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0.—2026. 3. 29.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세계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이자 퍼포먼스 예술의 대가, 조안 조나스(Joan Jonas)의 개인전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가 2025년 11월 20일부터 2026년 3월 2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제8회 백남준 예술상 수상 작가전을 겸하며, 국내 미술관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조나스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조안 조나스(1936-, 미국)는 지난 50여 년간 비디오, 퍼포먼스,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해온 인물이다. 1960년대 뉴욕의 실험적 예술운동 속에서 등장한 그는 퍼포먼스 아트의 형식적 언어를 개척하고, 영상 매체를 통해 시간과 신체, 자연과 인류의 관계를 탐구했다. 그의 작품은 미디어 아트와 개념미술, 연극, 문학을 아우르며 이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 ‘인간과 자연, 현실과 신화의 경계’ 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Ⅰ. 바람에서 시작된 실험 -신체와 자연의 교감
전시의 서두를 여는 작품은 1968년에 제작된 초기 퍼포먼스 비디오 '바람(Wind)'이다. 흰 천을 두른 인물들이 바람 부는 해변에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의 흐름에 반응하는 이 작품은, 인간 신체와 자연 현상 간의 교감을 실험한 상징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이는 작가가 이후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신체적 행위와 자연적 리듬의 통합’이라는 조형 언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뉴욕의 실험예술 현장을 배경으로 한 조나스의 초기 작품들은 퍼포먼스와 비디오를 결합한 새로운 예술 형식의 탄생을 보여준다. 그는 당시 개념미술가, 무용가, 시인들과 교류하며 신체와 공간,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했고, 이는 현대 비디오아트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Ⅱ. 신화와 생태, 인간 중심 서사를 넘어
전시의 두 번째 장에서는 1980년대 이후 조나스가 본격적으로 구축한 신화적·생태적 내러티브를 조명한다. 그는 이 시기부터 인간의 시선을 벗어나 동물, 식물, 바다, 대지 등 비인간적 존재와의 관계를 탐구하며 ‘생태적 사유’를 작품으로 옮겼다.
그녀의 대표작 '볼케이노 사가(Volcano Saga)'(1989)와 '리딩 단테(Reading Dante)'(2010)는 북유럽 신화와 서양 문학의 서사를 변주하여, 인간 중심의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이러한 조나스의 작업은 단순한 환경 예술이 아니라, 신화적 상상력과 현대적 감각이 교차하는 시각 언어로서, 인간 존재의 한계를 넘어선 ‘타자적 세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Ⅲ. 인간 너머의 세계-기억과 부재, 그리고 빛
전시의 마지막 장에서는 작가의 최신작 '빈 방(Empty Rooms)'(2025)이 공개된다. 조각, 비디오, 드로잉이 결합된 설치작품으로, 부재와 상실의 감각을 섬세한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조나스는 영상 속에서 비워진 공간과 사라진 형상을 통해 “기억의 시간”을 탐색하며, 그 속에서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유한성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울, 빛, 새, 개, 물결 등의 시각 요소는 이번 전시에서도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즉 ‘인간 너머의 세계’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다.
백남준의 유산과의 대화
이번 전시는 “인류평화에 기여하고 미술사적 족적을 남긴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백남준 예술상의 취지를 되새기며, 조나스의 예술세계를 백남준의 실험정신과 연결짓는다.
백남준이 전자 미디어를 통해 인간의 소통과 미래를 탐구했다면, 조나스는 신체와 자연, 생태를 매개로 ‘인간 이후의 감각’을 사유한다. 두 작가 모두 기술과 예술, 철학을 융합하여 인류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깊은 공명점을 가진다.
조안 조나스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 세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다시 상상하는 장”을 열어 보인다.
전시는 2026년 3월 29일까지 계속되며, 현대미술의 역사와 오늘을 잇는 거장 조나스의 예술 세계를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