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은 2025년 1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색죽色竹 - 비선飛線(Chromatic Verticals)'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전통 동양화의 상징적 오브제인 대나무와 오방색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여, 디지털 시대의 감성과 구조, 철학적 사유가 공존하는 새로운 회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전통 회화의 해체, 색채로 다시 태어나다
〈색죽〉은 권기수 작가가 오랜 기간 탐구해온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주제를 집약한 실험적 프로젝트다. 작가는 수묵화의 먹선 대신 500여 종의 색면을 사용하여 대나무를 구성하며, 이를 ‘색으로 된 대나무(色竹)’라 명명했다.
이 대나무는 더 이상 붓의 흔적이 아닌, 수직적 구조와 색의 모듈로 이루어진 공간적 조형물로 전환된다. 전통의 일필휘지(一筆揮之)가 디지털 언어의 정밀함과 결합하며, 회화는 평면을 넘어 입체와 공간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먹 대신 색, 붓 대신 구조로 그리는 것은 동양화의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가는 일”이라 말한다. 오방색의 철학에서 비롯된 색채 구조는 인간과 자연, 감성과 이성을 잇는 상징적 질서를 재현하며, 전통 회화의 본질을 오늘의 미디어 감각으로 전복한다.
곡선과 수직, 긴장과 균형의 미학
이번 전시의 핵심은 ‘수직성과 곡선의 공존’이다. 작가는 수직을 ‘규격화와 사회적 압력’의 은유로, 곡선을 ‘소통과 탈주의 의지’로 해석한다. 전시장에는 이 두 조형 언어가 긴장과 조화를 이루며 공간을 구성한다.
관람객은 직선과 곡선, 막다른 벽과 열린 틈을 넘나들며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선 ‘체험의 회화’를 경험한다. 이 공간은 감각과 사유가 만나는 철학적 장으로, 색과 구조를 통해 현대인의 심리적 풍경을 시각화한다.
비선飛線-공중을 가르는 선의 철학
‘비선(飛線)’은 이번 프로젝트의 조형적 개념을 응축하는 키워드다. 공중을 가르며 비상하는 선은 대나무의 탄성과 생명력, 그리고 한옥의 처마선과 한복의 자락처럼 한국적 곡선의 미학을 상징한다.
권기수는 이러한 ‘선의 기억’을 디지털 언어로 번역하며, 전통 조형미와 현대적 감각의 경계를 허문다. 색과 구조, 공간을 매개로 한 ‘비선’의 개념은 동양적 정신의 시각적 재해석이자, 디지털 시대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20년 사유의 기록 - ‘근원수필 根源隨筆’
4층 전시장에서는 2008년부터 이어온 작가의 사유적 여정을 담은 연작 〈근원수필〉이 함께 전시된다. 한국 전통 회화의 근원을 탐구하며 축적해온 20여 년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색죽 프로젝트와 맞물리며, 전통과 현대, 사유와 기술이 만나는 권기수 예술의 본질을 드러낸다.
권기수-전통과 기술의 경계를 잇는 작가
홍익대학교 및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한 권기수 작가는 2008년 구글 아트 프로젝트와 2010년 ‘The Art of a Homepage’에 선정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에 초청되어 미국 콘코디아 칼리지에서 방문교수로 재직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상하이 MOCA, 런던 사치갤러리, 뉴욕 MAD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동해왔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상하이 Long Museum, 샌프란시스코 Asian Art Museum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기수의 '색죽色竹 - 비선飛線'은 디지털 시대의 동양화, 감성과 기술의 융합을 제시하며,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한국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