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킹엄 궁전 ‘Her Stylish Life’ 전시, 200점의 의상으로 본 영국 미학의 역사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왕실의 품격은 단순한 권위가 아닌, 세대를 넘어 계승된 ‘스타일의 언어’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3주년을 맞아, 런던 버킹엄 궁전 킹스 갤러리에서는 내년 초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그녀의 스타일리시한 삶(Elizabeth II: Her Stylish Life)” 특별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여왕의 100년 생애를 통틀어 선보이는 최대 규모의 의상 컬렉션으로, 웨딩드레스부터 플라스틱 레인코트까지 약 200점의 옷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패션 전시’가 아닌, 영국 왕실과 근현대 패션사를 아우르는 역사적 기록이다.
1960년 여동생 마가렛 공주의 결혼식에서 착용했던 하늘색 드레스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여왕은 이 결혼식을 위해 자신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였던 노먼 하트넬에게 다시 의뢰해, 볼레로 재킷이 달린 크리놀린 드레스를 제작했다. 사진가 세실 비튼이 포착한 그 장면은 3억 명이 넘는 전 세계 시청자에게 ‘품격 있는 여왕’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트넬, 하디 에이미스, 그리고 현대 디자이너 리처드 퀸과 에르뎀 모랄리오글루까지, 이번 전시는 왕실 패션의 진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특히 하디 에이미스가 제작한 투명 플라스틱 레인코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로, 여왕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투명 우산의 시초로 평가된다. 전시에서는 하트넬의 트위드 재킷, 발모럴 타탄 킬트 등 영국 장인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함께 공개된다.
큐레이터 캐롤라인 드 기토(Caroline de Guitaut)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상징의 언어였다”며 “그녀의 스타일은 절제와 품위,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영국의 미학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식 카탈로그에는 영국 패션계의 거장 안나 윈투어, 의상학자 에이미 드 라 헤이,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케인 등이 참여해 여왕의 패션을 미학적·문화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케인은 “여왕의 옷장은 단순한 의복의 집합이 아니라, 영국 정체성의 시각적 연대기이자 절제의 미학”이라고 평했다.
이번 전시는 현재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의 화려함이 ‘과시의 미학’이라면, 영국의 엘리자베스는 ‘단정함의 품격’을 대표한다.
그녀의 패션은 결코 사치스럽지 않았지만, 세련된 절도와 상징적 절제미로 70년간 한 시대의 미감을 정의했다.
버킹엄 궁전 관계자는 “이 전시는 단순히 의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왕이 어떻게 ‘국가의 얼굴’을 만들어왔는지를 체험하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025년 12월부터 2026년 4월까지 런던 버킹엄 궁전 킹스 갤러리에서 열리며, 이후 스코틀랜드와 캐나다 순회전이 예정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