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현장] 연극 '디 이펙트', 밀폐된 공간 속 네 인물의 치밀한 심적 갈등 (종합)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국내 초연작을 선보이는 일은 항상 설레고 부담됩니다. 새로운 서사를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부담이 있었고 제가 처음 작업해보는 출연진 12명과 만나는 기대는 컸습니다. 결과적으론 굉장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작업에 임했으며, 어마어마한 장면 연습도 있었어요"

작품은 영국의 유명 극작가 루시 프레블(Lucy Prebble)의 희곡으로 2012년 런던 영국국립극장(Royal National Theatre)에서 초연되었다. 이후 '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신작상' 수상을 비롯하여, 각종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자배우상, 최우수 연극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입증했다. 

연극 '디 이펙트' 프레스콜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놀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진행됐다. 민새롬 연출 및 배우 김영민, 이상희, 이윤지, 양소민, 박훈, 민진웅, 박정복, 옥자연, 김주연, 오승훈, 류경수, 이설이 참석했다. 

연극 '디 이펙트'의 한국 공연에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 세계 최초로 젠더 밴딩 캐스팅을 시도한다. 그 의도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민 연출은 "제작사와 손형민 피디의 아이디어였고 원작자도 동의한 부분입니다. 기대했던 부분은 성 역할이 바뀌어진다고 해도 어떤 자기 내면 세계나 자기 감정에 대한 인지가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할 수 있다는 측면을 역젠더로 보여줄 수 있다는 발상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영국 에이전시도 한국 프로덕션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던 걸로 압니다"

"작품은 다양한 사건들이 개입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아주 단순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실험 상황이 유지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보면 관객들이 좀 지루하게 따라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고전적인 설정이잖아요. 클래식하고 고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의 구조 안에서 좀 역동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해 봤어요"라며 "그러기 위해선 배우 분들이 본인들의 입장을 격렬하게 설전하는 구조에 어떤 빈 무대를 두고 나머지 것들을 관객들에게 기지감 있는 장르적인 어떤 타격감이 있는 시청각적인 요소들을 좀 세워보자는 시도를 했어요. 역동성 호르몬이 인간에게 주는 어떤 영향들. 감각적인 음향이나 영상들로 관객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고 생각해서 좀 과감한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실험을 이끌어 가는 로나 제임스(Dr. James) 박사 역에는 김영민, 이상희, 이윤지가 캐스팅되었다. 우울증은 약물 투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토비 실리(Dr. Toby) 박사 역에는 양소민, 박훈, 민진웅이 참여한다. 이성적인 심리학과 학생으로 실험에 참여한 코니(Connie) 역에는 박정복, 옥자연, 김주연이 캐스팅되었다. 특유의 자신감과 자유로운 성격의 실험 참가자 트리스탄(Tristan) 역에는 오승훈, 류경수, 이설이 함께한다. 

김영민은 2017년 '혈우' 이후 8년 만에 대학로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오랜만의 대학로 무대 복귀라 긴장도 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상희 배우랑도 얘기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연극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하고 있었다'라고 느껴지며 공연을 보러 다녔습니다"라며 "편안하기보단 친숙하게 연습하고 공연에 임하고 있어요. 젠더밴딩에 대해서는 처음엔 걱정했지만 대본 수정 작업에서 연출과 다른 배우들이 함께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젠더가 바뀐 것이 아닌 해당 배역의 배우들이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하고 고민들을 서로 얘기하며 작품 속에 녹아낸 것 같아요"

트리스탄역의 류경수는 "처음에는 빈 무대를 어떻게 채워볼 수 있을까 라고 상당히 부담스러웠었는데 관객분들이 이 연극의 스타일과 제가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연출님도 작품을 소중하게 대하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라면서 "선배·동료 배우 분들께 많이 배웠습니다.  뜨겁게 준비한 만큼 여름 내내 관객분들께 잘 전달됐으면 합니다"라고 성원을 당부했다. 

연극 '해롤드와 모드' 이후 4년 만에 대학로 무대에 복귀한 오승훈은 "배우로서 연기를 하다 보면 많은 순간 감정에 빠지게 될 때가 있는데 무대 위에서 연출님이 의도한 대로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개인의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라며 "공연을 하면서 너무 큰 위로와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많이 찾아와 주셔서 이런 감정을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라는 관람 포인트를 전했다. 

