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가을의 런던이 다시금 예술로 물든다.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프리즈 위크(Frieze Week)가 다가오면서, 도시 곳곳의 박물관과 갤러리들은 화려한 전시들로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의 호주 원주민 예술가 에밀리 캄 쿵와레이 전시, 내셔널 갤러리의 장 프랑수아 밀레 회고전, 월리스 컬렉션의 그레이슨 페리 신작전까지, 런던의 예술계는 지금 가장 뜨겁다.
본 기자는 프리즈 위크 기간 중 반드시 주목해야 할 런던의 10대 박물관 전시를 엄선해 소개한다. 각 전시는 현대미술의 흐름, 사회적 서사, 그리고 미학적 도전의 현장을 담고 있다.
1. 길버트와 조지: 21세기 사진
장소: 헤이워드 갤러리
기간: 2026년 10월 7일 ~ 2027년 1월 11일
‘살아있는 조각(Living Sculpture)’ 듀오로 알려진 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는 런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들의 25년 작업을 집대성한 이번 대규모 전시는 성(性), 계급, 민족주의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재치 있게 시각화한 약 60점의 설치작품으로 구성된다.
도로 표지판, 신문 헤드라인, 거리 풍경 등 일상의 언어를 해체하며 현대 사회의 금기를 마주하게 한다.
특히 신작 ‘스크류 픽처스(Screw Pictures)’ 시리즈는 그들의 대표적 유머 감각과 도발적 미학을 집약한다.
2. 케리 제임스 마샬: 역사
장소: 왕립 예술 아카데미
기간: ~ 2026년 1월 18일
흑인 미술의 거장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의 유럽 최대 규모 회고전이 런던에서 열린다.
그는 서구 미술사의 ‘거장 서사’를 전복하고, 흑인의 경험과 역사를 주체적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대표작 <Past Times>(1997)은 쇠라의 명작 <A Sunday on La Grande Jatte>를 현대 흑인 공동체의 풍경으로 재해석했다.
또한 <Black Painting>(2003/2006)은 흑인의 존재를 어둠 속에서 되찾는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전시는 마샬이 구축해온 회화적 언어의 확장과 역사적 저항의 미학을 조명한다.
3. 웨인 티보: 미국 정물화
장소: 코톨드 갤러리
기간: 2025년 10월 10일 ~ 2026년 1월 18일
미국 팝 리얼리즘의 거장 '웨인 티보(Wayne Thiebaud)의 첫 영국 개인전이 코톨드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의 작품은 파이, 케이크, 사탕과 같은 일상의 사물을 역사적·철학적 깊이로 승화시킨다.
이번 전시에는 워싱턴 D.C.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대표작 <Cake>(1963)가 유럽 최초로 공개된다.
그의 밝은 색채와 짙은 그림자는 단순한 디저트의 풍경을 넘어 ‘미국적 낙관주의’의 초상을 그린다.
4. 나이지리아 모더니즘
장소: 테이트 모던
기간: 2025년 10월 8일 ~ 2026년 5월 10일
나이지리아 독립 6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세기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중심 흐름을 재조명한다.
벤 엔원우, 라디 콰리 등 선구적 예술가부터 자리아 예술 협회(Zaria Art Society)의 정신, 그리고 디아스포라 예술가 우조 에고누의 작품까지 총 250여 점이 전시된다.
식민지 잔재와 문화적 정체성 사이에서 탄생한 나이지리아 예술의 독자적 언어를 보여주는 뜻깊은 기획이다.
5. 피터 도이그: 하우스 오브 뮤직
장소: 서펜타인 사우스 갤러리
기간: 2025년 10월 10일 ~ 2026년 2월 8일
풍경화의 시적 언어로 유명한 피터 도이그(Peter Doig)가 이번에는 음악과 회화를 결합한 새로운 실험을 선보인다.
트리니다드 시절의 작품들과 함께, 작가가 직접 선별한 바이닐 음악이 1950년대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재생된다.
이 전시는 시각 예술과 청각 경험이 하나의 감각적 내러티브로 융합된, 현대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6. 카리마 아샤두: 텐더드
장소: 캠든 아트 센터
기간: 2025년 10월 10일 ~ 2026년 3월 22일
나이지리아 출신 신예 카리마 아샤두(Karimah Ashadu)는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 이후 급부상한 작가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남성성과 권력 구조를 탐구한 신작 영상 설치 <MUSCLE>(2025)를 공개한다.
그녀는 “근육의 긴장 아래 숨어 있는 부드러움”을 통해 서아프리카 사회의 젠더 감성을 재해석한다.
7. 유령 물체: 레이튼의 잃어버린 컬렉션 소환
장소: 레이튼 하우스 뮤지엄
기간: 2025년 10월 11일 ~ 2026년 3월 1일
빅토리아 시대 화가 프레데릭 레이튼(Frederic Leighton)의 자택이자 박물관인 이 공간에서, 현대 종이 예술가 아네마리크 클로스터호프가 사라진 유물들을 재현한 특별전이 열린다.
그녀는 종이를 매개로 19세기 미술품의 부활을 시도하며, 기억과 복원의 의미를 탐구한다.
8. 우리 죄 많은 여자들: 도서관 프로젝트
장소: SOAS 도서관 (런던대학교)
기간: 2025년 9월 18일 ~ 12월 7일
남아시아와 중동 여성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 전시는, 모더니즘에서 현대미술까지 여성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시 쓰는 기획이다.
실파 굽타, 바니 아비디, 아르피타 싱 등 주요 작가들이 참여하며, 여성 예술이 단순한 ‘대안’이 아닌 주류 담론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 맥스웰 알렉상드르: 성소와 그 벽의 그림자
장소: 델피나 재단
기간: 2025년 10월 10일 ~ 11월 23일
브라질 출신의 흑인 예술가 맥스웰 알렉상드르(Maxwell Alexandre)는 이번 전시에서 인물 중심에서 ‘장소의 신학’으로 초점을 옮겼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스포츠 클럽 풍경을 통해 권력과 여가, 종교적 안식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해석한다.
그의 대형 크래프트지 회화는 브라질 현대회화의 새로운 서사를 제시한다.
10. 조이 그레고리: 꿀로 파리를 잡다
장소: 화이트채플 갤러리
기간: 2026년 10월 8일 ~ 2027년 3월 1일
영국의 대표적 여성 사진작가 조이 그레고리(Joy Gregory)의 회고전이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녀는 자화상, 직물, 퍼포먼스, 그리고 사진을 통해 흑인 여성성의 정체성과 식민지 이후의 역사적 서사를 다루어왔다.
이번 전시는 25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되며, 개인적 기억과 사회적 맥락이 교차하는 그녀의 예술세계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런던, 예술의 심장으로 돌아오다
2025년 런던의 프리즈 위크는 단순한 아트페어의 열기를 넘어, 도시 전역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여주는 문화적 축제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통과 실험, 중심과 주변, 지역과 세계가 교차하는 이 다층적 예술 지도 속에서 ‘지금, 런던의 예술’은 여전히 전 세계 미술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