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 예술의 가치에 대한 성찰, 김종영의 철학을 되돌아보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김종영미술관은 2025년 6월 8일까지 '김종영의 조각과 글 Part 4: 누구를 위해 창작하는가?'를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는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의 예술철학을 조명하는 자리다.
오늘날 미술계는 예술과 시장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한국 미술시장은 ‘1조 원 시대’를 맞이하며, 예술이 시장과 더욱 밀접하게 연계되는 흐름을 보인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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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가들은 창작자로서의 순수성을 유지할 것인가, 시장의 논리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고민에 직면한다.
작가이자 교육자였던 김종영 또한 생전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며 성찰했고, 그의 사유는 비망록과 제자들에게 남긴 가르침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글과 작품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한번 탐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종영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예술과 시장의 관계는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본말을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작품과 상품은 엄연히 다르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팔려는 이들에게 “작품은 파는 것이 아니라 기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이에 합당한 ‘답례’를 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는 예술이 단순히 상업적 가치를 넘어서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종영은 자신의 철학을 제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각자의 처지와 여건을 고려하여 소신껏 작업할 것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용기’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제자들과의 일화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제자의 고민, “그림은 어떻게 팔아야 할까요?”
김종영은 이에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이라는 짧은 답을 남겼다.
그리고 수평선과 수직선을 긋고, 그 사이에 사선을 그리며 덧붙였다.
“일은 일로서 족하다. 부귀영화를 어찌 혼자서 다 얻겠는가?”
이는 마치 선문답 같지만, 본질적으로 각자 처지에 맞는 선택을 하면 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미대 학생회 일을 하던 제자에게 “志在不朽(지재불후)”라는 휘호를 남겼다.
이는 ‘썩지 않는 것에 뜻을 두라’는 의미로, 금전적 가치가 아닌 예술적 본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메시지였다.
이 제자는 이후 청년 작가를 위한 갤러리를 운영하며, 이 휘호를 사무실에 걸어두었다.

김종영은 동서고금을 통해 진정한 예술적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모두 ‘헛된 노력’에 일생을 바쳤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공리(功利)를 초월해 솔직하게 작업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은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것이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창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은 오늘날 예술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금전적 가치가 예술적 가치의 척도가 되는 현실 속에서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미술계에서는 백화점과 대기업이 미술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작품의 예술적 가치’보다 ‘투자 가치’가 더욱 강조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작품이 점점 ‘상품’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김종영의 철학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예술은 단순한 상업적 행위가 아니라, 자기 내면과 시대를 성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되,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금전적 가치보다 작품의 본질적인 의미와 지속성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전시는 김종영의 조각 작품과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예술가들이 ‘누구를 위해 창작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조각가로서의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모든 창작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김종영미술관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예술과 시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 미술계에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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