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레바논 출신 캐나다 작가인 와즈디 무아와드는  전쟁 4부작인 '연안지대' '화염' '숲' '하늘'로 잘 알려졌다. 특히우리나라에는  '그을린 사랑'의 원작 '화염'으로 유명하다.

 

그는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고국을 떠나 프랑스, 캐나다 등을 떠돌았는데 이러한 그의 삶의 경험과 아픔이 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작품 속 주인공이 만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레바논 내전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전쟁을 겪은 이들의 상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스마일(윤상화 분)은 윌프레드(이승우 분)의 아버지다. 아내를 잃고 다른 나라를 떠돌다가 죽음을 맞은 인물이다. 왜 그는 타지에서 눈을 감아야 했을까?  왜 아들에게조차 희미해진 인물이 되어야 했을까? 그리고 왜 숨을 거둔 후에야 비로소 돌아온 고향에도 누울 곳조차 없었을까? 윌프레드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계속 작성하는 이스마일은 전쟁이 낳은 또 다른 피해자이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안지대'에는 전쟁 속에서 보호자를 잃은 또 다른 이들도 존재한다. 실수로 아버지를 죽이고, 전쟁을 하는 어른들을 혐오하는 아메(이미숙), 아버지가 죽는 과정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광기로 계속 웃는 사베(공지수), 엄마 아빠에게 버림을 받은 후 친구들을 만나 엄마 같은 존재로 변하는 마시(정연주)까지. 여기에 남자친구를 잃고 마을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강가에 쪽지를 보내는 시몬(윤현길)과 전화번호부에 적힌 그 나라 사람들의 모든 이름들을 외우고 기록하는 조세핀(조한나) 등 상처받고 파편화된 인물들이 얽히고 설킨다. 

 

'연안지대'는 존재조차 희미했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전쟁의 참상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아들은 아버지를 묻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나지만 그곳은 내전으로 희생된 시신들로 가득 차 더 이상 묻을 땅이 없다. 다시 길을 떠나는 아들은 여행길에 만난 친구들과 아버지를 묻을 땅을 찾아다니며 전쟁으로 속절없이 무너진 가족과 세상을 목도한다. 모든 인간사에 존재하는 죽음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묵직하게 질문을 던진다.  

 

서울시극단의 두 번째 레퍼토리로 탄생한 연극 '연안지대'는 그동안 '손님들', '태양', '이 불안한 집' 등에서 감각적인 미장센과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 정이 맡았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김 정 연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김 정 연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 14일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 및 간담회에 참석한 김 정 연출은 "전 세계적으로 이전부터 내전은 존재했지만 몇 년 전 기억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 못했다. 그래서 엔딩에서 이스마일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으며 아이들에게 나아가라는 메시지가 몇 년 전까지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느껴졌지만 희망이라는 게 어떻게 말로 생성될지 믿어지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엔딩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다음 세대를 위해 아버지가 희생하고 바다 밑으로 가라않고 아이들은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떠나는 그 길에 폭격이 쏟아지는 엔딩을 구성했다. 비록 그 폭격으로 인해 몇몇의 아이들은 희생될 지 언정 몇몇은 살아남아 나아가지 않을까 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극 '연안지대'에서 물의 존재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함에 무대에서의 표현에 꽤나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미장센이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사진 왼쪽부터 김정 연출-윤상화-이승우-최나라)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사진 왼쪽부터 김정 연출-윤상화-이승우-최나라)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김 연출은 "무대 디자인을 고려할 때 무대 디자이너와 논의했던 것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전쟁이라는 묵직하고 거친 주제와 반대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쟁에는 결국 어떤 것이 파괴되었는지가 전쟁에서 다루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어떤 아름다운 형태였는지 알아야만 그것이 파괴되고 상실되었을 때 낙차로 고통을느끼고 공감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잔이 하는 말 중 실마리를 찾았다"라며 "그 메시지는 바로 '생명은 소중하다'이다. 그렇기에 윌프레드는 아버지를 아무데나 묻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아름다운곳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아버지 고향에 묻어드릴려고 하는 그런 행위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사운드, 조명에 있어 영상은 없고 물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물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까 상당한 고민을 했다. 프로필 사진을 찍어 주신 작가님이 콘셉트를  준비했는데 홀로그램 필름이라는 시트지로 조명을 쏴 물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이 작품 전체에서 풍기는 물 냄새, 바다 냄새, 일렁임, 반작임 등 이 시트지가 관객들 눈에 어느 정도 피로도가 있을 수도 있지만 반짝거림이 자극을 하는데 무대에서 가장 연극적인 요소로서 관객들에게 자극을드리고 싶었다.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런 아날로그함에 있는데 예전 연극했던 기본적인 정성이 많이 들어간 무대"임을 강조했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이승우)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이승우)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엔딩 부분에서 윌프레드는 안고 있는 짐 안에서 아버지 시신을 바다물에 씻어내며 그를 추모하며 구슬피 울고 만다. 이 씻김이 의미에 대해 이승우는 "씻김은 행위적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행위를 하게 되고 그 행위에 있어 자기도 모르게 업과 악을 쌓고 모든 것이 인생에 있어 겹겹이 쌓이게 된다. 그런 것들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에게는 좋거나 나쁜 기억으로 남게 되고 잊혀지지 않는데 어떤 순간에는 한번이라도 씻어내고 덜어내며 한번은 화해를 하자라는 의미인 거 같다"고 그 의미를 해석했다. 

