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22. ~ 12. 2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
2025. 08. 22. ~ 12. 2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종근 미술평론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 작가는 16세 때 월남해 이쾌대 화백이 운영하던 성북회화 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마칠 수가 없이 김창열 화백은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0년대 중반에는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과 함께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미술 경향 앵포르멜 운동의 한국적 앵포르멜의 창시를 돕기도 했다. 1957년에는 현대 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의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면서 1961년 파리 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 출품하기도 했다. 당시 은사였던 김환기 화백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 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하면서 독특한 물방울 작업을 시작했다.
물방울 회화‘는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물방울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평생 50년 가까이 지속했다. 김창열은 파리 남쪽 팔레조(Palaiseau)의 마굿간을 공방으로 쓰던 독일의 한 젊은 조각가에게 작업실을 이어받아 그림을 그렸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재료 살 돈을 아끼려 캔버스 뒷면을 물에 적셔 묵힌 후 물감을 떼어 또 그리는 식으로 재활용하던 어느 날,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마침내 1972년 물방울 그림이 탄생되었다.
이후, 근처 골동품 가구점에서 연 첫 개인전이 우연히 파리의 일간지 <콩바(Combat)>의 기자 알랭 보스케의 눈에 들어 기사화되면서 순식간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상징적인 물방울 그림을 시작하면서 초기 유화작품인 <Evenement de la nuit> (1972)는 검은 배경에 한 방울의 물방울이 묘사되고 물방울에 달빛이 창문에 반사된 형상을 그린 것이다.
그는 물방울에 몰두하면서 그 바탕에 문자를 접합 시키기도 했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물방울의 형상이 텍스트 즉 글자와 처음 만난 건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에서 활동할 때 다락방의 지나간 신문 '르 피가로‘ 1면에 수채 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리면서 이어졌다.
이후에도 김창열 화백은 한지 위에 무수히 붓으로 겹쳐 쓴 한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이 투명하게 떠 있는 1989년작 '회귀'를 보여주면서 더 주목을 끌었다.

특히, 작가는 화면에서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동양의 정신이 담긴 천자문에 함께 교차시키면서 종종 작품을 변형, 평생의 모티브로 삼았다. 
이러한 물방울 작품들은 빛과 그림자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극사실 회화로서도 쟁점이 되었고 작가는 이것을 후에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이기에 내게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라고 회고 할 정도로 그에게는 절대적이었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때로는 얼룩의 이미지와 부드럽게도 물방울을 다양하게 배열 혹은 나열하면서 물방울을 계속 그려 나갔다. 
어떤 때는 극사실과 재현의 경계를 넘나드는 액체 형태의 탐구로 마치 사실적으로 그려진 물방울이 표면에서 미끄러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에서는 "애매한 상태는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서 균형이라는 개념"을 거론하면서 김창열의 물방울은 "내 물방울 그림은 내 삶의 경험과 만남에서 완성된다"라고 고백했다. 
"깨끗하고 흠잡을 데 없는 물방울 하나하나는 마치 완전한 무(無)가 되풀이되는 것처럼 정화 이후의 초기 상태에 있다. 물방울은 결국 되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50년 동안 물방울만, 김창열 그 존재의 상징-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이처럼 김창열의 물방울은 극사실의 묘사로 떨어질 듯 응집된 수백 가지 물방울 형태와 크기와 색깔로 신문, 잡지, 캔버스 표면 바탕에 축축하게 모든 물방울로 다양한 이미지의 물방울 생김새를 보여준다.
마치 하이퍼처럼 극사실로 보이는 김창열의 다소 기계적인 무수한 반복과 나열의 기술만으로 애호가들로부터 사랑받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김창열과 방혜자 개인전에서 (사진 김종근 )-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김창열과 방혜자 개인전에서 (사진 김종근 )-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특히 김창열은 물방울을 동양철학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가의 트라우마 적 기억에 대한 치료이자 영원에 대한 명상의 역할로 기억하고 평가 된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물방울은 더 풍성해지고 형태나 스케일, 투명성과 반영 및 밀도와 구성이 다양하여 김창열 화백의 무수한 변주로 창조 되었다.

김창열의 "물방울들은 우리를 일종의 자기 변형으로 끌고 간다." "그 물방울들은 보기 드문 최면의 힘을 갖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Combat>에 실린 알랭 보스케의 평문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 두는 매력과 최면의 힘을 오늘의 김창렬 작품 물방울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김창렬 화백-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김창렬 화백-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물방울은 보기에는 하나의 물방울이지만 그것은 곧 김창열 작가 자신의 등가물, 바로 그 존재였다.
그는 기원했다.“너절하지 않은 화가로 기록되고 싶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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