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층에서 열리고 있는 ‘2025 제4회 서울명인전’은 단순한 장인의 작품 전시를 넘어 한국 전통예술의 뿌리와 현대적 창작의 접점을 드러내는 무대다. 그 중심에는 귀금속 전통공예 분야의 거장, 황갑주 명인이 있다.
5,900년 역사를 담은 법고창신의 미학ㅋ
황 명인은 “전통 귀금속 공예를 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다시 펼쳐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단군 신화에서부터 고려와 가야,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5,900년에 걸친 한민족의 서사를 재현하고 확장하는 데 있다.
그는 이를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정의한다. 즉,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창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화병과 보석함, 향로는 단순히 재현이 아니라, 고대의 정신을 현재적 감각으로 되살린 창작물이다.
무용총의 사신과 고구려의 벽화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를 모티브로 한 화병이다. 청룡과 백호, 사냥 장면이 등장하는 고구려 벽화 속 이미지를 은으로 입체 조각하고, 그 위에 금을 입혀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황 명인은 이를 통해 “고구려의 기상과 생동감을 귀금속 공예로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부(金附) 기법을 활용하여 순은 위에 금박을 열로 입히는 전통적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이로써 과거의 웅장함과 현대의 세련미가 함께 담겼다.
삼국·고려·가야를 잇는 시간의 공예
황 명인의 작업은 특정 시대에 머물지 않는다. 삼국시대 사리구를 양각과 음각으로 세밀히 표현한 작품, 백제 청동향로를 은과 금분으로 재현한 작품, 가야 토기를 모티브로 쌍룡을 새긴 화병 등은 모두 시대를 초월한 공예의 언어로 완성되었다.
그는 “불교 조각, 사신도, 토기 문양 등 각 시대의 상징을 입체화하여 새로운 맥락으로 살려냈다”고 밝혔다. 나아가 고려시대의 화병을 현대적 기법으로 되살려내는 등, 황 명인의 작품은 ‘시간의 공예사’라 불릴 만큼 역사적 폭이 넓다.
황칠과 보석, 그리고 현대의 확장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시도도 눈길을 끈다. 그는 은 주전자에 황칠을 입혀 전통 칠기 기법을 귀금속 공예에 결합했고, 보석을 활용한 오방색 장식으로 백제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또한 수백 개의 원석을 세밀하게 박아 넣은 보석함과 신변 장신구들은 전통과 현대, 실용과 예술을 넘나드는 황 명인의 폭넓은 창작 세계를 보여준다.
장인의 길 70년, 예술혼의 결실
황갑주 명인은 1954년 귀금속 보석 세공에 입문해 올해로 70년을 맞았다. 그는 한국귀금속보석기술업계의 원로로서,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선과 특선, 공예대상, 문화부 장관 표창 등 수많은 성과를 남겼다. 또한 심사위원, 교수, 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과 전통 계승에 힘써왔다.
그의 예술혼은 단순한 장식품 제작을 넘어 민족의 기억과 문화를 전승하는 작업이다. 황 명인은 “5천년 역사를 담아낸 공예는 곧 우리 삶과 정신을 잇는 통로”라며 “앞으로도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창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공예의 세계화를 향해
제4회 서울명인전에서 선보인 황갑주 명인의 작품들은 한국 전통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적 맥락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법고창신이라는 철학은 단지 과거의 답습이 아니라, 한국 전통공예가 세계 미술 속에서 현대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은·금 공예품들은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시간과 역사, 신화와 예술’을 담은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는다. 이번 전시는 황갑주 명인이 걸어온 70년 장인의 길을 돌아보는 동시에, 한국 전통예술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무대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