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통속'이라 함은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이나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1930년대, 남성 중심의 문화예술사에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김말봉 여류작가의 대표작 중 '고행', '찔레꽃', '화려한지옥' 세 작품을 각색해 옴니버스식으로 공연하는 연극이자 음악극이다.

 

이 작품은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연극창작센터가  지난 20일(목) 개관 기념으로 진행되는 '무한의 언어로 내일을 비추다' 페스티벌 일환으로 다섯 작품 중 첫 번째로 공연한 작품이다. 20일(목)부터 22일(토)까지 사흘간 공연했다. 22일 관람한 캐스트로는 김선화, 김영선, 남명렬, 김연주, 김정환, 이지은, 이진철, 안병찬, 이세희, 김단경과 음악그룹 더튠의 성현구, 고현경, 오영진이 출연했다.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이세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이세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작품을 집필한 김말봉 작가는 1901년 부산 출생으로 정신여학교 졸업 후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 과정 이수 후 1927년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7년 귀국하여 중외일보 기자로 취직해 일하다 1931년 보옥(步玉)이라는 필명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망명녀' 라는 단편소설로 응모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이어 '고행', '편지' 등을 발표했고, 1935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밀림'을, 조선일보에 '찔레꽃'을 연재함으로써 일약 통속소설가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김말봉은 처음부터 흥미 중심의 통속소설, 즉 애욕의 갈등 속에서도 건전하고 정의가 이기는 모랄을 지니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다는 신조를 가진 소설가였다. 통속연애사를 다루면서 당대 여성들의 생활과 사랑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대표작 '찔레꽃'은 한국 멜로드라마의 원류로 불린다. 

 

대체적으로 순수문학에만 집착하는 문단을 향하여 "순수귀신(純粹鬼神)을 버리라"고까지 하였으나, 그의 주장은 여전히 일반화 되지 않았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연은 '찔레꽃'이다. 착하고 청순하나 가난한 여자 주인공이 겪는 고난, 갈등, 엇갈린 로맨스 등 익숙한 서사가 펼쳐진다. 여기에 거짓말, 음모, 살인 등 소위 '막장 드라마' 요소도 충실히 들어가 있다. 김말봉의 소설 속 여성들은 주로 아내, 어머니, 딸 등으로 그려지고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는 모습 등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나약하기만 한 여성들이 아닌 정의를 추구하고 고난 끝에 자아를 발견하는 근대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제시한다.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음악그룹 더튠).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음악그룹 더튠).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이 작품에는 두 명의 남여 해설자(김정환, 이지은)가 나와 유쾌한 만담을 펼치며 친절하고 흥미진진하게 극을 이끌어 나간다. 여기에 그 당시 유행했던 동요, 가곡, 신민요를 결합해 3명의 밴드 연주자가 무대 막 뒤에서 연주하며 1930~1950년대를 실감 나게 재조명 해준다. 어떤 내용인 줄 모르고 이 공연을 보러왔다고 해도 웃고 공감하며 즐길수 있었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은 아내 몰래 바람피우는 남편이 고행에 처하는 이야기인 '고행'과 청춘남녀의 엇갈리는 사랑이야기로 1930년대 사회상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인 '찔레꽃' 그리고 기생 오채옥의 여성 수난사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지옥'까지 약 2시간에 걸쳐 공연됐다. 

 

