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시리아 출신의 아르메니아계 작가 케보크 무라드(Kevork Mourad)가 페로탕(Pérotin) 상하이에서 첫 개인전 'When Time Was Like a River – 시간이 강과 같았을 때'를 선보이며, 전쟁과 문명의 파편 위에 남겨진 기억의 건축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2025년 8월 23일까지 이어지며, 작가와 갤러리 간의 첫 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케보크 무라드, 페로탕 상하이 개인전 '시간이 강과 같았을 때'-사진제공 페로탕
케보크 무라드, 페로탕 상하이 개인전 '시간이 강과 같았을 때'-사진제공 페로탕

무라드의 작업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의 직관적 대화에 가깝다. 참조 이미지 없이 작업하는 그의 방식은 기억과 본능, 즉흥성과 물질성이 뒤섞인 독특한 회화 언어로 표현된다. 드로잉, 판화, 재단, 붓질이 유기적으로 교차하며 하나의 ‘기억의 지층’을 만든다.

이번 전시는 총 네 개의 매체적 영역 – 설치, 종이 작업, 회화, 오려내기 회화(cut-out paintings) – 로 구성되며, 각각은 잃어버린 문명과 인내, 그리고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응시로 이어진다.

케보크 무라드마지막 기도, 2024리넨에 아크릴66.5 × 55 × 4cm | 26 3/16 × 21 5/8 × 1 9/16인치-사진제공 페로탕
케보크 무라드마지막 기도, 2024리넨에 아크릴66.5 × 55 × 4cm | 26 3/16 × 21 5/8 × 1 9/16인치-사진제공 페로탕

전시 타이틀과 동일한 작품 <시간이 강과 같았을 때>(2025)는 무라드의 기억 구조물 중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자리한다. 손으로 정교하게 오려낸 이중 레이어 구조는 시각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깊이를 더한다. 후면 패널에는 고대 도시 팔미라의 건축적 정수가, 전면 레이어에는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파괴와 훼손의 흔적이 중첩된다.

한때 실크로드의 핵심 교차점이자, 그리스-로마 양식과 페르시아 문명이 만났던 팔미라는 무라드에게 단순한 유적이 아닌 ‘침묵하는 증인’이다. 그의 손은 무너지는 기둥을 붙잡듯 화면 위에 뻗어나가고, 이는 사라지는 역사에 대한 저항이며 동시에, 기억을 고정하려는 애틋한 몸짓이기도 하다.

사진 -멍치바오 작가와 페로탕
사진 -멍치바오 작가와 페로탕

무라드의 작업은 관람자에게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무너진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과 고통, 그리고 희망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전쟁의 폐허만이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이야기로 남기고자 하는 예술가의 역할이 함께 담겨 있다.

페로탕 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역사와 문명의 파편을 손끝으로 엮어낸 예술적 복원”이라 평하며, 동시대 미술이 다룰 수 있는 ‘기억’의 범위와 깊이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케보크 무라드더 웨이브, 2025종이에 아크릴132 × 288.5 × 6cm | 51 15/16 × 113 9/16 × 2 3/8인치-사진제공 페로탕
케보크 무라드더 웨이브, 2025종이에 아크릴132 × 288.5 × 6cm | 51 15/16 × 113 9/16 × 2 3/8인치-사진제공 페로탕

이 전시는 ‘역사’와 ‘예술’, ‘기억’과 ‘형태’가 교차하는 동시대 예술의 의미 있는 순간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지를 묻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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