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퍼포먼스 그룹 펀치드렁크(Punchdrunk)의 대표작 '슬립노모어'가 프리뷰 공연 기간을 마치고 드디어 정식으로 막을 올린다. 이번 공연은 종로의 대한극장을 과감하게 개조해 '매키탄 호텔(McKitan Hotel)'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선보인다. 제작사인 미쓰잭슨의 박주영 대표는 이 공간을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관객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1930년대 스코틀랜드풍 호텔로 탈바꿈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매키탄호텔에서 '슬립노모어 서울'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간담회에는 '슬립노모어 서울'의 주최 및 제작사 미쓰잭슨의 박주영 대표, 원작사 펀치드렁크의 펠릭스 바렛(Felix Barrett / 창립자 겸 연출), 맥신 도일(Maxine Doyle / 공동 연출 및 안무가)과 더불어 리비 보건(Livi Vaughan / 무대 디자이너), 데이비드 레이노소(David Israel Reynoso / 의상 디자이너), 콜린 나이팅게일(Colin Nightingale / 프로젝트 어드바이저), 사이먼 윌킨슨(Simon Wilkinson / 조명 디자이너)가 참석했다.
박주영 대표는 "대한극장이 11개의 영화관으로 구성된 멀티플렉스였던 만큼, 단순히 공연장으로 개조하기보다는 관객이 매키탄 호텔이라는 세계관 속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건축·동선·조명·소품까지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라며 "일부는 대한극장의 흔적을 남겨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성을 완성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슬립노모어'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통적인 서사를 따라가는 공연은 아니다. 관객은 가면을 착용한 채 각자의 호기심에 따라 호텔 곳곳을 탐험하며, 배우와 장면을 선택적으로 마주한다. 따라서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관객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경험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스토리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 탐험하라'가 이 공연의 주된 관람 포인트가 된다.
박 대표는 "관객이 주인공을 따라가는 방식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캐릭터와 서사를 탐험하면 새로운 스토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구, 소품 같은 디테일까지 모두 연출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공간을 세밀하게 탐색하면서 단서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250억 투자, 롱런 가능성은 관객 호응에 달려
대한극장을 개조하는 데에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됐다는게 박 대표의 설명이었다. "초기 투자비만 250억 원을 유치했으며, 공연장이자 공연이라는 이중적 성격 때문에 부대 운영비도 상당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프리뷰와 프리 오픈 기간 동안 뜨거운 반응을 확인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최대한 오래 공연하고 싶지만, 결국 관객의 호응 여부가 롱런의 열쇠"임을 강조했다.
프리뷰 공연 기간 일부 관람객 사이에서는 '좁은 공간에 인파가 몰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 14일 관람했던 나 역시 그런 부분의 불편함을 느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초반에는 관객들이 주인공 위주로 몰리며 착시 현상이 생겼지만, 공연이 지속될수록 관객들이 다양한 캐릭터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점차 분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 공연장은 뉴욕이나 상하이보다 규모가 크고, 쾌적한 관람을 위해 수용 인원도 제한하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매키탄 호텔'의 의미
서울 공연장의 이름은 '맥키탄(McKitan) 호텔'로 정해졌다. 뉴욕 '맥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 상하이 '맥키논 호텔(McKinnon Hotel)'과 마찬가지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Vertigo)'에서 이름을 차용했지만, 한국 공연에는 특별히 'Make it Han'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박 대표는 "히치콕의 영화와 스코틀랜드적 세계관에 한국적 정서를 결합해 맥키탄 호텔이라 지었습니다"라며 "대한극장의 역사적 정체성과 한국적 감각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슬립노모어 서울'은 국내 공연계에도 새로운 실험이 될 전망이다. 박 대표는 "그동안 한국 관객은 무대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머물렀습니다. '슬립노모어'는 영화 속에 직접 들어온 듯한 체험을 제공하고, 관객을 공연의 능동적 주체로 변화시킬겁니다. 이를 통해 창작자들에게도 새로운 영감과 시도가 촉발되기를 기대해요"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해외 명작의 재현을 넘어, 한국 공연 환경에 맞는 새로운 형식 실험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몰입형 연극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서울에서 어떻게 뿌리내릴지, 관객들의 반응과 국내 창작 생태계에 미칠 장기적 영향이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