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고선웅 연출의 '퉁소소리'는 그 자체로 한국 연극이 지닌 기세와 현재적 의미를 집약한다. 지난해 초연 후 큰 화제를 모았고, 지난 5월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부문 작품상(백상연극상)을 수상하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며 재공연으로 돌아왔다.

 

지난 5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연극 '퉁소소리' 전막 시연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간담회에는 고선웅 연출 및 배우 이호재, 정새별, 박영민, 강신구, 최나라, 전재형이 참석했다.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고선웅 연출)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고선웅 연출)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고선웅 연출은 "재공연에서는 다시 한번 짚어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라며 이번 작업의 초점을 설명했다. 그는 배우들과 함께 장면의 호흡과 리듬감을 조율하며 군살을 덜어내고, 작품을 더욱 단단하게 다듬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부분도 있고, 단단해지는 부분도 있어요. 이번 무대는 지난번보다 더 좋아졌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공연이 단순한 반복이 아닌 심화의 과정임을 시사했다.

 

관객에게 주목해 달라고 굳이 꼽은 장면은 두 곳이다. 1막 후반 베트남 안남에서 옥영과 최척이 재회하는 순간, 그리고 마지막 가족들이 모두 만나는 장면이다. 고 연출가는 "굳이 특정 장면을 지정하진 않지만, 두 장면은 특히 감동이 큽니다"라고 전했다. 실제 무대에서 이 두 장면은 배우들의 내면 연기와 집단적 에너지가 집중돼 관객의 감정을 강하게 흔드는 포인트였다.

 

'퉁소소리'는 조선 후기 소설 최척전을 원작으로 한다. 그러나 무대 위 중심은 최척보다 옥영에게 있다. 고 연출가는 "원작에서도 옥영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집니다"라며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과 매력에 이끌려 이 작품을 무대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란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옥영은 끝까지 사랑을 지켜내고, 남장을 하고 항해를 감행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합니다. 이는 조선의 어머니 같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정새별)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정새별)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배우 정새별 역시 "옥영은 장면마다 끊임없이 뭔가를 이뤄내는 진취적인 인물이어서 매 순간 상황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옥영과 홍도가 주체적이고 매력적이다 라고 생각했어요.평범한 사람이지만 굉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해 스스로도 의지를 불태우며 준비했습니다"라고 했다.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최나라)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최나라)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함께 무대에 선 최나라 배우는 작품을 준비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으로 '여성 연대'를 꼽았다.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여성들의 연대가 등장한다는 점이 처음 작품을 읽었을 때부터 흥미로웠습니다. 홍도가 중국인 여성임에도 한국의 시어머니와 마음을 나누며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옥영이 지닌 따뜻함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어요. 재공연을 준비하면서는 특히 항해를 위해 아들을 설득하고 끌어가는 옥영의 모습에서 '정말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됐습니다"라며 "초연 때부터 매 장면마다 옥영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체감해 왔고, 연습을 거듭할수록 우리 주변에도 이처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빛나던 여성들이 분명 존재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라며 여성 캐릭터들이 작품을 추동하는 힘이 됐음을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연극이 사회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 여성 인물의 주체성, 연대, 강인함은 단순히 역사적 재현이 아니라 현대 관객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는 메시지다.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전재형)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전재형)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기세'라는 연극의 힘

작품이 주는 기세에 대해 묻자 고선웅 연출은 "간절하고 애타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는 마음이 곧 기세"라고 답했다. 그는 원작자 조위환이 후세에 이 이야기를 잊히지 않게 전하려 했던 마음,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타인의 삶을 억압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박한 메시지를 강조했다. "내면이 꽉 차서 밀려나올 때 기세가 생깁니다. 이번 작품도 그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라는 그의 발언은 한국 연극이 지향해야 할 태도를 압축한다.

 

재공연 무대에서 배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장면을 새롭게 해석하며 무대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전재형 배우는 "적년보다는 조금 더 다른 신체적인 움직임을 했는데요.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있어 장면마다 어울리는 신체적 움직임을 고민하며 동작을 새롭게 준비했습니다"고 말했다.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박영민)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박영민)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박영민 배우는 재공연을 통해 최척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는 최척이라는 인물 자체에 머물러 있었다면, 올해는 몽석이와 몽선이의 아버지라는 점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무대 위에서 아들들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작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습니다. 저 자신도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면 이런 마음일까 생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장으로서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변화가 제게는 큰 감사로 다가왔습니다"라고 말해 이번 작품을 대하는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가족 재회 장면은 배우들의 섬세한 움직임이 돋보였다. 고령 인물의 느릿한 손짓, 아들을 처음 만난 옥영의 벅찬 포옹 등은 각 배우의 해석이 살아 있는 장면으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퉁소소리'는 원작 최척전에 충실한 각색을 지향한다. 마지막 화자의 정체가 최척이 아니라 조위환으로 드러나는 설정 역시 원작의 서사 구조를 따른 것이다. 고선웅은 "원작에도 조위환이 이야기를 옮겨 적는 형식이 나옵니다. 이를 무대화하면서 신뢰도를 높이고 감동을 배가하려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고선웅 연출)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퉁소소리' 프레스콜 (고선웅 연출) 2025.09.0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 한국 연극이 던지는 집념의 메시지

'퉁소소리'는 단순히 고전의 무대화가 아니라, 한국 연극의 현재를 보여주는 성취다. 첫째,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오늘날의 젠더 감수성과도 맞닿아 있다. 둘째, '기세'라는 개념을 통해 연극이 지닌 집단적 에너지와 사회적 발언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 셋째, 재공연을 통해 반복이 아닌 '성장'을 증명하며 한국 창작극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맥락을 반영한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퉁소소리'는 한국 창작극이 해외 투어를 염두에 둘 만큼 확장 가능한 서사를 지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아시아 각국의 언어와 억양으로 옥영을 부르는 장면은 이 작품이 국경을 넘어 아시아적 연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조선에서 중국, 일본, 베트남까지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여정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전쟁 속에도 삶을 지켜낸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의 생존과 사랑, 그리고 끝내 다시 만나는 인간 본연의 힘을 깊이 있게 전한다. 이 서사는 시대를 넘어 되풀이되는 인간의비극과 희망을 비추며 한국적 이야기가 지닌 보편적 울림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결국 '퉁소소리'는 한국 연극이 지금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간절함에서 비롯된 기세, 여성과 민초의 집념, 그리고 전쟁과 사랑을 관통하는 서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오늘날 관객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