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세계 미술의 중심축이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
런던에서 시작된 프리즈(Frieze)가 이제 중동의 사막도시 아부다비로 향했다.
단순한 행사 확장이 아니라, 문화 권력의 지도가 재편되는 상징적 장면이다.
2026년 첫선을 보일 ‘프리즈 아부다비(Frieze Abu Dhabi)’는 글로벌 아트페어 시장의 새로운 균형점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아부다비 아트 VIP 오프닝. 아부다비 아트 제공.
아부다비 아트 VIP 오프닝. 아부다비 아트 제공.

런던에서 아부다비로-문화 패권의 이동
프리즈가 아부다비 아트페어(Abu Dhabi Art Fair)를 인수했다.
이는 프리즈 그룹이 운영하는 여덟 번째 아트페어이자, 걸프 지역 진출의 첫 발걸음이다.
겉으로는 ‘협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문화 경제 전쟁이 놓여 있다.
지난 수년간 걸프 지역은 석유 경제에서 문화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시티’, 카타르의 ‘도하 아트 바젤’, 그리고 아부다비의 ‘사디야트 문화지구’가 모두 같은 맥락에 있다.
석유에서 예술로-이 문장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21세기 중동이 자본을 통해 문화를 생산하는 방식을 압축한다.

프리즈는 그 흐름을 정확히 읽었다.
아부다비 문화관광부(DCT Abu Dhabi)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거점을 확보했고,
그 결과 2026년, 프리즈 아부다비라는 새로운 문화 브랜드가 출범하게 된다.

프리즈 CEO 사이먼 폭스는 “아부다비의 문화적 리더십이 프리즈의 글로벌 플랫폼과 결합할 때, 새로운 예술적 발견의 장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은 곧, 서구 중심의 예술 질서가 다극화되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밤의 마나라트 알 사디야트. 아부다비 아트 제공.
 밤의 마나라트 알 사디야트. 아부다비 아트 제공.

 

걸프의 야망-예술을 통한 국가 전
아부다비는 오랫동안 두바이에 대한 ‘조용한 경쟁자’였다.
두바이가 상업적 국제 도시로 성장하는 동안, 아부다비는 지속 가능한 문화의 도시를 표방해왔다.

루브르 아부다비, 곧 개관할 구겐하임 아부다비, 그리고 세계적 미술관들이 들어선 사디야트 문화지구는 그 야심의 결과물이다.
아부다비 국부펀드 ADQ가 소더비(Sotheby’s)에 10억 달러를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더비는 2024년 12월, ‘아부다비 컬렉터스 위크’를 통해 첫 명품 경매와 “박물관급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이제 걸프의 미술은 ‘시장’이 아니라 ‘전략’이다.
석유의 수익을 문화로 전환하고, 문화의 영향력을 외교 자산으로 만드는, 예술의 지정학화(Geopolitics of Art)가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프리즈 vs 아트 바젤 -글로벌 패권의 재구성
이번 인수는 단순히 아부다비와의 협력 차원을 넘어, 프리즈와 아트 바젤의 세계적 패권 경쟁이 걸프 지역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아트 바젤은 이미 내년 2월 ‘아트 바젤 카타르(Art Basel Qatar)’를 발표하며 반격에 나섰다.

프리즈는 현재 런던·뉴욕·로스앤젤레스·서울·시카고·뉴욕 아모리쇼를 포함해 8개 페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트 바젤의 5개 행사를 넘어서는 규모로 확장했다.

이 두 브랜드의 경쟁은 단순한 예술 비즈니스가 아니다.
문화적 헤게모니, 즉 “누가 세계의 예술 담론을 주도할 것인가”의 싸움이다.
걸프 지역은 그들의 새로운 전장이다.

세계의 예술이 더 이상 뉴욕과 런던만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이번 프리즈의 결정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 사회의 여인 '(2003)이 2월 사우디아라비아 소더비에서 열린 첫 번째 대규모 경매에서 102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사진: Amal Alhasan/Getty Images for Sotheby's.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 사회의 여인 '(2003)이 2월 사우디아라비아 소더비에서 열린 첫 번째 대규모 경매에서 102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사진: Amal Alhasan/Getty Images for Sotheby's.

예술의 미래, 사막에서 시작되다
‘프리즈 아부다비’의 출범은 미술 시장의 지형 변화를 넘어 예술의 권력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문화의 중심은 더 이상 지정학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본이 흐르는 곳에 미술관이 생기고, 박람회가 열리며, 새로운 담론이 만들어진다.
사막의 도시 아부다비는 이제 런던, 뉴욕, 서울과 같은 문화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곳에서 열릴 첫 프리즈 아부다비는 “문화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직접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예술의 권력은 언제나 움직인다.”
그 움직임의 다음 좌표가 바로 아부다비다.
사막의 한복판에서 열릴 새로운 예술의 축제는, 이제 서구의 시선을 넘어, 세계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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