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실로 이어진 세계,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가 삶과 죽음, 정체성과 실존에 대한 깊은 사유를 품고 3년 만에 가나아트센터로 돌아왔다. 2025년 7월 25일부터 9월 7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Return to Earth'는 생명과 존재를 하나의 순환적 구조로 바라보며,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내면의 사유와 치유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흙으로 돌아가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실선의 철학-시오타 치하루는 삶의 근원과 종말을 하나의 연결된 과정으로 사유한다.

Second Skin-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Second Skin-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Nokon kjem til å komme.-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Nokon kjem til å komme.-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특히 전시 타이틀이자 대표 설치작인 'Return to Earth'(2025)는 작가의 철학이 응축된 공간적 사유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교차하며 내려오는 검은 실들은 마치 신경세포, 나무의 뿌리, 인간의 혈관처럼 보이며, 자연과 인간, 현실과 비가시적 세계를 잇는 존재의 경계를 형상화한다. 바닥에 깔린 흙더미와 실의 교차는 인간이 다시 자연으로 귀환하는 순환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오타는 이러한 시각적 장치를 통해 죽음을 단절이 아닌 전환으로, 삶의 또 다른 층위로 해석한다. 작가노트에서 밝히듯, “내 몸은 흙이 되고, 숨결은 공기가 되며, 영혼은 분자 단위로 쪼개져 세상을 떠돈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조용한 귀환’에 대한 예술적 형상화다.

Connected to the Universe-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Connected to the Universe-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실이라는 존재의 언어, 그리고 치유의 도구-시오타는 일관되게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정과 기억, 관계의 복잡한 구조를 시각화해왔다. 실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감각적 언어이며, 인간의 내면을 외부로 끌어내는 연결의 도구다. 단순한 선이자 수많은 교차점인 실은, 자아와 타자, 기억과 망각, 존재와 부재 사이의 모든 흐름을 떠맡는다.

그가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였던 과거 작업들, 의자와 붉은 실을 엮어낸 〈Between Us〉(2020), 드레스와 배를 통해 기억을 환기한 〈In Memory〉(2022)이 ‘관계’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존재 그 자체의 본질’로 한층 더 깊이 들어간다.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개인의 상처에서 인류의 사유로: 병, 상실, 그리고 회복-시오타의 작업 세계는 두 차례의 암 투병, 그리고 임신 중 사산을 겪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이러한 깊은 상실과 육체적 고통을 개인의 고백으로 끝내지 않고, 예술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존재 조건으로 확장해간다.
연작 'Cell'(2025)은 암세포의 증식과 항암 치료의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철사와 유리라는 상반된 재료를 통해 생명과 파괴, 재생의 긴장감을 시각화한다.

철사는 통제와 속박을, 유리는 연약하지만 재생 가능한 생명 구조를 상징하며, 이는 곧 “모든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입구일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해부된 자아, 관계 속 존재 – The Self in Others'-전시에서는 2024년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처음 소개된 연작 **〈The Self in Others〉**도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Cell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The Self in Others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The Self in Others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분리된 신체의 파편 조각을 벽면에 배치한 이 작업은 해외에서의 타자화된 정체성, 그리고 나 자신조차 낯설게 인식되는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구성되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시오타는 조형적으로 조용히 설득해간다.

시오타 치하루의 예술은 고백이자 치유이며, 사유이자 기도다.
자신의 몸과 세계의 구조를 포개어 질문을 던지고, 실과 유리를 매개로 상실과 회복, 고통과 구원의 경로를 직조해낸다.
그가 그리는 선은 단지 시각적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이 세계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소멸하고 다시 피어나는지를 묻는 윤리적 실타래다.

The Self in Others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The Self in Others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The Self in Others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The Self in Others 시리즈-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는 현대 예술이 여전히 인간과 세계를 깊이 성찰할 수 있는 도구임을 다시 증명한다.
그녀의 실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결을 드러내고, 흙으로의 귀환은 생명의 순환을 품은 치유의 메타포로 다가온다.

Return to Earth-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Return to Earth-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이 전시는 단지 한 예술가의 내면을 보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땅(Earth),
그곳에서 시작된 삶의 무게와 의미를 함께 사유하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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