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 섹션으로 구분된 전시구성, '태초'부터 '물속의 달'까지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의 오랜 수행과 예술을 총망라한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 코스모스(COSMOS)'가 막을 올랐다.
'태초(太初)' '유동(流動)' '꿈(夢)' '조물(造物)' '궤적(軌跡)' '물속의 달' 등 6개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특별전은 성파대종사가 1980년대 선보였던 금니사경과 최신 작품은 물론 옻칠 회화와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평생 화업을 총망라하는 120여 점을 전시했다. 성파 종정예하가 40년 넘게 이어온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스님과 불자들은 물론 예술의전당을 찾는 내외국인에게 50일 동안 선보이는 특별 기획전이다.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 코스모스(COSMOS)' 기자간담회 및 전시회 투어가 진행됐다.
성파 선예에 있어 재료에 대한 연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전통 한지 제작부터 안료와 염료의 재배 및 가공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물감과 바탕이 되는 재료들을 직접 다루었다. 성파의 작업실에는 옻뿐만 아니라 칠안료, 닥나무, 조개껍데기, 계란껍질, 밀가루풀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도구들로 가득하다. 닥나무를 재배해 직접 한지를 제작하고, 고려시대 감지(紺紙)를 재현하기 위해 쪽을 직접 키우기도 했다.
특히 성파의 작업 중 괄목할 만한 점은 '옻'이라는 물성의 활용이다. 그는 옻의 내구성·방수성·방부성·절연성 등 뛰어난 성질에 주목하였다. 그동안 공예 재료의 일부였던 옻이라는 물질을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하며 전통 재료와 결합하여 회화, 도자, 섬유, 조각 등의 성파의 독자적인 옻 예술 장르를 만들어 냈다. 이번 전시는 작가 성파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한국적 재료 탐구를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1.태초 太初
우주의 시작을 상징하는 암흑물질과 태초의 에너지를 표현한 작품으로 첫 섹션이 시작된다. 검은 기둥은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상징적 오브제로, 초월적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시각화했다.
검은 옻칠 기중 설치 작업은 우주의 시작을 상징하는 암흑 물질을 칠흙 같이 어두운 검은색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강철보다 강한 옻칠의 접착력과 내구성, 그리고 옻칠을 여러 번 반복해서 칠할수록 맑고 투명한 본질이 드러나는 퇴칠 기법입니다. 여러 겹 삼베를 붙이고 또 덧붙인 후 계속해서 '칠하고 깎아내기' 를 반복해야만 칠흙처럼 깊고 검은 기둥이 완성됩니다. 이 태초에서 성파는 '칠하고 깎아내기'라는 수천 년의 전통 공예 기법을 '채우고 비워내기'라는 색즉시공의 선 예술 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2.유동 流動
두 번째 섹션은 결·에너지의 움직임이 펼쳐진다. 물과 바람 등의 유동성과 에너지의 옻칠로 형상화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서양의 마블링 기법과는 달리 물질 너머의 에너지와 기운을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옻칠의 특성 중 하나는 물과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바람이 흐르거나 먼지 같은 미세한 입자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모습, 또는 에너지와 기운의 흐름을 색으로 명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태극이 동정(움직임과 고요함) 이후 음과 양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3.꿈 夢
세 번째 섹션에서는 성파의 초현실 세계로 들어간다. 추상과 구상이 혼합된 인간, 동물, 기하학적 형태들이 혼재하며 무의식 속에서 펼쳐지는 꿈의 세계를 탐험한다.
4.조물 造物
작가 성파가 도자와 옻칠을 결합하고 공예와 미술을 넘나들며 '칠예 도자' 장르를 개척한 과정을 보여준다. 정형과 비정형의 공존,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성파 선예의 방식으로 선보인다.
각양 각색의 도자기들입니다. '조물'에서는 그동안 별개의 장르로 존재했던 도자와 옻칠이 성파의 손길을 통해 '칠예도자'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파는 칠예도자를 통해 정형과 비정형, 전통과 현대, 공예와 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물'은 단순한 창조가 아니라, 인연이 결합하여 나타나는 연기와 통하는 개념입니다. 즉 누군가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여러 요인과 조건들이 만나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며, 도자기들도 '공한 본성'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성파입니다.
5.궤적 軌跡
성파의 생애와 예술적 발전 과정을 추적하는 섹션으로, 그가 걸어온 예술적 궤적을 시기별로 나누어 보여준다. 유교의 시서화를 시작으로 불교의 사경과 도자, 그리고 추상적인 옻칠 예술로 확장되는 성파의 예술적 여정을 탐구한다.
인성과 물성의 일체를 주제로, 팔십 평생을 넘어서까지 일생을 걸쳐 펼쳐온 성파 선예의 발자취를 시기별로 보여줍니다. 특히, 22세에 입산하기 전에는 유가의 시서를 공부하였고, 입상 이후에는 불가의 사경, 도자기, 그리고 구상과 추상의 동양화, 민화, 칠예로 도약하며 성파의 예술 세계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 사람이 열일을 하는 성파는 스스로 '나는 한 오백년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6.물속의 달
물질과 정신,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초월하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상(相)에 대한 집착을 떠나 옻의 물성이 성파의 수행과 철학을 만나 조형 언어로 승화되는 과정을 감상할 수 있다.
옻칠의 방수성을 활용하여, 이번에는 굽은 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칠획과 황하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은 점들로 구성된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물속에서 전시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사물의 실상은 물결에 의해 일그러져 우리의 눈에 환영처럼 보일 뿐입니다. '물속의 달' 역시 눈으로는 보이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세계가 성파 선예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5~6개월에 걸쳐 마르면서 '꽃이 피면서 맑아지는' 이 옻칠의 활성이야말로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옻칠의 방수성과 활성을 몸소 체득하지 못했다면 성파의 무위와 공 철학을 증명하는 '물속의 달' 같은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 코스모스(COSMOS)'은 11월 1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관에서 전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