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오랫동안 사라졌던 18세기 바로크 유화 한 점이 최근 런던 경매장에서 극적으로 재발견되며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주인공은 나폴리 출신 화가 페델레 피셰티(Fedele Fischetti, 1732–1792)의 작품 ‘밤의 승리(The Triumph of Night)’이다. 단순한 종교화로 오인되어 외면받던 이 그림은 뉴욕의 미술상 크리스토퍼 비숍(Christopher Bishop)에 의해 연금술적 상징이 가득한 희귀 걸작으로 밝혀졌다.

페델레 피셰티, 밤의 승리(1765년경).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페델레 피셰티, 밤의 승리(1765년경).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비숍은 오랫동안 유럽 전역의 경매장에서 잊힌 명화를 발굴해온 미술계의 ‘탐정’으로 불린다. 그는 2012년 이탈리아 바로크 거장 일 게르치노의 미확인 작품을 발견한 데 이어, 2022년에는 네덜란드 화가 얀 리벤스의 분실 드로잉을 찾아내며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3년 전,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작가 미상의 작품으로 출품된 한 병풍 크기의 유화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림의 상징이 너무 복잡하고, 색채가 비현실적으로 환각적이었습니다. 작가가 단순히 화가가 아니라 연금술적 세계관을 이해하고 있는 인물임이 분명했죠.”

비숍은 그 작품을 피셰티의 것으로 확신했다. 피셰티는 18세기 산세베로의 왕자 라이몬도 디 산그로의 궁정 화가로, 나폴리 프리메이슨과 연금술 세계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페델레 피셰티의 '밤의 승리' 선화. 색상환과 연금술 단계의 대응 관계를 보여줍니다.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페델레 피셰티의 '밤의 승리' 선화. 색상환과 연금술 단계의 대응 관계를 보여줍니다.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비숍은 수개월간의 분석 끝에 그림 속에 숨겨진 구조를 해독했다. 그는 작품의 하단에 등장하는 양성체(hermaphrodite)를 고대 신화가 아닌 연금술적 개념인 ‘레비스(Rebis)’로 재해석했다. 즉, 남성과 여성의 본질이 완전히 융합된 화학적 양성체, 연금술의 궁극적 완성체를 상징하는 존재로 본 것이다.

이 해석을 통해 비숍은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림 속 장면 하나하나가 연금술의 단계 -정화, 결합, 변성, 환원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좌측에는 이집트 신 호루스의 어린 시절 버전이자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Harpocrates)가 등장해, 입술을 가리키며 관람객에게 “이 그림은 비밀로 말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하포크라테스(1~2세기 CE)의 초상 . 피스케티의 그림 '연금술과 화가'에 함께 전시됨.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하포크라테스(1~2세기 CE)의 초상 . 피스케티의 그림 '연금술과 화가'에 함께 전시됨.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비숍은 이번 발견을 기념해 카탈로그 레조네 형식의 해설서를 집필하고, 작품 속 인물과 색채의 의미를 분석했다. 그는 “주홍색 안료(Vermeil)를 만들기 위해 수은과 유황을 섞던 연금술의 원리가, 회화의 안료 제조와 동일한 과학적 과정이었다”며 “피셰티는 화가이자 연금술사였다”고 밝혔다.

그의 결론은 명확했다. ‘밤의 승리’는 단순히 상징을 차용한 회화가 아니라, 연금술적 의식의 기록이자 영혼의 변형을 담은 진정한 마법의 장치라는 것이다. 이는 수세기 후 칼 융(Carl Jung)이 탐구한 ‘정신의 연금술’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작품은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위치한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Christopher Bishop Fine Art)에서 10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연금술과 화가: 페델레 피셰티의 밤의 승리〉에서 처음 공개된다.

전시에는 ‘밤의 승리’ 외에도 실제 마법적 유물로 알려진 히포크라테스의 프톨레마이오스 부적, 영지주의 헤마타이트 보석, 19세기 프리메이슨의 상징 날개 장식 등이 함께 전시된다. 모두 연금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실존적 유물들이다.

라의 눈(Wedjat)을 상징하는 이집트 부적 (후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664년~기원전 30년)은 '연금술과 화가'에도 등장합니다.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라의 눈(Wedjat)을 상징하는 이집트 부적 (후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664년~기원전 30년)은 '연금술과 화가'에도 등장합니다. 크리스토퍼 비숍 파인 아트 제공.

비숍은 “이 그림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 신비주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태어난 하나의 주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합리주의로 설명하지 못한 세계의 한 조각이 이 안에 존재합니다.”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예술사학계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계몽주의 시대의 이면에 존재했던 오컬트 미학의 실체가 새롭게 조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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