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오는 11월 18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오스트리아 분리주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걸작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화(1914~16)’가 출품된다. 이번 작품은 1억 5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가을 시즌 경매의 최대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레너드 로더 컬렉션에서 소더비까지
이번 경매는 지난 6월 92세로 타계한 에스티 로더 그룹의 레너드 로더(Leonard Lauder)의 개인 컬렉션에서 출발했다. 로더는 생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10억 달러 상당의 큐비스트 작품을 기증한 바 있으며, 이번 경매는 휘트니 미술관이 사용했던 브로이어 빌딩에서 열리는 소더비 뉴욕 플래그십 경매의 서막을 알린다.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화는 최근까지 캐나다 국립미술관에 장기 대여되었고, 그 전에는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서 ‘클림트와 빈 황금기 여성들, 1900–1918’ 전시의 대표작으로 공개된 바 있다.
작품의 미학과 상징
이 전신 초상화는 검은 머리와 창백한 피부의 젊은 여성이 흰 드레스와 화려한 푸른색 가운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담았다. 배경에는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작은 인물들이 양탄자 위에 배치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클림트가 아시아적 모티프를 적극 활용한 드문 사례로, 캐나다 국립미술관 측은 “황제의 망토를 상징하는 도상”이라고 분석한다. 후원자 레더러 가문에 대한 경의가 담긴 장치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클림트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년간 공을 들였고, 모델의 드레스에는 추상적 패턴과 동양적 상징이 교차하며 신비롭고 매혹적인 화면을 연출한다.
레더러 가문과 클림트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유대인 부호였던 아우구스트 레더러와 그의 아내 세레나의 후원을 통해 거대한 컬렉션을 구축했다. 세레나는 1899년 클림트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했고, 이 작품은 이후 ‘백색 교향곡’이라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모녀의 초상화는 클림트 예술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뤘으며,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장악한 뒤에도 이 가문의 후원은 클림트 예술을 기억하게 하는 주요한 근거로 남았다.
엘리자베스 레더러는 1930년대 개신교로 개종했으나, 나치의 박해 속에서 클림트가 자신의 생부라는 주장을 내세워 강제수용소 추방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일화는 작품에 비극적 역사를 더한다.
경매 기록과 기대
클림트의 작품은 이미 경매 시장에서 최상위권을 점유하고 있다. 2023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부채를 든 여인’은 8,530만 파운드(미화 약 1억 840만 달러)에 낙찰되며 그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화’는 그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미술사적 의미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화’는 단순한 미학적 성취를 넘어, 후원자와 예술가의 긴밀한 관계, 나치 시대의 비극적 역사, 그리고 동서양의 상징이 교차하는 독창적 화면 구성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여전히 클림트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번 경매는 단순히 최고가 기록에 대한 관심을 넘어, 예술과 역사, 후원과 권력의 이야기를 동시에 환기시키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