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미술관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아이콘이자 당대의 슈퍼스타였던 故 천경자 화백(1924~2015)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를 2025년 9월 24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06년 갤러리현대 개인전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이후 약 20년 만에 열리는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80여 점의 채색화와 방대한 아카이브를 총망라한다.
작가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대규모 회고전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18개의 기관과 수많은 개인 소장자들의 협력으로 가능해졌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대표작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며, 저서와 장정 작업, 여행 사진, 편지, 제작 과정 자료 등도 함께 공개된다. 전시장(총 1000여 평)은 8개 섹션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 7개는 주제별 작품군으로, 나머지 1개는 추모공간으로 꾸며졌다.
전시 기획에는 한국 근현대 회화의 대표 컬렉터 안병광 회장이 직접 참여해, 이번 전시를 “천경자의 위대한 귀환”이라 명명했다. 그는 “위작 논란과 자극적인 사건보다 작가의 일생과 업적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번 전시가 작가를 재조명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위작 논란’을 넘어, 예술인으로서의 위상
천경자는 생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나, 여전히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지 못했다. 한국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과 상흔 위에 놓여 있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는 ‘미인도 사건’이나 ‘위작 논란’을 전시 서사에서 배제하고, 오직 작품과 화업에 집중한다.
천경자는 1998년 뉴욕 이주 직전, 자신의 채색화 57점과 드로잉 39점, 화구 일체를 서울시에 기증하며 저작권까지 환원했다. 이는 한국 미술사 최초로 자신의 모든 것을 사회에 돌려준 사례로, “예술혼의 선물”로 불렸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천경자를 ‘환원과 귀환의 작가’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의미를 가진다.
동시대 증언과 다층적 조명
이번 전시의 특징은 외부 인사의 글과 기록을 통해 천경자의 삶을 다각도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서울특별시 오세훈 시장,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실장,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 미술평론가 이주헌 등이 참여해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망한다. 특히 박명자 회장은 생전 인연을 회고하며 작가에게서 받은 작품을 이번 전시에 출품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실장은 천경자의 대표 장르인 여성초상화가 지닌 시대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설명, 관람객에게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대중성과 미학적 성취
천경자는 1970년대 현대화랑 개인전에서 대중적 신드롬을 일으키며 “미술 대중화”를 현실로 만든 인물이다. 당시 여대생들이 그림 속 인물을 따라 그려갔다는 일화는 미술이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된 순간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우아한 선, 정련된 색채, 세련된 형태 감각으로 전통 회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미학적 성취와 대중적 영향력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자리다.
의미와 기대
이번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는 단순한 추모전이 아니라, 천경자를 ‘한을 그린 여류화가’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나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전환점이자 “재조명”의 장이다.
천경자가 남긴 작품과 기록은 한국 미술의 잠재력과 저력을 증명하며, 이번 전시는 그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