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화가 니키 말루프(Nikki Maloof)가 2025년 9월 10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일본 도쿄에 있는 페로탱(Perrotin)에서 개인전 'Aspects of Daily Lif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일상의 단면들’을 탐구하는 작가의 최근 회화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시와 명상, 고전 회화와 동서양 미학을 교차시키는 독창적 회화 언어를 제시한다.

Nikki Maloof, Fish Heads, 2025. Oil on linen, 61 x 50.8 cm- 24 x 20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Nikki Maloof, Fish Heads, 2025. Oil on linen, 61 x 50.8 cm- 24 x 20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시간과 사물, 그리고 회화의 은유
말루프의 작업은 일상의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 세계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녀는 하이쿠에서 발견되는 ‘짧고도 깊은 이미지’에 매료되어, 물고기나 갑각류, 꽃과 같은 일상 소재에 덧입혀 삶의 유한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작품 'Flounder'(2024) 속 정지된 물고기들은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를 연상시키며, 덧없는 순간을 응시하는 존재의 시선을 환기한다.

특히 최근의 회화에서는 화려했던 과거 팔레트 대신 절제된 색감과 미묘한 질감의 대비가 돋보인다. 르네상스의 원근법을 대신해 내면화된 ‘수축된 공간’을 구성하고, 화면 속 질감과 투명도의 실험을 통해 플랑드르 화파의 전통을 새롭게 소환한다.

Nikki Maloof, Night Bouquet, 2025. Oil on linen, 88.9 x 142.2 cm-35 x 56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Nikki Maloof, Night Bouquet, 2025. Oil on linen, 88.9 x 142.2 cm-35 x 56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정물화의 새로운 차원
'Sardines'(2025)나 'Fish Heads'(2025)에서 말루프는 정물화의 전통을 재해석한다. 물고기의 눈과 껍질, 식탁 위의 패턴, 포크의 비틀림 등은 단순한 사물 묘사를 넘어 일종의 ‘심리적 초상화’로 다가온다. 이는 루시안 프로이드의 오브제 회화, 도메니코 놀리의 일상 사물 변용과 닮아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눈으로 표면을 만지는 듯한’ 회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Pink Table'(2025)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화병의 꽃은 네덜란드 정물화의 전통을 소환하면서도, 흔적처럼 남은 식사와 주변의 손동작들이 긴장과 서사를 불어넣는다. 화면 가장자리에 드러나는 손의 제스처는 작은 연극처럼 연출되며, 삶의 무상성과 드라마를 동시에 내비친다.

Nikki Maloof, Pink Table, 2025. Oil on linen, 177.8 x 127 cm-70 x 50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Nikki Maloof, Pink Table, 2025. Oil on linen, 177.8 x 127 cm-70 x 50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일상과 자연, 내면의 연극
말루프의 회화는 가정적 공간과 심리적 풍경을 긴밀히 연결한다. 'Crab and Cherries'(2025)에서 붉은 게의 다리와 순박한 벚꽃 무늬 드레스는 삶의 폭력성과 tenderness를 동시에 암시하며, 껍질의 표면은 작은 우주처럼 펼쳐진다. 'Night Bouquet'(2025)에서는 시든 꽃잎과 곤충들이 전통적 바니타스 회화를 환기하며,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유한성을 서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작가가 거주하는 매사추세츠의 정원은 또 다른 회화적 무대다. 'Spring'(2025), 'Summer'(2025) 속 나무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품은 순환의 상징으로 그려지며, 일본 신토 사상의 생명수목을 떠올리게 한다.

Nikki Maloof, Summer, 2025. Oil on linen, 121.9 x 152.4 cm-48 x 60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Nikki Maloof, Summer, 2025. Oil on linen, 121.9 x 152.4 cm-48 x 60 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삶을 축하하는 회화
니키 말루프는 일상의 식탁과 침실, 정원이라는 소박한 무대를 통해 보편적 주제를 탐구한다. 그녀의 회화는 즐거움과 슬픔, 생명과 소멸이라는 이중적 감정을 동시에 품으며, ‘그림 그리기의 기쁨’ 자체를 주제로 삼는다. 이번 전시는 일상의 작은 장면들을 보편적 메타포로 확장하는 말루프의 회화적 세계를 체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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