'고행'은 정희는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남편을 절대적으로 믿고 존경하며 좋은 엄마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녀는 남편의 정부가 바로 바로 이웃에 있는 미자라는 사실을 모른체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편이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다 내연관계인 미자의 집 벽장에 숨어 곤욕을 치르는 장면은 해학을 넘어 통쾌함마저 선사한다. 김말봉은 이 작품을 통해 부부의 신의를 저버리고 남편의 외도를 해락적으로 풍자하고, 가정에 충실함과 동시에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따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안병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안병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이세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이세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두 번째로 공연되는 '찔레꽃'에서 주인공 안정순은 아버지가 병으로 입원하자 생계를 잇기 위해 은행장 조만호 집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사건의 발단은 조만호와 그의 아들이 안정순을 동시에 좋아하면서 서로 얽히고 설키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편 조만호의 딸 경애는 가정교사 안정순의 애인인 이민수를 사랑하게 된다. 조만호는 안정순을 재취로 맞이들이려는 의도에 침모에게 중매를 부탁하고 재취 자리를 탐내던 침모는 자기딸을 대신 합방시키려 한다. 조만호와 오랜 내연사이였던 기생 옥란은 이 사실을 알고 질투심에 침모의 딸을 살해한다. 살해 누명을 썼던 안정순은 누명이 벗겨지며 찔레꽃같은 순결을 온전히 간직하며 그 집을 나오게 된다. 이 작품은 여성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시기와 질투 오해를 극복하고 올바른 사랑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는 얘기한다.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김단경).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김단경).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마지막 작품 '화려한지옥'은 요즘 시대로 보면 페미니즘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의 해방,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가가 관리하던 산업형 성매매 '공창제' 문제가 대두될 때 쓴 작품이다. 김말봉은 폐업공창구제연맹을 결성해 공창제 폐지를 촉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여성운동가였다. 1946년 인신매매 금지령, 1948년 공창제 폐지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회복지시설 박애원을 설립하는 등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인물이다. 극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강조한다. 

 

오채옥은 공창 기생이다. 문과를 다니는 대학생 황영빈의 아이를 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포주의 마누라는 채옥에게 약을 주며 낙태를 종용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채옥은 약을 먹는 척 하기만 하고 공창에서 수 차례 도주 시도 끝에 도주한다. 고난끝에 국밥집 식모로 일하게 되지만 라디오에서는 5월 17일부로 공창제가 폐지되었다는 방송이 나오지만 배움이 부족했던 채옥은 그게 자신의 일인지 모른다. 

 

영빈은 고향에 약혼한 여인 은숙을두고 백송희라는 대학생과 열애 중이다. 손성묵이라는 친일파로 돈을 벌다 해방 후 아편으로 큰 부자가 된 사람 밑에서 일하는데 손성묵은 음성적 사업의 뒷감당을 위해 정치권에 거금을 기부하고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무산된다. 한편 공창제는 폐지됐지만 갈곳 없는 창기들은 성접대를 하거나 사창가로 흘러들어가는 폐순환이 이어진다. 이에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공창폐기위원회가 제정되고 성묵은 그곳에 기부하고 위원장 정민혜와 결혼하려는 흑심을 품지만 오래전 자신을 버리고 떠난 딸과 부인의 등장으로 실패한다.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남명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남명렬).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커튼콜. 2025.03.2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한편 영빈은 송희와 관계한 후 그녀에게 흥미를 잃는다. 송희는 매독에 걸리고 거기다 은숙의 존재까지 알며 상실감을 가지게 되고 채옥은 국밥집 주인에게 겁탈당할 위기를 벗어나 국밥집을 나와 사창가에 잡혀가 수난을 당하다 민혜에게 구조된다. 그후 공창폐지위원회에서 송희를 만난다. 영빈과 약혼한 송희는 채옥의 가진 아이가 영빈의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화가 난 송희는 영빈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려 방아쇠를 당기지만 병원으로 이송되어 살아난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채옥이 권총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사형 선고를 받늗다. 그 와중에 임신한 아이를 사산하고 신앙의 힘으로 고통을 감내한다. 목숨이 위중하던 송희는 자신이 살인 사건의 진범임을 자백하고 결국 숨을 거둔다. 이에 채옥은 무죄로 방면된다. 공창폐지위원회에서는 창기들에게 교육을 시켜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희망원을 개원한다. 채옥은 희망원에 들어가 열심히 봉사하다가 의사와 결혼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통속연애사를 다루면서 당대 여성들의 생활과 사랑을 세밀하고 풍자적이자 반전을 보여주며 서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드라마적 서사의 탄탄함 속에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남명렬 배우와 음악그룹 더튠의 합류로 다채롭고 풍성한 음악극을 구현했다. 여기에 샤막 뒤에 있던 김말봉을 무대로 소환해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역할로 확대했다. 1930년대 음악적 요소와 다양한 연극적 요소에 코믹 요소 그리고 2025년에 알맞은 각색과 연출로 여성성의 정당성과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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