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Michel Othoniel: The Geometry of Emotion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파리 마레지구 중심, 76 rue de Turenne에 위치한 전시공간에서 2025년 10월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프랑스 조각가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비뇽 랑베르 컬렉션 이후 이어지는 회고적 전시로, 미니멀리즘과 감정의 미학이 교차하는 오토니엘의 핵심 세계를 조망한다.

장 미셸 오토니엘 '유리와 빛으로 쌓아 올린 감정의 건축'-사진제공 파리, 2025. 작가 및 페로탱 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 '유리와 빛으로 쌓아 올린 감정의 건축'-사진제공 파리, 2025. 작가 및 페로탱 제공

1964년 프랑스 생테티엔의 산업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회색빛 광산 마을의 현실 속에서도 예술을 하나의 ‘평행우주’로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 접한 로버트 모리스의 미니멀리즘 작품은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이후 파리로 이주해 미술을 공부하면서 그는 개념미술, 플럭서스, 대지미술 등 실험적 예술운동의 중심에서 자신의 언어를 확립해 나갔다.

그의 작품에는 늘 ‘통로와 벽’의 개념이 공존한다. 그것은 감금과 해방, 절망과 희망의 상징이다. 초기작 ‘Wish Wall’에서 관람객은 성냥을 켜며 자신만의 소원을 남겼고, ‘Precious Stonewall’에서는 유리 벽돌과 구슬이 하나의 빛의 벽으로 재탄생했다. 벽은 더 이상 차단이 아니라 감정의 통로가 되며, 빛과 반사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2025년 파리 페로탱 미술관에서 열린 장 미셸 오토니엘의 '신작' 전시 전경. 사진: 클레어 도른. ©Jean-Michel Othoniel/ADAGP, 파리, 2025. 작가 및 페로탱 제공
2025년 파리 페로탱 미술관에서 열린 장 미셸 오토니엘의 '신작' 전시 전경. 사진: 클레어 도른. ©Jean-Michel Othoniel/ADAGP, 파리, 2025. 작가 및 페로탱 제공

오토니엘의 대표작은 ‘유리 구슬’로 만들어진 대형 조각 시리즈다. 1990년대 초부터 무라노 유리 장인들과 협업해 제작한 이 구슬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단위이며, 반복된 형태 속에 서정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는 이를 ‘감정적 기하학(Emotional Geometry)’이라 부른다. 인간의 관계, 기억, 상처가 유리의 투명함과 반사 속에서 조용히 진동한다.

장 미셸 오토니엘-프레셔스 스톤월, 2025-아이스 블루와 핑크 인도 거울 유리, 나무-85 × 66 × 22cm-사진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 페로탱 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프레셔스 스톤월, 2025-아이스 블루와 핑크 인도 거울 유리, 나무-85 × 66 × 22cm-사진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 페로탱 제공

유리 벽돌의 발상은 인도 여행에서 비롯되었다. 길가에 쌓인 벽돌 더미 속에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본 그는, 그 경험을 예술의 언어로 전환시켰다. 그의 벽돌과 구슬은 실재와 상상, 고체와 공허, 물질과 감정의 경계를 허물며, 결국 서로 교환 가능한 존재로 변한다.

그의 예술은 물질의 아름다움 너머, 상처와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80년대 에이즈 사태로 인한 상실의 시대를 겪으며, 그는 고통을 초월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 회복력임을 믿었다. “세상이 더 끔찍할수록 예술은 더 추상적이어야 한다.”는 파울 클레의 문장은 그의 조형 철학과 맞닿아 있다.

장 미셸 오토니엘-낙원으로 가는 계단, 2025-핑크와 인디언 핑크 인디언 미러 유리, 나무-86 × 174 × 32cm-사진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 페로탱 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낙원으로 가는 계단, 2025-핑크와 인디언 핑크 인디언 미러 유리, 나무-86 × 174 × 32cm-사진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 페로탱 제공

이번 파리 개인전에서는 이러한 오토니엘의 조형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 유리 구슬과 벽돌로 만들어진 대형 설치작, 그리고 금속과 빛을 활용한 신작들이 전시되며, 관람자는 반사와 그림자의 틈에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세계는 단순히 조형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흐르고 머무는 ‘빛의 건축’이다.

오토니엘은 현재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세계 주요 미술관과 공공장소에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의 분수,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도 그의 작품은 ‘투명한 조각시’로 불린다.

장 미셸 오토니엘-프레셔스 스톤월, 2025-앰버와 아쿠아마린 블루 인도 거울 유리, 나무-80 × 55 × 22cm-사진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  페로탱 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프레셔스 스톤월, 2025-앰버와 아쿠아마린 블루 인도 거울 유리, 나무-80 × 55 × 22cm-사진제공 장 미셸 오토니엘  페로탱 제공

그의 예술은 말한다.
“유리는 깨지기 쉽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 가장 단단히 지키고 싶은 감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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