루엣과 강조색, 질감의 차이만으로 인물의 특성을 발현하며,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인 감각을 선보인다. 즉, 색으로 캐릭터와 신분을 설명하고 개인과 그룹을 나누며 이러한 색의 상징성은 무대의상이 극중 의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나의 표현 방식인 셈이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온전한 블랙 차림은 죽은 선왕, 그리고 상복 아닌 상복을 입은 유일한 자는 바로 햄릿뿐이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정연두 안무가)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정연두 안무가)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안무에는 정연두 안무가에 의해 보통 연극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움직임들을 구현했다. 삶과 죽음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없이 이 순간을 죽음이 만연하는 상황과 감정을 움직임으로서 표현하고자 했다. 

 

정연두 안무가는 "연출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없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어떤 영감을 가지고 작업할까를 생각하다 낮과 밤사이 각 종교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어떤 방식으로 위로하는지, 제사나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의 기억들을 움직임을 만드는데 차용했다"면서 "연극은 무엇보다 대사 전달력이 우선이다. 그 대사들이 관객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기에 인물을 짐작하거나 상황에 대한 감정을 더 깊이 느끼게 할만한 이질적이지 않으면서 연출이 원하는 작품 안에서 일관성을 얻을 수 있는 움직임을 만들면 좋겠다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했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이번 햄릿에서 눈여겨 봐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바로 유령들의 시선이다. 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씻기는 과정과 함께 씻김한 이후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지렛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햄릿과 오필리어의 영혼을 씻기는 것은 물론이고, 아들을 위해 죽은 거트루드의 영혼을 씻기는 것이고, 권력과 사랑을 향해 간계와 지혜를 부렸던 클로디어스의 영혼을 씻기고, 죽은 가족에 대한 복수심에 사그라지고 마는 레어티즈의 영혼을 씻긴다. 

 

이런 씻김은 부정한 것을 정화하고 그 터의 주인됨에 얽매여서 본래 하늘을 마음에 모셔야 하는 것을 망각한 우리를 각성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이에 대해 손 연출은 "마지막의 혼돈을 안개로 씻김으로 마무리했다. 연극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두렵고 때론 공포에 직면할 정도로 두렵기도 한데 항상 만들면서 완성도를 향해 나가는 것이 창작이자 연극의 세계인 것이다. 석 달의 장기 공연인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올라가도록 배우들 스스로가 자가발전해서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좋은 작품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더했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전무송)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전무송)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선왕 역으로 출연하는 전무송은 "지금 굉장히 내가 기대했던 그 이상의 후배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아주 흐믓하다. 안심하고 때를 기다릴 수 있을 거 같다"라며 후배 사랑을 나타냈고, 배우 1로 출연하는 박정자는 "늘 떨린다. 연출이 객석에서 봤을 때 왠지 템포가 느려졌다 했을 때 우리도 동시에 그걸 다 느꼈다. 연극은 항상 라이브이기에 한 번 녹화한 후 여러 번 볼 수 있는 TV나 영화와 달라 매번 새롭다"라며 이번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손숙)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손숙)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배우 2로 출연하는 손숙 역시 "석 달의 장기 공연이다 보니 나이든 배우가 있고 더블 캐스트로 하게 됐다. 그러서 그런가 연습이 굉장히 산만하고 힘이 들었다. 긴장하고 초조한 느낌이 들고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그런 느낌이 들어 힘들었다"면서 "이전 공연(2022년) 때 권성덕, 윤석화 배우가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아프고 연세가 많아 참여를 못했다. 문득 '다음 번에는 내가 참여할 수 있을까' 라는 느낌 때문에 긴장되고 설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출하는 사람들은 매번 만족을 모른다. 매 순간 지적하는데 아주 얄밉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연극의 토대를 쌓아가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강필석)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강필석)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2022년도 이어 올해도 햄릿역으로 작품에 참여한 강필석은 "이런 화려한 대선배님들과 함께하는 작품이 시끌법적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다"면서 "많은 분들의 성원과 사랑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연극 '햄릿' 프레스콜 (박정자)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햄릿' 프레스콜 (박정자) 2024.06.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마지막으로 박정자는 "강필석의 햄릿과 이승주의 햄릿은 다르기 때문에 뭐랄까 너무 맛깔스럽다. 석 달 동안 하니까 두 명의 햄릿을 다 봐주시시길 욕심 내본다"면서 "여기저기 햄릿은 참 많이 하는데 이런 햄릿의 무대에 저희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연극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 거다'라는 것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다. 햄릿의 대사와 무대를 보러왔으면 좋겠다"라며 관전을 독려했다. 

 

연극적 판타지를 걷어내고 한층 작품의 철학을 깊이 사유하는 공연으로 완성될 '햄릿'. 두 번 다시 똑같은 모습으로 볼 수 없을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엮어내는 무대이기에 더욱 최선을 다하는 '햄릿'은 참여하는 배우나 관람하는 관객 모두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한 무대로 각인될 것이다. 

 

연극 '햄릿'은 9월 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대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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