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초 테 500주년 기념 신작,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이탈리아 만토바의 팔라초 테(Palazzo Te)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희와 상징이 살아 숨 쉬는 ‘쾌락의 궁전’이다.

올해로 완공 500주년을 맞이한 이 공간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실험영화감독 아이작 줄리앙(Isaac Julien)은 시간을 초월하는 대서사시로 그 화려한 역사를 다시 불러낸다. 그의 신작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는 10개의 스크린으로 구성된 설치 영화로, 생태 파괴와 인간의 존재 변화, 그리고 시간의 왜곡이라는 주제를 SF 서사로 확장한다.

이 작품은 10월 3일부터 팔라초 테의 새롭게 단장된 ‘Fruttiere’ 윙에서 공개되어 2026년 2월 1일까지 전시된다.

팔라초 테에서 열린 영화 '아이작 줄리앙,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장에서의 쉴라 아팀 . 사진-© Isaac Julien.
팔라초 테에서 열린 영화 '아이작 줄리앙,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장에서의 쉴라 아팀 . 사진-© Isaac Julien.

르네상스의 변형(Transformation), 그리고 미래의 재해석
줄리앙의 작품은 16세기 건축가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가 팔라초 테를 설계할 때 집요하게 탐구했던 ‘변형(metamorphosis)’의 개념을 다시 불러온다.
그는 로마노의 벽화 ‘거인들의 몰락(Fall of the Giants)’에서 혼돈과 파괴의 에너지를 읽었고, 그것을 21세기적 감수성으로 변주했다.

화면은 세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르네상스 궁전, 런던의 포스트모던 건축물 ‘코스믹 하우스(Cosmic House)’, 그리고 미래형 우주선. 이 세 장소는 각각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을 상징하며, 여신으로 등장하는 두 인물은 그 안에서 정체성과 존재의 변화를 겪는다.
이 두 여신은 배우 그웬돌린 크리스티(Gwendoline Christie)와 쉴라 아팀(Sheila Atim)이 맡았다.

줄리앙은 이들의 여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변형과 회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세상은 거대한 변신의 문턱에 서 있다”며, “팔라초 테는 그 시작점이자 은유적 무대”라고 밝혔다.

팔라초 테에서 열린 아이작 줄리앙의 '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 현장에서의 그웬돌린 크리스티 . 사진-© Isaac Julien.
팔라초 테에서 열린 아이작 줄리앙의 '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 현장에서의 그웬돌린 크리스티 . 사진-© Isaac Julien.

SF와 생태철학이 만난 예술적 서사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의 중심에는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오늘의 현실이 놓여 있다.
줄리앙은 최근 로스앤젤레스를 휩쓴 산불 이후, 인간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낸 파괴의 구조를 깊이 고민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는 절망 대신 ‘탈인류적 희망’을 제시한다.
그의 SF는 묵시록이 아닌 재생과 공존의 신화적 서사이며, “지구의 기억을 잃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철학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 나오미 미치슨(Naomi Mitchison) 같은 여성 SF 작가들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줄리앙은 이들을 “이 시대의 새로운 오비디우스들”이라 부르며, 그들의 세계관을 오비디우스 『변신』의 미학과 겹쳐 해석한다.
그의 파트너이자 공동 각본가인 마크 내쉬(Mark Nash)와 함께 구축한 이 거대한 서사는,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인간과 자연,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팔라초 테에서 열린 영화 '아이작 줄리앙,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 현장에서의 아이작 줄리앙과 그웬돌린 크리스티. 사진-© Isaac Julien.
팔라초 테에서 열린 영화 '아이작 줄리앙,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 현장에서의 아이작 줄리앙과 그웬돌린 크리스티. 사진-© Isaac Julien.

“과거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줄리앙의 작품에는 과거로부터 배우려는 태도가 일관된다.
그의 대표작 ‘랭스턴을 찾아서(1989)’는 퀴어 정체성을 통해 흑인 예술가들의 삶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1920년대의 ‘할렘 르네상스’를 오늘의 인권 서사로 확장시켰다.
‘볼티모어(2003)’에서는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을 무대로, 흑인 예술의 역사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미지를 교차시켰다.

그에게 과거는 회고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관통하는 스승(mentor)이며, 그것이 바로 이번 신작의 주제이기도 하다.
UC 산타크루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줄리앙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며, 그것을 이해해야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팔라초 테에서 열린 영화 '아이작 줄리앙,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장에서의 쉴라 아팀 . 사진-© Isaac Julien.
팔라초 테에서 열린 영화 '아이작 줄리앙,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2025) 촬영장에서의 쉴라 아팀 . 사진-© Isaac Julien.

‘예술의 부활’로서의 메타모포시스
줄리앙은 이번 작품을 “예술적 부활의 제의”로 규정한다.
르네상스가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종교적 권위를 넘어섰듯, 오늘의 인류도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는 낡은 질서가 무너지는 현재를 “계몽주의 이후의 새로운 르네상스”로 보고, 팔라초 테를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화려한 영상미와 사운드, 그리고 건축과 영화, 신화가 융합된 이 프로젝트는 관객에게 묻는다.
“변화는 두려운가, 아니면 진화인가.”

[전시 개요]
전시명: All That Changes You. Metamorphosis
감독: 아이작 줄리앙 (Isaac Julien)
장소: 이탈리아 만토바 팔라초 테 (Palazzo Te)
기간: 2025년 10월 3일 ~ 2026년 2월 1일
출연: 그웬돌린 크리스티, 쉴라 아팀
형식: 10채널 설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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