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올여름 9년 만에 돌아온 연극 '렛미인'의 무대는 끝났다. 

 

'렛미인'은 쓸쓸하지만 매혹적인 뱀파이어 일라이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외로운 소년 오스카의 사랑 이야기다. 생존을 위해 흡혈해야 하는 '불멸'의 존재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필멸'의 인간이 서로의 삶에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그 속에는 현대인의 고독, 결핍, 상처를 끌어안는 구원의 메시지가 있다.

 

연극 '렛미인'은 2024년 11월 새 시즌을 맞아 공개 오디션을 통해 최종 선발된 13명의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번 캐스트에는 초연 배우 안승균을 비롯해 2020년 시즌에 캐스팅되었으나 코로나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권슬아, 조정근이 다시 합류했으며, 백승연·천우진·지현준 등 새로운 얼굴들이 가세해 신선한 활력을 더했다. 노련한 경험과 새로운 에너지가 어우러지며 발산한 시너지가 꽤 조화로운 배우의 합을 보여줬다.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렛미인'의 무대는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이었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과 서늘함이 느껴지는 듯한 공기가 극장 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어느 스웨덴의 자작나무 숲은 등장 인물들의 뜨겁고 밀도 높은 관계가 이어지는 주 무대로 변신한다. 굉장히 미니멀리즘이 느껴지는 이 공간은 차갑지만 그안에서 인물들의 관계는 뜨겁게 부딪힌다. 또한 무대 위 여백은 캐릭터들의 감정선과 서사를 전달하는데 집중케 해줬다. 이 절제된 공간을 움직으로 채우는 건 스티븐 호겟의 무브먼트다. 대사가 닿지 못하는 영역을 섬세한 동작과 호흡이 메우고, 몽환적인 음악과 만나 감정의 파고를 밀어올린다. 

 

'렛미인'의 이야기는 단순히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담이 아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오스카, 수백 년을 살아온 소녀 일라이, 그리고 그녀를 위해 평생을 바친 한 남자(하칸)의 이야기는 고독과 어둠 속에서도 우리가 끝내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임을 역설한다. 그 사랑은 때로 구원이고, 때로는 잔혹한 운명이다. 서로를 경계하던 두 사람은 서서히 마음을 열고, 결국 서로의 세계 속으로 스며든다. 불멸과 필멸,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두 존재가 '영원'을 꿈꾸는 모습은 이상하게도 너무 인간적이다.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존 티파니의 연출은 무척 절제되어 있었다. 화려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차가운 무대 위에 여백을 남겨두고 관객이 스스로 느끼게 했다. 그 속을 스티븐 호겟의 무브먼트로 채웠다. 대사로는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몸짓으로, 호흡으로, 때로는 멈춤으로 전해졌다. 배우들의 움직임이 음악과 만나면 그 순간 시간과 공간이 모두 멈춘 듯 했다. 

 

절제된 무대와 함께 배우들의 움직임 , 대사를 돋보이게 한 것은 음악이었다. 아이스란드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네오클래식의 대표 주자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은 공연 내내 스산하게 마음 속에 파고든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선율이 일라이와 오스카의 관계를 감싸고, 그 위에 얹힌 배우들의 숨소리가 진짜 겨울 바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렛미인' 프레스콜(일라이 )2025.07.08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 7월 16일 작품을 관람하며 가장 마음이 저린 건 사랑이 이 연극 속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었다. 외로운 두 아이의 사랑은 풋풋하면서도 아련했고, 늙어버린 하칸의 사랑은 잔혹하고도 쓸쓸하며 비극적이었다. 그런 서로 다른 사랑들이 모여 결국엔 고독과 어둠 속에서 우리가 끝내 붙잡은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결국 연극 '렛미인'은 고독과 어둠 속에서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추락의 순간에도 구원처럼 다가오는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끝내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생명력은 결국 '사랑'임을 무대 위에 강렬하게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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