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일정: 2025년 11월 21일(금) - 12월 13일(토)
•작가: 조르주 루스 (1949-프랑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의 시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워지는 듯하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선명하게 빛난다. 프랑스 설치 사진작가 조르주 루스가 27년 만에 다시 서울을 찾으며, 그 사라진 시간의 흔적을 예술로 복원한다. 공근혜갤러리에서 막을 올리는 개인전 '서울, 기억의 단면'은 바로 그 복원의 장이다.
이번 전시는 루스가 1998년 서울 청계천 황학동 일대에서 진행한 현장 설치작업을 중심에 둔다. 재개발을 앞둔 낡은 양옥집 외벽 위에 그가 남긴 짙은 붉은 원은 당시의 서울을 관통한 상징적 이미지였다. 사라질 공간에 바치는 인사이자, 폐허 속에서도 빛을 찾아내려는 그의 예술적 태도였다.
작가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쓰러져가는 공간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 빛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기억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붉은 원은 태양빛의 상징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와 처음 나눈 인사였습니다.”
27년이 흐른 지금, 그는 전혀 다른 얼굴의 서울과 다시 마주했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로 빼곡한 청계천 일대 앞에서, 1998년 폐허의 현장을 떠올리며 그는 “서울과의 두 번째 만남은 오래된 기억과 새로운 현실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서울 프로젝트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당시 촬영된 사진 작품 〈서울, 1998〉과 함께, 최근 성곡미술관 30주년 기념전에서 발표한 설치 프로젝트 〈서울, 2025〉의 사진작과 드로잉 신작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또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제작된 주요 작품 6점과 수채화 드로잉 17점이 함께 전시되어, 조르주 루스의 공간·기억·빛을 향한 예술적 탐구가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루스는 사진을 매개로 회화, 조각, 건축을 넘나드는 특유의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작가다. 버려진 건물이나 철거 예정지를 작업실처럼 활용해 그 위에 직접 도형과 색을 그려 넣고, 이를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그의 방식은 ‘공간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진’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기록 사진이 아니라, 한 시대와 장소가 품은 기억을 빛의 조형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예술적 증언이다. 1981년 파리 첫 개인전 이후 그의 작업은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며, 국제사진센터(ICP)상 수상, 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준회원 선출 등으로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공근혜갤러리가 1998년 루스의 한국 첫 전시를 소개한 이후 오랜 인연을 이어온 이번 전시는 “시간이 지워낸 서울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과거의 폐허 위에 그려진 붉은 원과, 오늘의 도시 풍경 사이에서 관람자는 한 도시의 변화와 그 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의 결을 다시 읽게 된다.
조르주 루스가 남긴 ‘서울의 단면’은 결국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기억의 초상이다. 이번 전시는 사라진 풍경과 남겨진 마음, 그리고 다시 쓰이는 도시의 시간을 예술로 기록하는 긴 여정의 중요한 장면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