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레플레하 역 배우 장은아, 데스티노 역 이아름솔, 메모리아 역 박시인, 프리다 역 김지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레플레하 역 배우 장은아, 데스티노 역 이아름솔, 메모리아 역 박시인, 프리다 역 김지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는 예술과 삶을 결코 분리하지 않은 예술가였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며 살았고, 18세에 겪은 끔찍한 교통사고는 그녀의 척추와 골반, 다리를 산산조각 냈다. 평생을 이어진 수술과 고통, 불구의 몸은 그녀에게 절망이었으나 동시에 예술의 근원이 되었다. 고통과 사랑, 분노와 환희를 동시에 껴안은 자화상들이 바로 그 증거다. 프리다는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대상이니까"라고 말하며 자기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길을 걸었다.

 

뮤지컬 '프리다'는 바로 이 '고통을 예술로 바꾼 삶'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작품은 프리다의 일대기를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로 풀지 않는다. '더 라스트 나잇 쇼'라는 가상의 무대 설정을 통해 생애 마지막 순간의 프리다가 관객 앞에서 자신의 삶을 증언하고 고백하는 형식이다. 쇼의 화려한 외피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결국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얼룩진 한 인간의 진실이다.

 

2022년 초연, 2023년 재연에 이어 2025년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이번 무대는 단순한 흥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극장에서 검증된 창작 뮤지컬이 소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관객과 더 밀도 높은 호흡을 시도한다는 점, 그리고 여전히 확장 가능한 프리다 칼로라는 예술적 자산을 어떻게 재해석하는가의 문제 때문이다.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데스티노 역 이지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데스티노 역 이지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무엇보다 '프리다'가 가진 강점은 하나의 인물을 네 배우가 각기 다른 결을 통해 풀어내는 구조에 있다. 김소향, 김지우, 김히어라, 정유지는 각자 프리다의 또 다른 자화상을 무대 위에 수놓는다.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는 강인함, 예술적 열망을 향한 광기,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 투쟁, 그리고 인간적 외로움까지 네 배우가 구현하는 다층적 프리다는 단일한 영웅적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모순적이고 파편적인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는 곧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보여주었던 고통과 욕망, 사랑과 죽음의 이중적 표정을 그대로 닮아 있다.

 

작품의 서사적 장치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극은 '더 라스트 나잇 쇼'라는 가상의 무대를 설정해,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생애를 돌아본다. 쇼라는 형식은 화려한 외피를 제공하지만, 실상 그 내부는 깊은 고백과 회한, 그리고 예술혼의 불꽃으로 가득 차 있다. 즉, 대중적 엔터테인먼트의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그 안에 작가주의적 서사를 밀도 있게 삽입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관객이 거리 두기와 몰입을 동시에 경험하게 만든다. 프리다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증언하는 듯한 양가적 태도는 이 작품의 미학적 긴장을 형성한다.

 

프리다의 삶에서 예술은 곧 자기 치유의 방식이었다.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코르셋, 상처 난 몸, 새와 꽃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열망의 기호였다. 뮤지컬 속 넘버 '코르셋'(Corset)은 그 고통의 은유를 노래로 옮겨낸 대표적인 장면이다. 육체적 족쇄를 음악적 서사로 풀어낸 순간, 관객은 그녀의 몸이 아닌 그녀의 내면을 보게 된다. '라 비다'(La vida), '허밍버드'(Humming bird)와 같은 넘버들 역시 죽음을 향한 갈망과 삶에 대한 환희가 어떻게 동시에 존재하는지를 증언한다. 프리다가 그림을 통해 자기 몸을 해부하고 재구성했듯 음악은 그녀의 심연을 드러내는 또 다른 자화상이다.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레플레하 역 배우 장은아, 데스티노 역 이아름솔, 메모리아 역 박시인, 프리다 역 김지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레플레하 역 배우 장은아, 데스티노 역 이아름솔, 메모리아 역 박시인, 프리다 역 김지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음악으로 구현된 내적 풍경

