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페로탕 서울은 2025년 첫 전시로 단체전 ≪Cabinets of Curiosities (호기심의 캐비닛)≫를 2월 28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를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조쉬 스펄링, 닉 도일 등의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며, 그동안 페로탕이 자체적으로 제작해온 아트북, 에디션, 포스터, 굿즈 등을 북스토어 형식으로 함께 선보인다.
'Cabinet de Curiosités(진품실)’는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개념으로, 개인의 수집품을 진열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당시 탐험가들은 전 세계에서 구해온 물품들을 수집해 진열장(cabinet)에 보관하였는데, 이러한 문화는 점차 발전하여 최초의 전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조각, 회화 뿐 아니라 도자기, 가구, 고서, 동식물 표본 등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었으며, 수집품의 크기와 희소성이 그 가치를 결정하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수집가의 취향과 부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왕족, 귀족의 관심과 참여로 이어지게 된다. 진품실은 개인적 차원의 형식이었으나, 오늘날 박물관의 기능인 보관, 분류, 진열, 관람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에는 살롱(salon)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는 빈티지 가구와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컬렉터의 방’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경험해볼 수 있다. “예술은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갤러리 설립자 엠마누엘 페로탕의 철학을 반영한 이번 전시는 보다 쉽고 친근한 방식으로 예술을 소유하고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198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닉 도일은 미국의 매니페스트 데스티니 개념의 유산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다. 콜라주 데님으로 만든 조각적인 평면 작업으로 잘 알려진 도일은 아메리카나의 어휘를 통해 탐욕, 과잉, 부조리한 남성성을 탐구한다. 도일은 미국의 대중적인 코드 중 하나인 로드 트립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아 미국 국가 정체성의 근간인 강인한 개인주의의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일련의 기계 미니어처, 연극적 풍경, 풍자적인 소품과 같은 데님 작품을 통해 향수의 위험성과 소비주의와의 진화하는 관계를 조명한다. 자판기, 타자기, 담뱃갑과 같은 도일의 이미지와 인디고(청), 면화 같은 소재는 미국의 식민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미디어가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한다. 도일은 문화적 의미를 지닌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현대 생활과 시각 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 정치적 의제를 성찰하고 비판하고 있다.
1972년에 태어난 로랑 그라소는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의 작품은 이질적인 시간성과 지형, 현실의 교차점에 위치하며, 영상, 조각, 회화, 사진 등을 매체로 관객을 불확실성의 기묘한 세계로 불러들인다. 작가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인지하는 것의 경계를 계속해서 실험하고, 그를 통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라소의 작품은 어느 한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닌, 굴절된 현실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수한 힘들이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매료된 작가는 집단적 공포에서 정치, 전자기 또는 초자연 현상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파악하고 드러내며 구체화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인식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드러내고, 역사와 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1969년 독일 출생의 틸로 하인츠만은 1990년대 초부터 프랑크푸르트의 슈타델슐레 순수미술의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재학 중 하인츠만은 조각가 토마스 바렐의 수업을 들었으며, 마틴 키펜베르거의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매체와 그 역사를 면밀히 연구하는 일련의 독일 화가 가운데 주요한 인물로 손꼽히는 하인츠만의 창의적이고 정밀한 작품은 오늘날 회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 탐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합판, 스티로폼, 매니큐어, 레진, 양피지, 가죽, 안료, 모피, 면직물, 자기, 알루미늄, 마포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방법론과 독특한 시각 언어를 고안하고자 했다. 그는 각 작품이 만들어내는 존재감에 관심이 있으며, 이는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촉각적 특성에 의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구성, 표면, 형태, 색상, 빛, 질감과 시간 같은 회화의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요소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든다. 2018년에는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회화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981년 미시간주 랜싱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코악은 섹슈얼리티, 정체성, 여성의 자율성과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와 만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코악의 작품은 고통스러운 경험과 긴장의 순간을 담아내는 동시에, 코미디적 감각을 담아낸다. 코악의 회화, 드로잉, 조각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내며, 감정과 연약함의 기복으로 흔들리는 여성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유동적인 선과곡선으로표현된코악의작품속인물들은우리의경험에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자극하며, 이를 통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코악은 작품을 통해 여성과 연대하는 시각적 언어를 창조하고, 궁극적으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자 한다.
클라라 크리스탈로바는 1967년 옛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부모님과 스웨덴으로 이주했으며, 이후 스톡홀름 왕립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크리스탈로바는 기묘하면서도 낯익은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 세계에는 괴짜 같고, 혼자이며, 조용하고, 어딘가 길을 잃은 듯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잔혹한 이야기에서 막 빠져나와 지나가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끌어주길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유약을 입힌 세라믹으로 만든 그의 인물들은 거칠지만, 동시에 연약함과 인간미를 불러일으킨다. 크리스탈로바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공포, 사랑, 슬픔, 죄책감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그녀의 작업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이런 감정들이 드러난다. 풍경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녀의 정신적·물리적 세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선보인 어둡고 신비로운 전시들 속에서 그녀의 드로잉, 세라믹, 브론즈 작품을 통해 단편적으로 암시된다.
이배는 1956년 경상북도 청도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와 서울, 청도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배의 모노크롬 회화에서 ‘숯’은 핵심적인 요소이다. 나무를 태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지지만, 불을 되살리는 데에 사용되기도 하는 숯의 특성을 통해 작가는 삶의 순환에 대한 은유를 작품에 담고 있다. 2000 년대 초반까지 그는 숯의 파편이나 덩어리로 캔버스 위에 아상블라주 작업을 하거나, 탄화된 나무 기둥으로 만든 조각을 오브제로 제시하는 등, ‘숯’ 자체를 활용하는 미니멀하고 정교한 작품을 제작해 왔다. 숯을 연상시키는 카본 블랙을 중심으로 작업해 온 작가는 무작위적이며 근본적인 제스처를 바탕으로 한 회화 작품을 비롯해, 드로잉과 조각, 설치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만의 추상적인 미학 세계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