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수 많은 넔을 달래고 '실'이라는 캐릭터가 다른 오대륙의 샤먼들과 만나게 되는 방대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가 이 지구 위에 놓여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자연을 헤치지 않고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떻게 풀어내고 보탬이 되어 우리 삶과 전제를 지켜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소박한 이야기에요"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의 연출을 맡은 박칼린 감독은 지난 29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제작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신 : 페이퍼 샤먼'은 영험한 힘을 지닌 주인공 '실'을 통해 만신(萬神, 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의 특별한 삶과 소명의식을 이야기한다. 1막에서는 남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난 소녀 '실'이 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되기까지를, 2막에서는 만신이 된 '실'이 오대륙에서 건너온 샤먼들과 긴 여정을 함께하며 각 대륙의 비극과 고통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대서양 노예무역의 고통을 겪은 아프리카 흑인 노예부터 서부 개척 시대에 희생당한 미국 원주민, 6?25전쟁이 남긴 역설의 공간 비무장지대(DMZ)에 서식하는 동물, 열대우림 파괴로 사라져간 아마존 원주민 부족 등 수많은 생명의 영혼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한 굿이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  한국의 무속문화와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순수 창작극에 도전함으로써 창극의 지평을 한층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4월 부임한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유은선이 기획하고 선보이는 첫 신작이다. 공연계에서 전방위 예술가로 활약하는 박칼린이 연출·극본·음악감독을 맡고 극작가 전수양이 극본 집필에 함께 참여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유은선 감독은 "첫 부임후 올릴 작품에 대해 고심 했다. 첫 번째로 해야할 것으로 우리이야기의 전통적 이야기를 창극에 담아 보는 것으로 결심했다. 첫 작품이 '만신 :페이퍼 샤먼'인데 이 작품을 통해 창극의 다양한 실험적 요소를 정착시키고 창극에 있어 자체 이야기를 더욱 빛내기 위해 기획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작품 캐스팅에 관련해서 유 감독은 "국립창극단 멤버들도 있지만 별도의 오디션이 있었다. 박칼린 연출가는 신입인지 아닌지에 대한 개념없이 본인이 생각한 캐릭터에 최적의 인물을 선택했다. 사실 저랑 약간의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연출이 정한 캐스팅을 따랐고 다만 원캐스트로 할 것이지 더블캐스트로 할 것 인지에 대한 논의는 있었다"고 밝혔다. 

 

윤은선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세계화에 앞장 서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드러냈다. 그는 "해외 진출은 당연히 생각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 전통 판소리에 해외 연출, 외국 작품에 한국 연출 등 여러 조합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순수한 우리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소재에 우리 연출로 가장 전통적인 요소를 넣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K-컬처, K-문화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와 관심을 받고 있어 가장 한국적이면서 전통적인 작품은 국립창극단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이쪽 분야에 오래 몸담아 온 박칼린 연출이 교두보가 되어 연결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면서 "단순한 인적 교류가 아닌 이 작품이 지닌 전통의 이야기, 오대륙 이야기는 살아가면서 삶이 비슷하듯 충분히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본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신 : 페이퍼 샤먼'에서 창극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소리와 음악은 다채로운 색감으로 꾸며진다. 판소리·민요·민속악을 근간으로 새롭게 작창한 소리를 중심에 두고, 무가(巫歌, 무속 의식에서 무속인이 구연하는 노래)와 각 대륙의 문화를 포괄하는 다양한 토속음악을 가미한 것이 음악적 특징이 돋보인다.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연출 박칼린)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연출 박칼린)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내 1호 뮤지컬 음악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박칼린은 이 작품의 연출 및 음악감독까지 도맡았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칼린은 어린 시절 불교와 토속신앙에 기반을 둔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샤머니즘을 접했다. 그 영향으로 박칼린은 오래전부터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작품을 준비해 왔고, 첫 창극 연출을 맡으며 그간 구상해 온 아이디어를 창극에 맞게 재구성해 초연한다.

 

박칼린 연출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는 부산에  있었다. 무속이 많았고 굿도 자주 하고 저희 집안 내력에도 무속인들이 계셨다. 그런 환경 속에 자연스럽게 샤머니즘을 접했고, 친숙하다"고 했다. 

 