허수현 음악감독이 이끄는 넘버들은 극의 정서를 고스란히 응축해 전달한다. '코르셋'(Corset)은 평생을 지배했던 신체적 고통을, '라 비다'(La vida)는 삶에 대한 찬가를, '허밍버드'(Humming bird)는 죽음을 향한 초월적 갈망을 노래한다. 넘버들은 단순히 서사를 보조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프리다의 내적 풍경을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일종의 '심리적 초상화' 역할을 한다. 특히 강렬한 라틴 리듬과 서정적 발라드가 교차하며 관객을 이끌어가는 음악적 구성은 프리다가 남긴 화폭 속 선명한 색채와도 닮아 있다.

 

작품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프리다를 단순히 비극의 아이콘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대 위의 프리다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그것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해낸 존재로 형상화된다. 고통은 그를 파괴했지만, 동시에 창조하게 만들었다.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삶'이라는 패러독스를 정직하게 보여주기에 관객은 단순히 동정이나 감탄을 넘어 자기 삶을 성찰하게 된다.

 

뮤지컬 '프리다' 2025.06.2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프리다' 2025.06.2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다채로운 앙상블, 극의 결을 풍성하게

레플레하(전수미, 장은아, 아이키), 데스티노(이아름솔, 이지연, 박선영), 메모리아(박시인, 허윤슬, 유연정) 역시 극을 받쳐주는 핵심 축이다. 이들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프리다의 내면을 형상화한 페르소나이자 서사를 유연하게 확장시키는 장치다. 배우 개개인의 개성과 기량이 더해져 무대는 다층적인 울림을 획득한다. 이는 단일한 서사보다는 다성적 구조 속에서 인물의 복합성을 드러내려는 연출의 의도를 잘 뒷받침한다.

 

지난 6월 28일 관람했던 캐스트 라인업을 보면 프리다 칼로 역 김지우, 레플레하 역 전수미, 데스티노 역 이아름솔, 메모리아 역 유연정이 함께 했다. 

 

프리다 칼로는 평생 육체적 고통을 짊어지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절망으로만 남기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켜 삶의 환희를 증언했다. 뮤지컬 '프리다'는 바로 그 지점,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경계를 무대 위에서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관객은 프리다의 고백을 들으며 동시에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울려 퍼지는 "VIVA LA VIDA!"라는 외침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선언이자 치유의 메시지로 확장된다. 그것은 프리다의 예술이 남긴 궁극적 메시지이며, 동시에 뮤지컬이 전하려는 결론이다. 절망 속에서도 삶을 끌어안는 용기,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예술로 변환하는 힘, 그리고 자기 고통을 타인의 치유로 확장하는 예술의 위대함. 뮤지컬 '프리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설득력을 획득한다.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레플레하 역 배우 장은아, 데스티노 역 이아름솔, 메모리아 역 박시인, 프리다 역 김지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뮤지컬 '프리다' 프레스콜(레플레하 역 배우 장은아, 데스티노 역 이아름솔, 메모리아 역 박시인, 프리다 역 김지우). 2025.06.26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프리다'는 한 멕시코 여류 화가의 비극적 삶을 재현하는 전기극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 예술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끝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언이다. 대학로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쇼 뮤지컬은 어쩌면 대극장에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강렬한 밀도를 발산한다. 관객은 프리다의 삶을 보는 동시에 함께 살아내는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극장이 끝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 한 문장을 가슴에 품게 된다.

 

결국 '프리다'는 단순한 인물극이나 전기적 서사를 넘어 '예술이란 무엇인가' '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배우들의 열연, 음악과 무대의 미학적 조화, 그리고 형식적 실험까지.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프리다'는 대학로 무대에서 지금 가장 뜨겁고도 의미 있는 창작 뮤지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VIVA LA VIDA!" 고통 속에서도 삶을 사랑했던 한 예술가의 목소리가 오늘날 우리의 귀에도 여전히 뜨겁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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