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획’의 사이에서 한국미술의 본질을 되묻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김종영미술관이 2025년 봄, 특별한 시선을 품은 기획전 '선과 획 사이'를 통해 현대미술의 본질과 한국적 조형언어의 근원을 탐색한다. 전시는 4월 4일부터 6월 8일까지 김종영미술관 별관 1, 2, 3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안재홍_나를 본다_38x52x20cm_동선_동관_2018-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안재홍_나를 본다_38x52x20cm_동선_동관_2018-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안재홍_나를 본다-자라다 (세부사진)_200~220cm_가변설치_2004-2005-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안재홍_나를 본다-자라다 (세부사진)_200~220cm_가변설치_2004-2005-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이번 전시는 ‘선’을 작업의 중심 소재로 삼아온 김범중, 이길래, 안재홍, 윤향란 등 네 명의 작가를 초청해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매체와 시도를 선보인다. 이들은 각각의 조형 언어를 통해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예술적으로 제기하며, 관람객들에게 조형의 시작점이자 근본인 선과 획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김범중과 이길래는 평면 위에서 섬세하고 고요한 드로잉을 통해 반복과 내면의 울림을 구현하고 있으며, 안재홍과 윤향란은 조각과 설치 작업을 통해 선이 물성을 획득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 실험을 넘어, 오랜 시간 쌓아온 예술적 공력(功力)의 깊이를 바탕으로 감각 너머의 세계와 연결된다.

김범중_Coherence(좌_2024)_Threshold(우_2025)_120x160cm_장지에 연필-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김범중_Coherence(좌_2024)_Threshold(우_2025)_120x160cm_장지에 연필-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이길래_Drawing 2023-2(좌)_Drawing 2023-3(우)_210x148cm_한지에 먹_Dip pen_혼합재료_2023-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이길래_Drawing 2023-2(좌)_Drawing 2023-3(우)_210x148cm_한지에 먹_Dip pen_혼합재료_2023-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김종영미술관 박춘호 학예실장은 “이들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티베트 승려가 모래로 만다라를 그리고, 서화가가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실현하고자 필묵을 다루는 순간과 맞닿아 있다”며, “선은 단지 형상이 아닌, 행위와 정신, 그리고 철학의 문제로 확장된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선과 획’이라는 동서양의 조형 인식을 비교하고, 그 차이에 주목한다. 서양에서는 ‘선(line)’을 점들의 연속으로 정의하고 조형의 구조적 기초로 삼는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점과 획을 중심으로 운필과 행위성, 기(氣)와 리(理)의 조화를 미학의 본질로 삼는다.

‘획(劃)’은 단순한 선(line)을 넘어서 동사적 개념으로, 그림을 긋고 경계를 짓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획’에는 작가의 의지, 정서, 에너지가 투영된다. 결국 이 전시는 단순한 선을 넘어서, ‘그림을 긋는다는 행위’와 그것이 지닌 정신적 깊이를 조망한다.

이번 전시는 단색화와 더불어 한국미술이 지닌 특유의 ‘수행적 미학’에 대한 질문으로도 연결된다. 김범중과 이길래의 작업은 마치 한 획, 한 호흡을 수행하듯 반복되는 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재홍과 윤향란은 무거운 재료 속에서 살아 있는 ‘선’을 추출해낸다. 이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선과 획은 더 이상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존재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에너지이자 정신이다.

윤향란_즉흥 드로잉_2025_세부사진_3-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윤향란_즉흥 드로잉_2025_세부사진_3-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윤향란_즉흥 드로잉_광목천_실_아크릴릭_가변설치_2025_3층 전시실_1 (1)-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윤향란_즉흥 드로잉_광목천_실_아크릴릭_가변설치_2025_3층 전시실_1 (1)-사진제공 김종영미술관

김종영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의 발원’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서구 미술의 조형 논리와는 다른 동아시아 예술의 본질, 즉 획을 긋는 행위 안에 깃든 인간의 사유와 감정, 기운의 흐름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 차이를 ‘동사는 동양, 명사는 서양’이라는 철학적 인식 위에 올려놓으며, 미술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도구임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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