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0일(수)~10월 4일(토) 소극장 산울림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고도를 기다리며'는 제 인생의 지침서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 1994년 이후 제 가치관, 사회관, 인생관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블라디미르 역을 맡은 배우 이호성은 산울림 40주년 기념 무대에서 다시금 '고도를 기다리며'와 만났다. 그는 30년 넘게 같은 작품을 반복해 왔지만, 매번 새로움과 무게를 동시에 느낀다고 고백했다.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1막 시연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이호성은 "지금까지 총 열두 번 정도 무대에 올랐는데 절반은 블라디미르, 절반은 포조였죠. 언젠가는 럭키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오랫동안 같은 작품을 붙잡는 이유에 대해 그는 "물론 30년 동안 이 작품만 한 것은 아니고 다른것도 많이 했지요. 임영웅 선생님은 제게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좋은 말벗이자 술벗이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토를 달 사람은 저 밖에 없어 가끔씩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처음 접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마치 난해한 경전 같아서 하면 할수록 새롭게 다가옵니다"라며 "그 어떤 성취감도 '고도를 기다리며' 만한 것은 없습니다. 매번 조금씩 변주되는 대사와 해석이 제 삶을 풍요롭게 해줘요. 욕심같아선 산울림에서 1년 마다 했으면 좋겠고, 그다음에 1년 내내 했으면 좋겠고, 영원히 했으면 좋겠고, 제가 영원히 참여하고 싶습니다"라며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고도'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는 "정답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교도소 공연 사례를 언급하며 "죄수들에게 물었더니 어떤 이는 여자, 어떤 이는 빵, 어떤 이는 자유로운 여행이라고 답했답니다. 각자의 고도는 다른겁니다"라고 했다. 이어 "저에게 고도는 억울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지하고 기대게 되는 절대자의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성은 임영웅 선생님 연출의 디테일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는 임영웅 선생님 연출 덕분에 동선과 시선까지 자로 잰 듯 명확히 규정돼 있어요. 세 발짝 반, 시선 45도까지 정해져 있어 정확히 맞추기란 거의 불가능했죠. 공연하면서 한 번도 이걸 맞춘 적은 없어요.매번 조금씩 틀리지만 시선이 틀려도 전체적으로 잘 흘러가면 '잘했다'고 평가하셨습니다"라고 소회했다. 이어 "이번 무대에서도 심재찬 연출님이 숨결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이 작품은 워낙 세밀해 다른 장식을 더하기 어렵다. 결국 동선·시선·대사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연극"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품을 하고 나면 다른 작품이 쉽고 가볍게 느껴집니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지만, 그만큼 '고도'가 주는 성취감은 특별해요"
이호성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는 단순한 공연이 아닌 인생 그 자체다. 1990년 대부터 '고도'를 연기해 온 그 이기에 이 작품이 주는 의미는 남다른 것 같았다. 배우에게 있어 '영원히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주저없이 말할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그에게 운명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기다림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약속의 시간도, 장소도, 목적도, 심지오 대상도 불확실하다.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고도를 기다려야해'라는 말은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주문처럼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다시 지루한 기다림의 현실로 불러들인다. 이 연극을 보는 누구나 각자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