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성전이던 루브르, 1억 달러 보석 도난으로 드러난 보안의 허상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예술의 금고, 루브르 박물관이 흔들렸다. 지난 10월 17일 새벽, 프랑스 왕실 보석 8점, 약 1억 200만 달러 상당의 유물이 루브르 박물관의 아폴로 갤러리에서 도난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강도를 넘어, ‘예술의 보존과 보호’라는 인류 문명의 기반을 되돌아보게 한다.
프랑스 검찰은 파리 인근 센생드니 출신의 30대 남성 두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요일 새벽 박물관의 가구 리프트를 이용해 침입, 불과 7분 만에 황실 보석을 훔쳐 달아났다. 현장 영상에는 형광 조끼와 오토바이 헬멧을 착용한 두 인물이 창문을 통해 탈출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남긴 것은 깨진 진열장과, 떨어진 왕관 한 점뿐이었다.
루브르 관장 로랑스 데 카르는 이번 사건을 “끔찍한 실패”라 표현하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상원 청문회에서 “노후화된 시설과 부실한 보안 체계가 결국 이 참사를 불렀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사건 당시 감시 카메라는 작동을 멈췄고, 박물관 경보는 늦게 울렸다.
현재 루브르의 주요 보석 유물은 프랑스 중앙은행의 초고보안 금고 ‘수테렌(Souterraine)’으로 이관되었다. 이 금고는 지하 26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7톤짜리 문과 35톤의 회전식 콘크리트 탑으로 보호되는 유럽 최고 수준의 보안시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건은 예술의 안전이 ‘미술관’이 아닌 ‘은행 금고’에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도난당한 유물에는 나폴레옹 3세의 왕비 외제니 황후의 에메랄드 티아라와 목걸이, 마리 루이즈 황후의 귀걸이, 마리 아멜리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 등이 포함된다. 이 보석들은 시장 가치보다 훨씬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프랑스의 왕조와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이번 사건은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이후 루브르가 맞이한 가장 심각한 위기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오늘, 예술의 성전은 다시 한 번 보안의 균열 속에서 세계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 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 인프라의 노후화, 예산 부족, 그리고 유물 관리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미 대대적인 개보수를 선언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누수와 온도 불균형, 과밀 관람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술품은 단순한 ‘소장품’이 아니라 인류 기억의 결정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기억을 지탱해야 할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냈다. 루브르의 균열은 단지 유리창의 파손이 아니라, “예술을 보호해야 하는 우리의 의지와 제도의 균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