같은 배역의 이설은 "저는 연극 공연을 볼 때 배우 분들간의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들과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무대 위에서 한 생애 주기를 살아내는 모습에 큰 감동을 느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정말 이상할 정도로 엄청 끈끈한 유대감이 많이 형성된 것 같아요. 저희가 만들어 낸 이 정서를 관객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느끼고 싶습니다"라며 작품에 참여한 소감을 말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임상 테스트 참여자 코니 홀역에는 박정복, 옥자연, 김주연 배우가 출연한다. 젠더 밴딩을 연기하는 박정복은 "대본 작업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들은 젠더풀이랑 젠더 밴딩이랑은 다른데 그것에 대해서 인물이냐 성별이냐에 고민을 좀 했어요. 성별을 바꿨을 때 그런 부분들을 고민하고 어떤 것을 그 값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배우들이  젠더 배경이 아닌데도 같이 연구해주고 단어들을 선택해주고 해서 저희 젠더 밴딩 팀이 외롭지 않고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젠더 벤딩 연기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2년 만에 연극 무대에 나선 옥자연은 "대본을 봤을 때 네 명의 인물이 다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고 한 명 한 명 모두들 자기 매력이 넘치기 때문에 인물을 만나는 재미가 정말 있는 작품입니다"라며 "연습량이 참 많았는데 저는 원래 연습을 좋아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캐스팅 리스트 보고 연기의 신들과 함께 할 수 있겠구나 싶어 벅찮는데 만나보니 너무 마음들이 천사여서 누군가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 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게 뭘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만든 소중한 작품입니다. 제가 느꼈던 감동을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김주연은 "네 명의 각기 다른 인물들이 자기만의 문제점 그리고 고민들을 안고 있어요. 저도 보면서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고 코니라는 인물이 사실 저랑 막 비슷하지는 않지만 같이 공감했던 부분들이 확실히 있었어요. '디 이펙트' 보러 오셔서 재미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가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우울증에 약물 투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토비 실리(Dr. Toby) 박사 역에는 양소민, 박훈, 민진웅이 함께한다. 매 작품마다 묵직한 연기로 극에 무게감을 더하는 양소민은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신념이 강한 사람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역할을 잘 해보고 싶어요. 토비도 약간 그런 사람인데 마지막에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부분에 있어 모든 거를 표현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배우로서 욕심이 나서 선택했습니다"라며 토비 역을 선택한 이유를 전했다. 

4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한 박훈은 "'언더스터디' 이후 오랜 만에 합류했는데 공연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연대의 힘인데 그래서 함께 하는 배우들이 정말 중요합니다. 대학교 졸작 때도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새벽까지 남아서 연습하는 배우들은 처음 봤어요. 박정복, 김주연 같이 왕성하게 공연하고 있는 분들이나 김영민, 양소민 선배님같이 좋은 선배님들이 연습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셔서 작업이 아주 수월했어요"라면서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자기 색깔을 한 것 같아요.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연출님과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기분 좋게 작업을 한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요즘 '생각하지 마라'고 강요받는 알고리즘과 쇼츠의 세상 속에서 이 연극을 보고 많은 분들이 한 번 좀 생각해 보실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추천했다.

세계 최초 젠더 밴딩 캐스팅이라는 타이틀이기에 배우에 중점을 둔 연출적인 면에서 디렉팅을 내일 때 젠더 밴딩이 아닌 작품과의 차이점이 있는 지에 대해 민 연출은 "디렉션이 같은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지요. 인물이 뭘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냐, 전체 작품에서 그런 내용들은 통일된 디렉션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작품에서 단순히 이건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이라기 보다 인물이 원래여잔데 남자여서 더 획득해야 되는 것들이 뭐냐. 이런 부분들을 제거 좀 나이브하게 넘어가려고 하면 오히려 조목조목 짚어주셨습니다"라며 "배우들이 사실 스토리텔링이나 인물 분석에 있어 훨씬뛰어나신데 젠더 밴딩을 하게 된 네 명의 배우들이 그런 부분들에서 인물의 특성이나 대사의 해석들에서 더 뛰어났습니다"

연극 '디 이펙트'는 항우울제 임상 테스트에 참여한 코니 홀과 트리스탄 프레이 그리고 이 테스트를 감독하는 박사 로나 제임스와 토비 실리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사랑과 슬픔을 다룬다. 약물 시험이라는 상황을 통해 인간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 혼란스러운 감정들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극중 네 명의 인물들은 삶을 다루는 방힉과 태도에 있어서 매력적인 대조군으로 표현된다. 8월 31일까지 놀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