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윌버 J. 코헨 빌딩을 지키려는 이유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미국 워싱턴 D.C.에서 뉴딜 시대의 귀중한 벽화를 품은 역사적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필립 거스턴, 벤 샨, 세이무어 포겔 등 미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들의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윌버 J. 코헨(Wilbur J. Cohen) 빌딩’이 연방정부의 가속 매각 대상에 포함되면서, 건물 보존을 위한 시민 서명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건물은 보존운동가들로부터 ‘뉴딜 미술의 시스티나 예배당’이라 불릴 만큼 희귀한 공공미술을 품고 있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건물의 노후화와 개보수 비용을 이유로 매각을 서두르고 있으며, 매각 이후 철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뉴딜 미술의 보고
윌버 J. 코헨 빌딩(1940)은 대공황 시기 예술가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 미술 프로젝트’에 따라 제작된 10점의 공공미술을 품고 있다. 그 내용은 미국 사회의 희망, 노동의 존엄, 공동체의 일상을 담아낸 귀중한 기록이다.
현재 건물에 남아 있는 대표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세이무어 포겔(Seymour Fogel)의 건식·습식 프레스코
•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의 가족 식탁 풍경화
• 벤 샨(Ben Shahn)의 활기찬 여가 장면
• 쌍둥이 자매 에델·젠 마가판의 유화 작업
• 헨리 크라이스(Henry Kreis)와 엠마 루 데이비스(Emma Lou Davis)의 화강암 부조
• 리치몬드 바르테(Richmond Barthé)의 독수리 조각
이 작품들은 건물 벽과 구조에 직접 결합된 형태이기 때문에 별도 분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건물이 철거될 경우 벽화의 원형 보존도 함께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매각 과정의 문제… “투명성도, 시민 참여도 없다”
비영리 재단 ‘리빙 뉴딜(Living New Deal)’은 정부가 해당 건물의 역사적 가치와 공공미술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매각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매각 허가는 관련 없는 법안 속에 은밀하게 끼워 넣어졌고, 공론화 없이 신속히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리빙 뉴딜 관계자는 “정부에 무조건 보존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투명성과 시민 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현재 매각 대상인 45개 연방 건물 중 약 3분의 1이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윌버 J. 코헨 빌딩만큼 방대한 뉴딜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다. 이 건물이 철거된다면, 미국 공공미술사의 중요한 조각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딜 미술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
건물은 1988년 사회보장제도 초기 직원이었던 윌버 J. 코헨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주요 사무소로도 사용되어 온 역사적 의미 또한 크다.
하지만 건물은 개보수 없이 장기간 방치되면서 구조적 손상과 비용 문제를 이유로 매각 명단에 올랐다. 2026년 이전 매각이 목표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보존을 위한 시민 서명과 학계, 예술계의 연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술가·건축가·역사학자들은 “이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미국 근현대사의 정신을 담은 문화유산”이라며 철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뉴딜 시대 공공미술은 지역 공동체를 위로하고 국가적 위기를 예술로 극복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이었다. 이제 시민사회는 그 유산이 후대에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정부에 책임 있는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