 

이어 그는 "또 하나는 대신 울어주는 행위인 거 같다. 극중 윌프레드가 아버지만을 위해 우는  것에서 시작해 결국에는 모든 아이들이 (윌프레드) 아버지를 통해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며 씻김을 하며 울고 윌프레드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의 또 다른 아픔을 보고 씻어내고 그런 모습이 이 작품에서의 씻김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걸 기억해 주는 행위 자체가 모두의 씻김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최나라)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최나라)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최나라는 "잔의 입장에서 보자면 씻김은 마지막에 조세핀이 썼던 수 많은 이름들의 장부를안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모든 부모를 대변하여  전쟁을 일으킨 실체대로 원하지 않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과 함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아이들에게 끊어내는 위치를 가지는 모든 부모를 대변하는 입장으로 변하는 순간을 생각해서 개인의 생활을 벗어나고 부모로서 대변자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목동이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극 전체를 아우르는 음악에는 피아노 연주가 사용돼 극의 애달픈 감정을 어루만져 준다. 김 정 연출은 "피아노 연주는 드뷔시의 '몽상'이라는 곡 하나를 전체 테마로 잡고 있다. 몇 년 전 이 작품을 받았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 원래는 다른 작품들을 진행할 때 라이브 세션이 실제 출연자들처럼 개입을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라이브 연주는 빠졌지만 시적인 부분에서 잘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엔딩 부분에서 씻심의 과정 중 잔, 기로믈랑이 언덕에서 윌프레드의 아버지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를 연출은 "'시신을 어떻게 표현할까'가 가장 어렵고 중요했다. 윤상화 배우가 몸으로도 했고, 어떤 순간에는 디자이너 선생님과 실제로 실체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게 올드한 방법일지라도 꺼내 놨을 때 오브제 소품으로 느껴질지언정 그것을 닦고 만지고 울어주면서 (그것이) 생명을 가지는 체험을 관객들과 하고 싶었다"면서 "그것은 쉽게 치워지지 않는 무게이기 때문에 그걸 누가 어떻게 들고 갈 것인가 여러 시도를 했다. 원작에서는 잔과 기로믈랑의 역할이 분리돼 있지만 저희는 한 인물이기를 바랐다. 즉 윌프레드를 계속 따라다니는 수호천사, 어머니 혹은 어머니라고 일컬어지는 영적인 존재였으면 했다.이것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잔 또는 기로믈랑 밖에 없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김 연출은 "씬을 만들면서 계속 고민했다. 왜 아버지일까? '화염'에서는 어머니인데 이 작품은 왜 아버지일까 생각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인 거 같다. 목동이 되어 홀로 가라앉는 이스마일. 언덕 위에 어머니가 있을 거 같았고 이 작품 안에 비어있는 것을 채우고 싶었다. 아버지의 존재가 있다면 어머니는 어디선가 아버지 시신을 안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혹 그 모습이 십자가처럼 느껴지셨다면 의도하지는 않았다. 재현할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구도적으로 볼때 그런 이미지를 줄 것 같기도 하다"고 끝맺었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윤상화)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윤상화)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끝으로 윤상화는 "대부분의 연극들이 그렇다. 이 작품 역시 같은 공간에서 경험하는 방식이거나 여기서 관극 이상의경험이기를 바란다. 그 경험이 그사람의 일상에 아주 작은 영향일도 주어진다면 감사하게 공연할 것 같다"

 

이승우는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어떨 때는 피하고 싶고 슬퍼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고 있고 어떤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요즘 관객들은 그것을 볼때 슬픔, 아님 그것을 통쾌하게 복수하는 히어로로 바라보는 경향이 많은 거 같다. 이 작품은 결과로 다른 거 같아서 보시면은 다른 체험을 하실 거 같다"고 

 

마지막으로 김 정 연출은 "이들의 아픔은 우리에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의 시대에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광기가 가득 찬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며 "어른들이 물려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떠안은 아이들을 바라볼 때, 관객분들께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이승우-최나라)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연안지대' 프레스콜 (이승우-최나라) 2024.06.14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안지대'는 존재조차 희미했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전쟁의 참상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아들은 아버지를 묻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나지만 그곳은 내전으로 희생된 시신들로 가득 차 더 이상 묻을 땅이 없다. 다시 길을 떠나는 아들은 여행길에 만난 친구들과 아버지를 묻을 땅을 찾아다니며 전쟁으로 속절없이 무너진 가족과 세상을 목도한다. 모든 인간사에 존재하는 죽음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묵직하게 질문을 던진다.  

 

연극 '연안지대'는 6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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