작품을 연출하는 방법에 있어 그는 "뮤지컬 기법을 쓰겠다고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그저 대본이 요구하는 음악과 스토리텔링에 충실했음"을 밝혔다.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사진 왼쪽부터 국립창극단 박경민, 연출 박칼린,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 국립창극단 유태평양(작창보), 국립창극단 김우정)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사진 왼쪽부터 국립창극단 박경민, 연출 박칼린,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 국립창극단 유태평양(작창보), 국립창극단 김우정)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만신 : 페이퍼 샤먼'에는 종이 미학을 활용한 무대, 입체적 안무 돋보일 예정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샤머니즘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만신 : 페이퍼 샤먼'에서도 한국 굿에 깃든 미학을 동시대 예술로 구현하기 위해 무대의 기본 구조는 언덕·돌담·개울 등의 자연적 요소로 이뤄진다. 그중에서도 약 4미터 높이의 대형 나무가 특징적이다. 예로부터 민간신앙에서 신성한 자연신(神)의 하나로 숭상된 나무는 무속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긴요한 무대 장치로 설치된다. 북유럽 숲부터 한국의 작은 마을, 아프리카 해변, 서부 사막, 비무장지대,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스펙터클하게 변화하는 공간은 영상과 조명을 비롯한 여러 디자인 분야의 도움을 받아 표현된다. 다양한 국가를 연상시키는 100여 벌의 의상과 창의적 소품, 음악과 안무가 어우러지는 무대로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또한, '페이퍼 샤먼'이라는 작품 제목에 걸맞게 종이를 활용한 무대도 눈길을 끈다. 종이는 인류 문화와 역사를 전해온 귀중한 기록 매체인 동시에 물과 불을 만나면 사라지기도 하는 음양의 이치를 드러낸다. 인간의 운명을 뒤바꾸는 생사의 경계는 종이 한 장보다도 더 얇다고 비유하는데, 실제 굿에서도 무구(巫具)를 종이로 직접 제작하는 작업을 중요한 의식 중 하나로 여긴다. 이번 작품 역시 무구와 관련된 일부 소품을 종이로 만들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주인공 '실'이 마지막 장면에서 입는 옷 역시 한지로 제작한 의상이다. 

 

박 감독은 "종이는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는 매체인 동시에 물과 불을 만나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승과 저승, 과거와 미래 등 이 얇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해 적극 촬영했다"면서 "다만 한지가 비싸 이번에는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초연이 성공하고 재연이 이뤄진다면 그대는 온 무대를 모두 종이로 써서 연출하고 싶다"라며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김우정)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김우정)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작품의 주인공 '실' 역에는 김우정과 박경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2020년에 입단한 김우정은 맑은 미성의 소유자로, 창극 '춘향'의 춘향 역과 '정년이'의 권부용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지난해 10월 입단한 박경민은 이 작품을 통해 첫 주역으로 데뷔한다. 두 배우 모두 ‘실’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따라가면서 강신무로서 무아의 경지를 표현하기 위해 맹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모든 것을 품으라는 뜻의 이름처럼, 모든 생명을 지키고 평화를 비는 '실'의 커다란 힘을 어떻게 소화해 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우정은 "박칼린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소망이 이뤄져 기쁘다. 전통 창극은 오랫만이라 흥미롭고 주인공 '실'이 만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허투로 흉내내면 안되겠다 싶었다. 관객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무대를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실제로 굿판 답사도 해보고 다른 만신 선생님께 자문도 구했다"면서 "이과정 자체가 큰 도전이고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배역의 박경민 씨는 사실 대학 선배로 같이 국립극장에 입단해 작업 하는데 서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배울 점은 배우며 각기 다른 '실'의 매력을 보이고자 한다"는 각오를 전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박경민)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박경민)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박경민은 "지난해 10월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입단해 첫 주역 작품이다. 진심으로 영광스러운데 걱정 반 설렘 반이다. 여느 십대와 같은 천진난만함을가진 '실이' 만신이되어 모든 것을 품어 주고 치유해 주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는데 제 포부를 말하자면 관객들에게 감동과 울림, 위로의 무대를 선보이고 싶다. 그리고 힘이 많이 되어 주고 있는 우정 씨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전했다. 

 

작창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명창 안숙선, 작창보는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 유태평양이 맡았다. 안 명창은 전반적인 작창 방향을 잡고, 유태평양은 이 작품의 연출이자 음악감독인 박칼린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소리를 구체화했다. 판소리 본연의 장단·음계 등에 충실하면서도 이야기에 담긴 상황과 정서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다양한 부침새를 활용했다. 또한 우리 전통 선율에 아프리카 전통음악 등 이국적인 리듬을 녹여내 보다 참신한 소리를 짜는 데 주력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유태평양(작창보))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국립창극단 유태평양(작창보)) 2024.05.2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유태평양은 "좋은 기회로 안숙선 선생님의 작창보로 활동하게 되었다. 저의 (작창) 첫 작품이고 첫 작품을 국립창극단과 함게 해 너무나 큰 영광이다. 이번 작품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다양한 음악들이 많이 준비돼 있다. 각캐릭터마다 생각했던 대륙이 달라 그 나라의 음악에 맞는 이미지를 드리기 위해 열심히 한국의 전통 선율과 각 대륙 만의 전통 음악적 색깔을 섞어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 역시 공부가 많이 되는데 정말 많이 세계의 음악을 듣고 있다. 한국 음악뿐 아니라 아프리카로 유학을 갔던 시절이 있는데 그때를 회상하면서 재미있고 추억에 잠기는 그런 느낌도 받았다"며 "안숙선 선생님 작창에 저는 조금 더 색과 옷을 입혀 연출님과 상의하면서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다. 남은 기간 더 열심히 준비해서 보여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샤머니즘은 샤먼을 중심으로 한 토속신앙으로, 수천 년 전부터 전 세계에 존재해왔다. 영적인 존재와 인간세계를 매개하는 샤먼은 '예민한 자' 또는 '치유사'로도 불리며, 보통 사람의 복을 빌고 죽은 자의 넋을 위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에서는 '굿'을 통해 풍년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했다. 우리 전통문화에 깃든 정신을 오늘날 감각으로 재창조한 신작을 통해 관객에게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만신 : 페이퍼 샤먼'은  6월 26일(수)부터 30일(일)까지 해오름 극장에서 초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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